[현장법사] 진리를 찾아서(1)

밤을 건너 국경을 넘은 승려 — 왜 그는 모든 것을 걸었는가

by 이안

서기 627년, 당나라의 서쪽 끝입니다. 침묵이 지배하는 밤의 정적을 깨고 낮은 말발굽 소리가 들려옵니다. 한 젊은 승려가 홀로 말을 몰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현장. 서른 살의 젊은 나이에 이미 장안에서 '해와 달 같은 지혜를 가진 승려'로 칭송받던 엘리트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처지는 처참합니다. 그는 황제의 명을 어긴 국사범입니다. 당시 당나라는 돌궐과의 전쟁으로 인해 국경 봉쇄령을 내린 상태였습니다. 허가 없이 국경을 넘다 걸리면 현장에서 즉시 체포되거나 화살에 맞을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습니다. 그의 봇짐 안에는 화려한 금칠을 한 불상도, 넉넉한 노잣돈도 없었습니다. 오직 낡은 가사 한 벌, 약간의 마른 식량, 그리고 손때 묻은 몇 권의 경전뿐이었죠. 훗날 아시아 전역의 사상사를 뒤바꿀 거대한 여정은, 이렇게 초라하고도 위험한 도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현장이 이토록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은 이유는 단순히 모험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지독한 갈증 때문이었습니다. 7세기 당나라 불교계는 겉보기에 화려했지만 내부적으로는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인도에서 건너온 경전들이 한문으로 번역되어 유통되고 있었지만, 번역가마다 용어가 달랐고 해석은 제각각이었습니다. 어느 사원에 가면 이것이 진리라고 가르치는데, 바로 옆 사원에서는 그것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식이었습니다.


현장은 당대 최고의 스승들을 찾아다니며 질문을 던졌습니다. "스님, 이 구절의 진짜 뜻은 무엇입니까? 왜 저 스님의 말씀과 스승님의 말씀이 다릅니까?"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모호했습니다.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다거나, 원래 깨달음이란 문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는 식의 답변뿐이었습니다. 논리적인 성격의 현장에게 이런 대답은 고통이었습니다. 그는 경전을 대조하며 소름 끼치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중국에 전해진 경전들이 번역 과정에서 뜻이 왜곡되거나, 핵심적인 개념이 빠진 채 의역이라는 이름으로 덮여 있었다는 사실을요.


현장은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신앙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텍스트가 틀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지도도 없이 안갯속을 걷는 것 같은 이 혼란을 끝낼 유일한 방법은 하나뿐이었습니다. 부처의 말이 기록된 그 원문을 직접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현장은 황제에게 상소문을 올립니다. 인도로 가서 제대로 된 법을 배워오게 해달라고 말이죠. 하지만 태종 이세민은 단칼에 거절합니다. 국경 밖은 전쟁터였고, 인재를 밖으로 내보낼 여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변 동료들도 그를 말렸습니다. "현장, 자네는 이미 충분히 유명하네. 여기서 적당히 강의하며 살면 평생이 보장되는데 왜 사막의 모래바람 속에 뼈를 묻으려 하는가?"


현장은 대답했습니다. "법의 근원이 흐릿한데, 어찌 거짓된 안식에 머물겠습니까. 나는 동쪽으로 돌아와 살기보다 서쪽으로 한 발자국 가서 죽기를 택하겠습니다." 그는 결국 굶주린 이재민 틈에 섞여 장안을 빠져나옵니다. 낮에는 숨고 밤에는 달빛을 이정표 삼아 걸었습니다. 이것은 신앙의 여행인 동시에, 진실을 찾기 위한 한 지식인의 처절한 투쟁이었습니다.


