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마음을 벼리고 세계를 비추다』
“法尙應捨 何況非法”
“법상응사 하황비법”
“법조차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이 아닌 것들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으랴.”
『금강경』에서 이 구절은
모든 불교 경전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과감한 선언 중 하나로 꼽힙니다.
왜냐하면,
불법(佛法), 즉 진리 자체도 결국은 넘어서야 할 대상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진리도 붙들지 마라",
"깨달음조차도 놓아라",
"도구를 목적화하지 마라."
이것은 불교가 지닌 무집착의 철학이
얼마나 철저한지를 보여줍니다.
불교에서는 수행을 ‘강을 건너는 일’에 비유하곤 합니다.
이생(此生)의 번뇌와 괴로움의 강을 건너
저 언덕 피안(彼岸), 즉 해탈과 자유의 세계로 향하는 여정.
그때 우리는 뗏목을 하나 타게 됩니다.
그 뗏목이 바로 ‘법’ — 진리,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강을 건넌 후에는 뗏목을 버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걸 머리에 이고 다닌다든가, 등에 메고 다닌다면
그것은 이제 짐이 됩니다.
『금강경』은 말합니다.
“법조차도 결국 도구일 뿐이다.
수단을 목적처럼 착각하지 마라.”
우리가 수행하고 공부하고 기도하는 것도
결국은 마음의 벽을 허물기 위한 길이지,
그 자체가 ‘내가 옳다’는 깃발이 되어선 안 됩니다.
이쯤에서 질문이 생깁니다.
“아니, 좋은 것도 버리라고요?”
“그럼 선행도 의미 없나요?”
“그럼 수행은 왜 하는 거죠?”
이 질문은 아주 중요합니다.
『금강경』은
“선행을 하지 말라”거나
“수행이 필요 없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선행은 하되, 그 결과에 집착하지 마라.”
“수행은 하되, 그 공덕에 머물지 마라.”
예를 들어,
누군가를 도왔을 때
‘내가 참 좋은 사람이지’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면
그 순간 우리는
‘도움’이라는 행위보다
‘내 이미지’라는 집착에 더 머물게 됩니다.
“나는 이렇게 바르게 살고 있어.”
이 생각마저도 결국은
또 하나의 자아 강화일 수 있다는 걸
금강경은 정확히 꿰뚫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놓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마치 차를 마실 때,
찻잔이 비어 있어야 차를 따를 수 있듯
마음도 채우기 위한 비움이 필요합니다.
『금강경』은 이런 비움의 수행을
한 구절로 요약합니다.
“應無所住 而生其心”
(응무소주 이생기심)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그 마음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수행도, 경전도, 기도도
그 순간을 넘기기 위한 길일뿐,
그것 자체에 ‘집착의 본진’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종종 진리를
무언가 ‘쥐어야 할 것’처럼 여깁니다.
“어떤 경전을 외워야 한다.”
“무슨 도리를 깨달아야 한다.”
“몇 년간 수행을 했는가가 중요하다.”
하지만 『금강경』은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그것도 지나가야 한다.”
“그것도 흐르는 것이다.”
“진리는 단단한 것이 아니라, 투명한 것이다.”
그 말은
진리는 쥐는 것이 아니라, 비울 때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오히려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내려놓는 그 순간,
그제서야 마음이 열리고,
깨달음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다음 편에서는
『금강경』이 말하는 ‘진짜 공덕’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좋은 일 = 복”이라는 단순한 공식이
어떻게 금강경에서는 뒤집히는지,
그리고 진정한 공덕이란 어떤 마음에서 피어나는 것인지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