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아랍 — 문명의 충돌과 국가의 운명(1)
소크라테스: 고대 아테네 철학자. 존재와 정의를 묻는 사유의 거장.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현대 인류학자. 문명과 신화의 구조를 탐구한 사유자.
소크라테스:
레비스트로스여, 자네는 먼 곳에서 온 학자라 들었네.
오늘 나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어, 자네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네.
레비스트로스:
말씀만 하십시오, 선생님. 제가 감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큰 영광입니다.
소크라테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 대해 들어보았을 걸세.
지도에서 보면 바닷가 작은 조각처럼 붙어 있는 땅인데,
그 나라가 주변 아랍 국가들과 여럿 전쟁을 치렀고,
놀랍게도 거의 모든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더군.
어찌 된 일일까?
군사력이 강해서인가? 미국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인가?
혹은... 이 말은 조심스럽지만, 유대인이 아랍인보다 더 뛰어난 민족 이어서일까?
레비스트로스:
선생님, 그 질문은 매우 중요한 동시에, 다루기 섬세한 주제입니다.
겉으로는 군사력이나 외교의 문제로 보이지만,
그 바탕에는 문명 내부의 ‘사유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
음, ‘사유 구조’라... 자네가 말하는 그것이 무엇인지 조금 더 들려주겠는가?
레비스트로스:
예, 선생님.
저는 문명을 판단할 때 단지 겉으로 드러난 제도나 무력, 경제력보다는
그 문명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구조화하는가를 중심에 둡니다.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디아스포라 전통에서 비롯된
고도로 축적된 문자 문화, 율법 체계, 해석 전통, 그리고 교육 인프라를 바탕으로
20세기 중반의 혼란 속에서도 곧장 근대 국가 체제로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소크라테스:
허허, 나라가 없이 떠돌던 이들이 오히려 강한 나라를 세웠다는 말이군.
역설적이지 않은가?
레비스트로스:
그렇습니다, 선생님.
정착하지 못했기에, 오히려 ‘기억’을 조직하고, ‘교육’을 전통화했으며,
공동체를 유지하는 사유와 토론의 구조를 발전시켰던 것이지요.
소크라테스:
반면, 아랍 세계는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가?
레비스트로스:
아랍 세계는 오스만 제국 이후, 서구 열강의 위임통치를 거치며
민족 국가의 정체성과 제도를 자립적으로 구성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더구나 내부에는 종파 갈등, 부족 중심 정체성, 권위주의적 정치 체제가 겹쳐
지속 가능한 공동의 기억과 규칙 구조를 만들지 못했지요.
소크라테스:
겉으로는 유사한 언어와 종교를 공유하지만,
그 실상은 구조화되지 않은 다원성의 충돌이었군.
레비스트로스:
정확하십니다, 선생님.
반면 유대인은 문자를 중심으로 ‘하나의 율법 구조’를 만들고,
그 안에서 정체성과 국가 전략을 설계했습니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미국의 지원은 결정적이되, 본질은 아니라는 말인가?
레비스트로스:
예, 선생님.
미국은 이스라엘의 구조 위에 자원을 얹어준 것입니다.
그 구조가 없었다면, 아무리 지원을 해도 지금과 같은 결과는 나오지 않았겠지요.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묻겠네.
사람들이 속으로는 자주 묻는 말일세.
“유대인이 아랍인보다 우수한 인종이기 때문인가?”
레비스트로스:
그 질문은 인류학자로서 반드시 부정해야 합니다.
유전적으로 우열한 민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떤 집단은 ‘사유의 방식’을 더 오래 훈련해 왔고,
어떤 집단은 그러한 축적을 방해받아왔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이스라엘은 기억, 해석, 토론, 지식의 가치를 공동체의 중심에 두었고,
그 문화적 구조가 오늘날의 정보·군사·외교 전략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소크라테스:
허, 결국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것은 무력이 아니라
문명의 내부 구조였다는 말이군.
레비스트로스:
그렇습니다.
무기는 적을 쓰러뜨리지만,
구조는 공동체를 살립니다.
소크라테스:
그대와의 대화를 통해, 나는 이제 한 가지를 확신하게 되었네.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다시 묻지 않으면 안 될 질문이 하나 있네.
“당신의 공동체는 지금, 사유하고 있는가?”
그날 이후, 소크라테스는 정원의 묵은 나무를 바라보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우열’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제 알았습니다.
문명을 가르는 것은 힘이 아니라, 구조요, 사유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