국경의 제1관문인 옥문관을 넘어서자, 지옥 같은 막하연적 사막이 나타났습니다. 800리에 달하는 이 모래 바다에는 새도 날지 않고 짐승도 다니지 않았습니다. 여정 도중 현장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릅니다. 물 주머니를 실수로 쏟아버린 것입니다. 타들어 가는 목마름 속에서 그는 잠시 흔들렸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죽는다. 다시 국경으로 돌아가서 물을 채워올까?' 그는 말머리를 돌려 몇 리를 되돌아갔습니다. 하지만 곧 멈춰 섰습니다.


"내가 서쪽으로 가기로 맹세했지, 어찌 살기 위해 동쪽으로 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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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시 서쪽으로 향했습니다. 5일 동안 물 한 방울 마시지 못한 채 환각을 보고 쓰러지기를 반복했습니다. 모래 언덕 위로 옛 전사들의 유골이 보였고, 바람 소리는 마치 귀신의 울음소리처럼 들렸습니다. 현장은 그때마다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며 정신을 붙잡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겠다는 지적인 집념이 그를 죽음의 문턱에서 끌어올린 것입니다. 결국 기적적으로 오아시스를 발견한 현장은 사막을 건넙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눈 덮인 파미르 고원과 힌두쿠시 산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마침내 인도의 땅을 밟았을 때, 현장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감상에 젖을 시간은 없었습니다. 그는 곧장 당시 세계 최대의 불교 대학인 나란다 사원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현장은 충격을 받습니다. 중국에서 그토록 치열하게 싸우던 주제들이, 이곳에서는 이미 정교한 논리학과 체계적인 사유 시스템으로 정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천 명의 학승이 매일같이 토론을 벌이고, 논리가 부족하면 왕 앞에서도 고개를 숙여야 하는 냉철한 지성의 현장이었습니다.


현장은 그곳에서 마음의 작동 원리를 세밀하게 분석하는 유식학이라는 학문에 몰두합니다. "아, 이래서 번역이 어려웠구나. 마음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중국의 언어로 옮길 때, 그 미세한 결을 살리지 못했구나!" 현장은 5년 동안 나란다에 머물며 인도 최고의 학자로 거듭납니다. 그는 단순히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인도 학자들과 산스크리트어로 논쟁하여 승리할 정도로 독보적인 경지에 오릅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길 잃은 구도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방대한 지식을 머릿속에 담은 지식의 거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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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7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현장은 수백 권의 산스크리트어 원전과 불상을 싣고 당나라로 돌아옵니다. 그를 죽이려 했던 당 태종은 이제 그를 국가적인 영웅으로 환대합니다. 현장은 황제에게 관직을 제안받지만 단호히 거절합니다. 대신 그는 장안의 홍복사에 번역국을 설치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남은 평생을 번역에 바칩니다.


그의 번역 원칙은 확고했습니다. "문장이 유려하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단 한 글자도 원문의 뜻에서 어긋나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이전의 번역들과 궤를 달리하는 신역의 탄생입니다. 이전의 번역들이 중국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적당히 버무린 것이었다면, 현장의 번역은 인도의 철학적 엄밀함을 그대로 살려낸 정밀 기계와 같았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흔히 쓰는 반야심경의 구절들도 대부분 현장의 손을 거친 것입니다. 그는 깨달음이라는 구름 잡는 소리를 사유의 과학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현장의 일생을 다룬 소설 서유기에서 그는 손오공의 보호를 받는 유약한 승려로 묘사되곤 합니다. 하지만 실제 역사의 현장은 누구보다 강인한 의지를 가진 혁신가였습니다. 그는 남들이 만들어 놓은 해석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이게 맞다며 소리 높여 싸울 때, 홀로 "진짜 원문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질문 하나가 그를 사막으로, 인도 왕궁으로, 그리고 역사의 한 페이지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불교를 전파한 승려가 아닙니다. 그는 정확한 지식을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위대한 학자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정보가 넘쳐나고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없는 이 혼란의 시대에, 당신은 누군가 요약해 준 해석에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당신만의 원문을 찾기 위해 밤의 국경을 넘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현장의 위대한 여정, 그 두 번째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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