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기신론 6편. 왜 모든 중생은 본래 부처인가

—불성과 일심

by 이안


1. 철학적 인트로 — 부처는 멀리 있는가, 가까이 있는가


우리 대부분은 "부처"를 먼 존재로 여깁니다.
깨달음을 성취한 위대한 이, 한없이 자비롭고 지혜로운 존재.


그러나 《대승기신론》은 말합니다:

"모든 중생은 본래 부처이다."


그렇다면 중생과 부처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의 일상적 번뇌와 불성(佛性)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요?

이 질문은 '일심(一心)'이라는 대승의 핵심 사유로부터 풀립니다.


2. 핵심 구절 — 일심과 불성의 동일 구조


一心法中具一切佛法。
(일심법중구일체불법)
→ 하나의 마음 안에 모든 부처의 법이 갖추어져 있다.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은 사유 구조를 전제합니다:


일심(一心)은 본래 진여와 생멸, 두 문(門)을 함께 지닌다.

진여는 곧 불성이며, 모든 중생 안에 본래 갖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중생도 근본적으로 부처와 다르지 않다.


즉, 중생이 겪는 번뇌와 고통도
그 심성 안에 부처의 성품을 품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대승의 "본래성불" 사상입니다.


3. 구조적 분석 — 진여와 생멸, 일심이문(一心二門)


《기신론》은 마음(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진여문(眞如門): 불변의 본체로서의 마음 → 불성
생멸문(生滅門): 조건 따라 작용하는 마음 → 중생심


하지만 이 둘은 둘이 아닙니다.

진여는 생멸 속에 스며 있고,

생멸은 진여 위에서 일어납니다.


따라서 마음은 두 가지 성격을 동시에 지닙니다:

항상 머물되, 언제나 변화하고

본래 깨달아 있으나, 일시적으로 망각하는 존재


이처럼 불성과 중생심은 본래 하나의 심성 위에서 나타난 상이한 양상일 뿐입니다.


4. 원효의 해석 — "마음은 둘이 아니다"


원효는 『기신론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若知一心無二,則知一切法皆不離佛性。
(약지일심무이, 즉지일체법개불리불성)

→ 만약 마음이 둘이 아님을 안다면,
  세상의 모든 법은 모두 불성과 떨어질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원효는 불성을 '다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인 진여'로 해석합니다.
중생과 부처는 본질상 동일하나,
깨닫고 드러낸 자가 부처이고,
망각하고 흐린 상태가 중생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깨달음이 '추가되는 것'이 아니라,
'회복되고 드러나는 것'임을 뜻합니다.


5. 현대적 적용 — 자아의 회복, 존재의 신뢰


오늘날 우리는 자신을 끊임없이 평가합니다.
무능력하다, 이기적이다, 망가졌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기신론》은 말합니다:

"그대는 본래 부처이다.
 다만 지금은 그것을 잊었을 뿐이다."


이 통찰은 다음과 같은 실천적 전환을 이끕니다:


'변해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회복하면 된다'는 신뢰로 전환

'나는 부족하다'는 열등감이 아니라,

'나는 본래 완전하다'는 자기 연민과 자각


이것이 대승의 자기 이해이며,
모든 존재를 향한 무한한 자비의 뿌리입니다.


6. 맺음말 —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다


불성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것은 불교의 출발점이자,
《대승기신론》이 가장 강조하는 깨달음의 가능성입니다.


우리는 묻습니다:
"정말 나도 부처가 될 수 있을까?"


《기신론》은 말합니다:

"그대는 이미 부처이다.
 그 마음을 다만 다시 드러내기만 하면 된다."


7. 다음 편 예고


제7편 — 전의란 무엇인가: 마음은 어떻게 근본적으로 바뀌는가
깨달음은 어떻게 현실 속 변화로 이어지는가?
의식의 근본 전환, '전의(轉依)'의 철학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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