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담 스미스에서 마르크스까지
한 손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움직였다.
또 다른 손은 거칠었고, 굳은살이 박였다. 그러나 목소리가 없었다.
19세기, 이 두 손이 세상을 만든다. 하나는 시장이고, 하나는 노동이다.
1776년,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을 출간하며 새로운 세계를 그려냈다. 인간은 이기심에 따라 행동하지만, 그 이기심은 전체 사회의 부를 증진시킨다 — 이것이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의 핵심 논리였다.
스미스는 런던의 시장에서 빵을 굽는 제빵사, 맥주를 만드는 양조자, 그리고 장화를 만드는 구두장이를 관찰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만, 그 결과는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체계로 이어진다. 개인의 이기심이 전체의 조화로 이어지는 이 체계는, 중상주의 국가 통제의 반대편에서 근대 자본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이뤘다.
아담 스미스가 '시장'을 주목했다면, 칼 마르크스는 '노동'에 주목했다. 1844년 파리에서 쓴 『경제학 철학 수고』에서 그는 노동이 인간의 본질이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은 인간을 소외시킨다고 진단했다.
“노동은 노동자에게 외적인 것이다. 노동은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행위이며, 노동자는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팔아야 한다.”
마르크스에게 노동은 단지 생산의 수단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토대였다. 하지만 자본주의에서 노동은 상품이 되었고, 인간은 자신의 활동에서 분리되었다.
19세기 중반, 맨체스터는 두 사상의 실험장이었다. 자유방임적 시장경제가 작동하는 동시에, 인간의 노동이 고통의 현장으로 드러났다. 1840년대의 맨체스터 상점가는 눈부신 유리 진열창으로 가득했고, 세계 각국의 면직물과 식민지산 설탕, 인도산 향신료가 넘쳤다. 아담 스미스의 이상은 그 거리에 실현된 듯 보였다.
하지만 그 바로 뒤편, 앤코츠(Ancoats) 공장지대에는 하루 14시간을 일하는 노동자, 석탄 연기로 가득한 방, 그리고 방진복도 없이 일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영국 작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에서 이 도시를 "기계는 진보하지만, 인간은 파괴된다"라고 묘사했다.
보이지 않는 손은 풍요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만든 풍요는 누구의 것이었는가? 노동의 손은 세계를 짓고, 옷을 짜고, 벽돌을 쌓았지만,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했다. 시장은 자유를 말했지만, 노동은 규율 속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상품의 가치를 분석하며, 노동이 자본에 흡수될 때 인간은 더 이상 자기 존재를 자각하지 못한다고 경고했다. 반면 스미스는 도덕 감정론에서 인간의 공감능력을 강조했고, 시장 역시 윤리적 토대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고 보았다. 두 사람은 같은 시대를 살지 않았지만, 하나의 세계를 두 손으로 바라본 셈이었다.
1) 보이지 않는 손은 새로운 소비의 문화를 낳았다. 1810년, 영국 해군 장교 피터 듀런드는 최초의 통조림 특허를 받았다. 전쟁을 위한 기술은 곧 도시의 식탁으로 이어졌고, 1840년대에는 런던 상점가에서 고기 통조림과 과일 통조림이 유행했다.
2) 한편 노동의 손은 저항의 방식을 찾아냈다. 1834년, '도체스터의 여섯 노동자' 사건에서 조합 결성을 시도한 노동자들이 추방당하자, 영국 전역에서 탄원운동이 벌어졌고, 이는 이후 노동조합의 합법화를 촉진했다.
3) 그 사이, 유리 진열창은 도시를 바꾸고 있었다. 1851년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서는 대형 유리궁전이 세워졌다. '시장'과 '노동'이 만든 세계가 이제 하나의 전시물이 되었다. 그리고 그 전시물 앞에서, 인간은 자신이 만든 체계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한 손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다른 손은 여전히 침묵 속에서 움직인다. 19세기의 두 손은 지금도 우리 곁에 있다. '시장'과 '노동'은 단지 경제체제의 키워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두 개의 시선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인간을 기능으로 보고, 구조 속에서 움직이게 한다. 노동의 손은 인간을 행위로 보고, 삶의 자리를 붙잡는다.
우리는 언제나 그 둘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했지만, 종종 한 손은 과잉되고, 다른 손은 망각되었다. 철학은 그 손들을 붙잡고 다시 묻는다. 무엇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가? 그리고 그 움직임은 누구의 것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 어떤 손을 따라 세계를 만들고 있는가?
그러나 그 손들이 세운 나라는, 언제부터 ‘국가’가 되었는가?
다음은 '민족'이라는 상상과 현실을 마주합니다.
3편. 민족주의의 발명 — 민족은 언제 만들어졌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