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나’도 ‘너’도 없다
– 무아·무인·무중생

『금강경, 마음을 벼리고 세계를 비추다』

by 이안


“若菩薩 有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卽非菩薩”

(약보살 유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즉비보살)

“만일 보살이 ‘나’라는 상, 사람이라는 상,
중생이라는 상, 오래 산다는 상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참된 보살이 아니다.”


『금강경』을 대표하는 이 구절은
우리 삶에 가장 깊숙이 자리 잡은 생각 하나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그 생각이란 바로,
“나는 누구인가?”
혹은 더 정확히 말해,
“나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불교의 무아(無我)는
바로 이 질문을 완전히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게 합니다.


자아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우리는 보통 자신을 ‘나’라고 부르며
이 몸, 이 이름, 이 감정, 이 기억이
‘나’의 정체성이라고 믿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금강경』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것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나’라는 것도
결국 오온(五蘊), 즉
색(몸), 수(느낌), 상(생각), 행(의지), 식(의식)이
인연 따라 모였다가 흩어지는 흐름일 뿐입니다.


오늘의 나는 어제와 다르고,
감정도 생각도 늘 바뀌며,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완벽히 설명해주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라는 이름 아래
이 모든 것들을 묶어
고정된 자아처럼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바로 그 착각이 고통의 씨앗이 됩니다.


“너는 왜 나를 몰라줘?” – 무인(無人)의 통찰


‘무아’에 이어 『금강경』은
‘무인상(無人相)’을 말합니다.

이는 단순히 “사람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타인을 하나의 고정된 존재로 규정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쟤는 원래 저래.

그 사람은 변하지 않아.


이런 말들은 모두
타인을 하나의 ‘상(相)’으로 고정한 판단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관계와 경험, 상황 속에서
늘 변화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사람’이라는 틀 안에
고정된 이미지를 부여하면
그때부터 관계는
움직일 수 없는 벽이 되어버립니다.


‘무인상’이란 그 벽을 허무는 가르침입니다.
타인을 볼 때마다
“이 사람도 나처럼 흐르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해 보세요.
그 마음 하나가
공감과 이해의 첫걸음이 됩니다.


중생을 구하되, 중생이 없다?


‘무중생상(無衆生相)’은
불교에서 가장 역설적이면서도
가장 깊은 자비의 핵심입니다.


보살은 중생을 구하되,
‘중생’이라는 실체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 말은
세상 모든 이들을 돕는 보살이
왜 그들을 돕는지에 대한 동기의 정화를 뜻합니다.


“내가 도와주는 사람은 중생이고,
나는 그 중생을 구하는 착한 사람이다.”
이 생각에 머무는 순간,
그 행위는 오히려 자기 이미지와 공덕에 대한 집착이 됩니다.


하지만 『금강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도우되, 아무것도

도운 것처럼 여기지 말라.”

그저 눈앞의 고통에 반응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면 손을 내밀며,
그 행위가 끝나면
조용히 사라질 수 있는 사람.

그가 바로 진정한 보살입니다.


‘무상’을 이해할 때 삶이 가벼워진다


무아, 무인, 무중생…
이 세 가지는 단순한 부정이 아닙니다.
이것은 삶을 훨씬 더 부드럽고 가볍게 살아가기 위한 마음의 구조 조정입니다.


‘내가 꼭 이런 사람이어야 해.’ → 내려놓고,
‘쟤는 원래 그런 애야.’ → 새롭게 보고,
‘이만큼 도왔으니 나는 착한 사람이야.’ → 조용히 비우고.


이런 태도는
마음을 탁 트이게 하고,
관계를 더 유연하게 하며,
삶 전체를 훨씬 가볍게 만들어줍니다.


그 어떤 이름도
그 어떤 정체성도
우리를 온전히 설명해 줄 수는 없습니다.


『금강경』은 말합니다.
“그 모든 이름과 형상은
다만 인연 따라 일시적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일까요?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잠시 빌려 살고 있는 흐름 위의 존재입니다.
그러니 그 흐름 속에서
더 겸손하게, 더 유연하게, 더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러한 무아의 깨달음이
결국 법마저도 놓아야 하는 지혜,
즉 “법상마저 버려라”는 금강경의 고차원적 통찰로 이어지는
제4편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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