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론]21. 자신을 보는 자의 문제

반성적 자아와 의식의 거울

by 이안

1. 철학적 인트로

— 내가 나를 본다고 말할 때, 그 보는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나를 반성한다.”
“나는 지금 내 감정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러나 이 말에는 중대한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보는 자아’, 즉 ‘제2의 나’가 존재한다는 믿음입니다.


하지만 이 구조는 곧 질문으로 바뀝니다.
“그 나를 보는 또 다른 나는 누구인가?”

거울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
감정을 관찰하는 그 ‘의식’은 과연 고정된 주체일까요?
아니면 의식이 만든 일시적 반사일 뿐일까요?


2. 초기불교 — ‘의식의 중첩’을 벗겨내기


《마하위붓따마경》에서 붓다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마음이 마음을 본다 함은,
무엇이 무엇을 본다 함인가?”


이 질문은, 의식이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탐구입니다.


불교에서는 이중의식(의식이 의식을 보는 구조)은 실체가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자아를 본다고 할 때에도,
그 ‘보는 자’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며 조건에 따라 생겨나는 무상한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즉, 나를 보는 나는 영속적 자아가 아니라
감각과 인식의 흐름 속에서 계속 생성되는 일시적 형상입니다.


3. 대승불교 — 말라식과 의식의 반사 구조


대승 유식학은 이 문제를 더욱 심층적으로 다룹니다.
‘보는 나’에 대한 집착은 말라식(末那識)의 작용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합니다.

말라식은 항상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대상으로 삼아 ‘나’라는 생각을 일으키며,
“나는 본다”, “나는 안다”라는 중심 의식을 구축합니다.


그러나 말라식 자체도 하나의 ‘식’ 일뿐이며,
그 안에도 고정된 실체나 독립된 자아는 없습니다.


말라식의 개념은 무착(아상가)과 세친(바수반두)의 유식학에서 체계화되었으며,
그들은 자아의식은 아뢰야식에 대한 오인된 반사 작용이라고 보았습니다.


즉, 나는 나를 본다는 구조 자체가
일종의 의식의 착각이며, 자기 반사적 환상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4. 현대 철학과 신경과학 — 반성적 자아의 허상


현대 뇌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는
『데카르트의 오류』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self)는 연속된 체험의 결과이며,
신경계가 조건에 따라 순간적으로 구성하는 패턴이다.”


이 말은 고정된 자아가 아니라,
경험과 자극이 교차하는 순간마다 구성되는 즉흥적 ‘자기’를 말합니다.


또한 토마스 메츨링거는 『자아의 터널』에서 말합니다: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것은 뇌가 만든 정보 구조일 뿐이며,
그 자아는 실체가 아니라 뇌의 유용한 허상이다.”


결국 ‘자신을 보는 자’는 실재하는 독립 존재가 아니라,
신경 활동 속에 생성된 하나의 시뮬레이션된 관찰자입니다.


5. 현대적 적용 — 자기 관찰의 명료함, 그리고 내려놓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자신을 바라보는 자아가 허상이라면, 자기 성찰은 무의미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아의 통찰은 진정한 명료함을 가능하게 합니다.


✔️ ‘나를 보는 나’를 절대화하지 않음으로써
✔️ 평가보다 관찰에 가까운 의식을 가질 수 있고
✔️ 판단보다 이해에 가까운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자기 관찰은 무아를 전제로 할 때 더 정확해집니다.
‘나’라는 실체를 제거할 때,
비로소 삶의 조건과 흐름이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6. 맺음말 — 보는 자가 사라질 때, 깨어 있음이 시작된다


‘나는 나를 본다’는 말은
그 자체로 자아의 환영을 두 겹으로 덧씌웁니다.
그러나 보는 자가 없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더 깊은 평온에 이르게 됩니다.


마치 물결이 스스로를 보지 않듯,
우리의 의식도 그 흐름 속에 있을 뿐입니다.


그 순간, 우리는 ‘자신’이라는 무게로부터 벗어나,
깨어 있는 관찰 그 자체로 존재하게 됩니다.


7. 다음 편 예고


무아론 제22편 — 기억과 무아의 딜레마
자아의 근거로 흔히 제시되는 ‘기억’은,
실제로 ‘동일한 나’를 증명하는가?


불교는 기억의 연속성과 무아의 비연속성을 어떻게 조화시켰는가를 탐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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