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왜 정상이라고 믿는가

소크라테스 vs 푸코 철학 대화

by 이안

등장인물

소크라테스: 고대 아테네의 철학자, 문답법과 이성적 탐구의 대가

푸코: 20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권력과 지식의 관계를 해부한 사상가


오늘은 도시 외곽의 조용한 원형극장. 텅 빈 좌석들이 늘어선 가운데,

두 철학자가 나란히 앉아 인간의 삶을 지켜보듯 이야기를 시작한다.


소크라테스 (극장의 중앙을 바라보며): 푸코, 자네에게 다시 묻겠네. 사람들은

스스로를 ‘정상’이라 믿지. 그런데 자네 말대로라면,

그 ‘정상’이란 것도 누군가가 정해놓은 것일 수 있겠군?

푸코 (고개를 끄덕이며): 네, 선생님. 저는 ‘정상’이라는 개념도 권력과 지식의 산물이라 봅니다.

즉,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사회가 정한 기준이지요.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누가 그 기준을 정하였는가? 자네 말대로라면,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우리를 ‘정상’ 또는 ‘비정상’으로 나누고 있다는 말인가?

푸코: 맞습니다. 과거에는 사제나 철학자, 근대 이후에는 의사, 정신과 의사, 과학자가

그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은 ‘진단’을 통해 사람을 분류했습니다.


소크라테스: 진단이라… 병을 밝히는 일인가 싶었는데, 자네 말은 ‘삶의 양식’까지

규정한다는 뜻이겠군. 누군가는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환자’로 불리는 것이 아닌가?

푸코: 바로 그 지점이 문제입니다. 광기(madness)는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었습니다. 고대에는 신의 계시로 여겨졌고, 중세에는 악마의 사주로 간주되었으며,

근대에는 정신병으로 치료 대상이 되었지요.


소크라테스: 그렇게 보니 광기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사회가 ‘누구를 가둘 것인가’를

결정해 온 셈이군. 감옥보다 무서운 것이, 바로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격리되는 것이 아닐까 싶네.

푸코: 정확히 그렇습니다. 제가 『광기의 역사』에서 말한 것이 그것입니다.

근대 사회는 더 이상 광인을 죽이지 않습니다.

대신, 병원에 가둡니다. 보호라는 이름 아래, 사회에서 분리하지요.


소크라테스: 겉으로는 자비로워 보이지만, 실상은 배제하는 것이로군.

묻겠네, 자네는 인간이 건강하다는 것, 온전하다는 것조차 믿지 않는가?

푸코: 저는 그 개념들이 중립적이지 않다고 보는 것입니다. '건강'과 '질병', '정상'과 '이탈'은

언제나 사회의 가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그 기준 자체가 억압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그럼 자네에게 ‘정상’이란, 본질이 아니라 사회의 선택이라는 말이겠군.

푸코: 예. ‘정상’은 통계나 의학으로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사회가 원하는 질서, 효율, 통제를

반영하는 규범입니다. 결국 사람들은 ‘정상처럼’ 보이기 위해 스스로를 교정하게 됩니다.


소크라테스: 자네의 말을 듣고 보니, 정상이라는 말조차 질문해 봐야겠군.

기준이 진실인지, 아니면 단지 익숙함인지 말일세.

푸코 (미소를 띠며): 그래서 저는 항상 묻습니다. ‘그 기준은 어디서 왔는가?’

‘누가 그것을 정했는가?’ ‘그로 인해 누가 배제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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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통찰


정상과 비정상은 본질이 아니라 사회가 구성한 경계이다.
‘정상’이란 말은 보호를 가장한 배제일 수 있다.
우리는 누구를 기준 삼아 ‘정상’이라 부르고 있는가?


다음 편 예고: 제5부. 성은 금기인가, 규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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