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끝났는가, 아니면 다른 얼굴을 하고 돌아왔는가?”
사방이 유리로 된 회랑, 안쪽에는 지도와 병기 그림이 걸려 있다.
두 남자가 마주 앉아 있다.
하나는 고대 병법의 대가 손자,
다른 하나는 로마 쇠망사를 써 내려간 계몽주의 역사가 기번이다.
손자:
전쟁이란, 무력을 동원해 의지를 꺾는 기술이오.
하지만 가장 위대한 승리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오.
나는 병법의 첫 줄에 이렇게 썼소.
“전쟁은 국가의 중대사요, 생사의 갈림이며 존망의 길이오.”
기번:
손자 선생 말씀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은 자신을 지키기보다,
팽창을 위해 전쟁을 선택해 왔습니다.
로마는 국경을 지키는 척하며 항상 국경 너머를 탐냈고,
그 끝은 제국의 피로와 내부 붕괴였습니다.
손자:
탐욕은 전쟁을 낳고, 전쟁은 나라를 소모시키오.
그러기에 나는 “싸우지 않는 전쟁”을 최고의 전략이라 했소.
상대를 꺾는 것이 아니라 꿰뚫는 것, 그것이 병법이오.
기번:
하지만 선생의 시대에는 아직 총도, 제국도, 민주주의도 없었습니다.
전쟁은 이제 이념, 체제, 인종, 그리고 자원까지 포함한 복합적인 투쟁이 되었습니다.
그 단순함을 말하기엔, 현대전은 너무나 비인간적입니다.
기번:
로마는 외적에게 패한 것이 아니라 내부의 피로, 도덕적 해이, 군사 의존도 증가로 무너졌습니다.
전쟁은 군인만이 아니라 농민, 상인, 여성, 아이들까지 망가뜨립니다.
전쟁은 국가만 죽이는 게 아니라, 문명을 쇠약하게 만듭니다.
손자:
그래서 나는 말했소.
“전쟁은 나라를 위태롭게도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전쟁은 더 큰 재앙이오.”
하지만 요즘 전쟁은 승리해도 행복하지 않고,
패배해도 죽지는 않는 이상한 전쟁이 되었구려.
기번:
그렇습니다.
군인은 전장에서 싸우고, 정치인은 회의실에서 싸우며,
국민은 인터넷에서 싸웁니다.
그러나 피해는 언제나 가장 연약한 이들에게 쏟아집니다.
기번:
우크라이나 전쟁은 영토 분쟁이 아니라 세계 질서에 대한 시험입니다.
러시아는 옛 제국의 망령을 되살리려 하고,
서구는 그것을 자유의 가치로 저지하려 합니다.
손자:
이 전쟁은 이미 병법이 아닌, 의지의 충돌이 되었소.
러시아는 긴 포위로 지치게 하고,
서방은 무기와 제재로 응수하며
전쟁은 장기전으로 바뀌었소.
기번:
그 와중에 미국은 두 가지 얼굴을 가졌습니다.
‘자유의 수호자’이자, ‘지정학적 이익의 계산자’이지요.
무기를 보내면서도 병사는 보내지 않습니다.
손자:
전쟁은 칼과 활이 아니라 이제 통화와 정보로 싸우는 법이 되었소.
미국은 전장을 무기로 지배하지 않고,
경제와 기술로 지배하려 하오.
기번:
맞습니다.
21세기의 전쟁은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 힘으로 벌어지며,
그 안에 진실과 거짓은 섞여 흐르고 있습니다.
손자:
전쟁을 막으려면, 전쟁이 얼마나 손해인지 계산할 줄 아는 정치가가 있어야 하오.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보다,
한 번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낫소.”
기번: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문명은 전쟁을 피한 때 가장 위대했습니다.
그리스의 철학, 로마의 법률, 르네상스의 예술…
이 모두는 칼이 잠잠할 때 피어난 꽃이었습니다.
손자:
전쟁은 사라지지 않소.
그러나 전쟁을 피하고자 하는 지혜는 기를 수 있소.
그 지혜는 두려움이 아니라 통찰에서,
복수심이 아니라 균형에서 나와야 하오.
기번:
전쟁을 막기 위해선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전쟁을 잊은 사람들은
반드시 그것을 반복하니까요.
그날 밤,
손자는 병법의 진언을 남겼고,
기번은 역사의 교훈을 속삭였다.
전쟁은 늘 인간을 시험하고,
인간은 늘 그 전쟁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한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싸우지 않고 지혜로서 이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