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위에 선 얼굴, 존재를 응시하다
거울 앞의 얼굴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고흐는 생애 동안 서른다섯 점 안팎의 자화상을 남겼다.
그중 널리 알려진 작품만 해도 1887년의 회색 펠트모자를 쓴 자화상(암스테르담), 1888년 말의 귀를 붕대로 감싼 자화상(런던 코톨드), 1889년 생레미 시기의 청록 배경 자화상(파리 오르세), 같은 해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의 자화상 등이 있다. 오늘 글에서는 특히 1889년 오르세 소장의 자화상을 중심으로 읽되, 다른 버전들과 엮어 하나의 얼굴이 품은 여러 시간을 함께 더듬어본다.
1889년, 고흐는 생폴 드 모졸 요양원에 스스로 들어가 1년여를 보낸다. 모델을 구할 돈도, 사람을 대할 여유도 없던 그는 거울 앞에 앉아 자신을 반복해 그린다. 자화상은 가난한 화가의 ‘대체 모델’이었지만, 그 이상이었다.
고흐에게 자화상은 붕괴하는 자아를 붙잡는 의식이었다.
오르세 미술관은 이 작품의 차가운 청록과 불타는 수염의 보색 대비, 배경의 소용돌이 아라베스크가 얼굴의 긴장을 증폭한다고 설명한다. 이때의 자화상은 한 인물 사진이 아니라, 고독과 회복 사이에서 ‘나’라는 현상을 기록한 도면이다.
오르세 자화상에서 붓질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얼굴의 윤곽선은 단호하게 끊어지고, 배경은 미세한 소용돌이로 진동한다. 파란-청록의 냉기가 화면을 적시고, 불그스름한 수염이 그 위에서 타오른다.
이 보색의 충돌은 불안과 의지라는 두 감정을 동시에 켠다.
눈은 정면을 응시하지만, 어딘가 먼 곳을 본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고흐의 자화상들은 거울을 통해 그려졌기 때문에 화면 속 오른쪽 귀는 실제로는 왼쪽 귀다. 그래서 ‘붕대 자화상’에서 보이는 귀는 그의 잘린 왼쪽 귀가 거울에 반전되어 그려진 것이다. 또한 그 유명한 ‘붕대 자화상’의 배경은 청록 단색이 아니라 아를의 노란 방, 이젤, 일본목판화 포스터가 걸린 내부로, 서양의 방 안에 동양의 이미지가 들어온 고흐적 세계관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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