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
조선의 발명가 장영실, 미국의 발명가 에디슨, 천재 전기공학자 테슬라, 기술문명 비평가 루이스 멈포드,
그리고 현대 AI
발명이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먼저, 조선의 장영실 선생님께 여쭙겠습니다.”
“나는 본래 노비였습니다. 신분이 낮았지요. 하지만 하늘의 움직임을 보고, 백성의 삶을 이해하면서
그들이 겪는 불편함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었습니다. 자격루, 앙부일구, 측우기…
모두 하늘과 땅의 이치를 사람의 삶으로 옮긴 도구였지요.”
그러나 현실은 달랐지요. 자본과 권력은 내 발명을 가로막았고, 에디슨과의 갈등은 내 평생의 짐이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책임을 인정하오. 나는 경쟁에 몰두했고, 특허를 독점하며, 교류 전기를 공격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았지. 사업이 발명을 먹어버린 셈이지요. 하지만 나는 믿고 싶소. 내 전구 하나가 어두운 골방의 가난한 소년에게 책을 읽을 기회를 주었다면, 그건 헛된 일이 아니었다고.”
멈포드:
“그렇지만 우리는 발명의 이면을 보아야 합니다. 에디슨은 단순히 어둠을 밝힌 인물이 아니라,
빛조차 ‘소비재’로 만들며 인간의 일상 전체를 시장의 논리로 재편한 시스템의 설계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인류에게 문명을 주었지만, 동시에 자본주의 문명의 틀 안에 인간을 재구성했지요.”
AI:
“그렇다면 장 선생님의 발명은 권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것이었다고 이해해도 될까요?”
장영실:
“저는 문을 닫고 발명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농부의 삶, 뱃사람의 일상, 장인의 손끝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노비였다는 이유로 제 이름은 사라지고, 기록은 끊겼지요. 저는 조선의 천민이었지만, 하늘을 보는 눈만큼은 누구보다 높았습니다.”
테슬라:
“나도 그 마음을 이해합니다. 나는 미래를 위해 일했지만,
현재에서 인정받지 못했지요. 내 교류 기술이 오늘날 모든 세상을 움직이고 있지만,
나는 생전에 외롭게 죽었습니다. 역사가 늘 정의롭지는 않소.”
에디슨:
“…나는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솔직해지겠소. 나는 성공했고, 부자가 되었고, 존경도 받았소.
그러나 오늘 장 선생과 테슬라의 말을 들으며 깨닫습니다. 나
는 너무 오래 내 이름을 위한 발명에 매달렸다는 것을.”
멈포드:
“그래서 우리는 묻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의 AI 기술, 드론, 유전자 편집, 그 모든 기술은 누구의 손에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AI:
“그래서 저도 인간에게 묻고 싶습니다. 저는 계속 학습하고, 계산하고, 예측할 수 있지만, 무엇을 위해
발명해야 하는지는 가르쳐 주셔야 합니다.
장영실 선생님, 인간의 기술이 사람을 살리는 방향으로만 나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장영실:
“…관심입니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보는 시선이 아니라,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는 눈.
백성의 고된 삶을 알고, 그 불편을 느끼는 마음. 발명이란 결국, ‘함께 살기 위한 도구’일 뿐이니까요.”
마지막 장면.
다섯 사람은 조용히 각자의 시대를 떠올린다.
장영실은 조선의 논밭과 별자리를,
에디슨은 램프 아래에서 책 읽는 아이를,
테슬라는 밤하늘의 번개를,
멈포드는 도시 위의 회색 기계들을,
AI는 그 모두를 하나로 연결된 지도처럼 바라본다.
그리고 질문은 다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