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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 그림의 브뤼헐] 9편. 반역한 천사들의 추락

추락하는 자들의 영혼, 인간의 슬픔과 빛

by 이안

1. 서두 — 빛과 어둠이 서로를 삼키는 순간


하늘이 열리고, 그 틈새로 수많은 형상들이 떨어진다.

〈반역한 천사들의 추락〉은 단순한 종교화가 아니다.


그것은 질서가 붕괴되는
인간의 세계관을 그린 풍경이다.


위쪽에서는 여전히 빛이 남아 있지만, 아래로 내려갈수록 인간의 얼굴, 괴수의 몸, 곤충의 날개가 얽혀 들어간다. 그것은 하늘의 전쟁이 아니라 신과 인간의 경계가 무너진 순간, 곧 인간이 스스로의 내면을 마주 보게 된 장면이다.


2. 회화의 내면 — 붕괴의 질서, 질서의 붕괴


브뤼헐의 화면은 혼돈으로 가득하지만, 정밀하다.

수많은 형상들이 서로 부딪히며 하강하지만, 중심에는 미카엘이 있다.

그의 검은 공기를 가르지만, 빛은 닿지 않는다.

이 구조는 단순한 전투가 아니라 하늘의 권위가 스스로 해체되는 장면이다.


질서의 붕괴가 혼돈을 낳는 것이 아니라,
그 붕괴 자체가 새로운 질서의 탄생이라는
역설이 깃들어 있다.

브뤼헐은 ‘신의 전쟁’을 그린 것이 아니라,
신 없는 세계가 어떻게 인간의 의식 속에서 재편되는가를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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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르 브뤼헐(대), 반역한 천사들의 추락 (The Fall of the Rebel Angels), 1562년, 목판에 유채,

117 × 162cm, 벨기에 왕립미술관(Musées royaux des Beaux-Arts de Belgique) 소장



3. 색채와 감각 — 폭발의 빛, 침묵의 하강


하늘은 여전히 푸른빛을 머금고 있지만, 그 푸름은 평화가 아니라 긴장의 색이다.

빛은 아래로 내려올수록 탁해지고, 그 끝에서 불길은 세계의 균열을 비춘다.

그 빛은 구원의 약속이 아니라, 붕괴 직전의 질서가 내뿜는 마지막 숨결이다.

푸른 하늘은 더 이상 신의 품이 아니며, 붉은 불길은 죄의 상징이 아니라 정신의 과열된 상태다.


브뤼헐은 색으로 감정을 조절하지 않았다. 그는 색을 ‘의식의 온도계’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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