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3. 민족은 언제 만들어졌는가?

부제: 세계는 왜 지금과 같아졌는가

by 이안

한 사람이 국기를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울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로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같은 이야기를 믿고 있었다.

국가란 무엇인가? 민족이란 무엇인가?

19세기, 그것은 발명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이 세계를 지배한다.


1. 1789년, 프랑스혁명과 국민이라는 개념의 탄생


이전까지 왕은 신과 계약했고, 국민은 왕의 백성에 불과했다. 그러나 1789년, 프랑스혁명은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냈다. '국민(nation)'이라는 집단이 스스로의 주권을 가진다는 사상.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국민 주권'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했고, 혁명의 현장에서는 프랑스어를 쓰지 못하는 농민들이 '프랑스인'이 되는 광경이 펼쳐졌다.

에르네스트 르낭은 1882년 『민족이란 무엇인가』라는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민족은 매일의 국민투표이며,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동의 위에 세워진 정신 공동체다."


2. 민족은 어떻게 발명되었는가 —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


1983년, 베네딕트 앤더슨은 『상상의 공동체』에서 민족이란 오래된 것도, 자연적인 것도 아니며, 근대에 특정한 조건 아래 만들어진 '상상의 산물'이라고 분석했다. 인쇄자본주의, 공용어의 정립, 시간 동기화 — 이런 요소들이 국민국가를 가능하게 했다.


앤더슨의 주장은 민족주의의 신화를 해체했다. 민족은 언어와 혈통이 아닌 '이야기'와 '상상'으로 연결된 집단이었다. 가령 독일은 통일되기 전 수십 개의 소국들로 나뉘어 있었지만, 괴테, 헤겔, 베토벤을 공유함으로써 하나의 '문화민족'을 형성할 수 있었다.


3. 체코, 폴란드, 핀란드 — 이야기로 싸운 민족들


프랑스나 영국처럼 정치적 실체가 있었던 민족과 달리, 19세기 동유럽의 민족들은 실체 없는 정신의 공동체였다. 체코의 지식인들은 민요와 전설을 수집했고, 폴란드 시인 미츠키에비치는 민족의 언어로 서사시를 지었다. 핀란드의 엘리아스 뢴로트는 『칼레발라』를 채록하며, 없는 민족의 정체성을 만들어갔다.

이들은 총 대신 시를 들었고, 영토 대신 언어와 전통을 되살렸다. 민족은 이념 이전에 정서였고, 기억이었다. 그리고 이 기억은 때로 국경보다 더 단단한 연대를 만들었다.


4. 사유의 장 — 민족은 발명되었는가, 발견되었는가?


민족주의는 해방의 사상이었는가, 새로운 억압의 구조였는가? 19세기 후반, 민족주의는 독립과 저항의 상징이 되었지만, 동시에 배제와 동질성의 논리를 강화했다. '우리'라는 말은 곧 '그들'의 추방이었다.


마르크스는 민족보다 계급을 우선시했고, 니체는 민족주의를 약자의 도덕이라 비판했다. 반면 헤겔은 민족정신(Volkgeist)을 역사 발전의 중심으로 보았다. 민족주의는 철학자들에게조차 애매한 질문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감정과 이성, 기억과 상상, 권리와 공포가 뒤엉킨 복합체였다.


5. 지금 여기에 — 상상의 공동체가 만든 일상의 장면들


* 1840년대 독일의 학생들은 ‘검은 코트, 빨간 조끼, 금빛 단추’를 입고 ‘독일 민족의 통일’을 노래했다. 이들이 훗날 비스마르크를 지지하며 제국을 탄생시켰다.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는 9개 민족이 10개 언어로 신문을 발간했다. 아침마다 서로 다른 언어의 기사가 같은 사건을 전했다.

* 런던의 벽에는 아일랜드 독립을 위한 펜 누트기(Nib Pen Uprising) 포스터가 붙었고, 카페에서는 이탈리아 통일을 위해 모금을 했다.

* 핀란드에서는 아이들이 핀란드어로 동화를 읽으며 자랐다. 이전 세대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핀란드어의 동심’이 생긴 것이다.


이 모든 장면은 민족이라는 이름 아래 태어난 풍경이었다. 그러나 그 민족은 실제보다 이야기였고, 감정보다 구성이었다. 그것은 마치 무대 위의 조명처럼 — 있었기에 믿은 것이 아니라, 믿었기에 존재했던 것이다.


6. 마무리 — 이름 없는 것들의 연대, 또는 추방의 시작


민족은 질문이다. 언제부터 우리는 '우리'라고 불렀는가?

19세기, 인간은 자신을 정의하기 위해 수천 개의 깃발을 세웠다. 그 깃발은 서로 다른 색을 가졌지만, 비슷한 욕망을 담고 있었다. 소속, 기억, 사랑, 그리고 적.

우리는 민족을 통해 함께 울었고, 함께 죽었다. 그러나 그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이름들이 지워졌는가? 민족은 연대의 언어였지만, 또한 추방의 문장이기도 했다.

이제 다시 묻는다. 우리는 왜 '국경' 안에서만 꿈을 꾸는가?


7. 다음 편 예고


민족이 역사를 만들었다면, 제국은 역사를 어떻게 재편했는가?

4편. 제국이라는 발명품 — 제국은 왜 반복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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