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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휘 Jul 29. 2024

매 맞는 여자 2

소설쓰기) 샤워기로 맞는 날 1

나는 일을 마치고 지하철을 탔고 아이한테 전화를 했다. 울고 있었다. 아빠가 아직 안 들어왔단다. 남편은 오늘 내가 야근하는 걸 알고 일찍 들어가 애를 봐주기로 약속했었다.


일단, 9호선 잠실나루역에서 지하철을 막차를 타고 송정역 전 역에 내리는 코스였다. 송정역에서 택시를 잡는 편보다 김포공항이 지하철을 잡기엔 훨씬 순조로웠기 때문이다. 마음이 급했다.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은 다들 한 껏 취해있었다.


삐뜷빼뚫한지만 각진 반듯하게 다려진 양복과 어울리는 넥타이자락이 반쯤 풀려있는 모습의 남자들은 연신 두 눈을 껌뻑이다 감았다를 반복했다. 여자들의 짧은 치마와 신발은 꺾어 신지 딱 좋았지만 명품 그것은 꺽어신을 만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발 모양은 다소곳하게 맞추었지만 앞 발가락이 움지락 거리는 걸 보니 꽤나 발이 많이 아파 보였다.


공간의 형태도 뒤죽박죽거리는 느낌이었다. 인간 하나하나 다들 머리옆에 덜렁거리는 손잡이는 잡고 있지만 여차하면 앞으로 또는 뒤로 꼬라 박힐 모양으로 휘청거렸다. 술냄새가 진동을 하는 지하철 안에는 오만가지 냄새가 났다. 술냄새, 담배냄새, 갈비냄새, 꼬리 한 고량주냄새에 땀냄새.. 그건 그들의 냄새이고, 난 내 몸에서 나는 음식 냄새가 역겨웠다.


식은땀이 났다. 아이가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일하다 둘 다 늦으면 남동생이나 친정엄마에게 부탁을 했었는데 오늘은 남편이 봐준다고 했기에 화가 났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공포스러웠다. 그 불안함이 30km 수화기 너머로 느껴졌다. 아이가 그 시간에 혼자 있는 게 처음이라 아이가 놀란 건지, 아니면, 아이가 혼자 있다는 생각에 우는 소리를 들은 내가 놀란 건지, 심장이 쿵쾅거리고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내 앞에 선 남자는 비틀비틀 한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있지만 이내 앞으로 꼬꾸라질랑 말랑하고 있었다. 그냥 땅바닥에 눕히는 게 어쩜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차하면 내 머리통 위로 자기가 먹은 음식을 토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하루종일 서서 일하느라 나도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하고 저 손잡이를 부여잡아 매달릴 만큼의 여유는 코딱지만큼도 없었다.


머릿속엔 수화기 너머로 우는 9살 꼬마딸의 울음소리와 술에 절어 자기 사업이 이번엔 잘 될 거라며 큰소리로 전화기에 시시덕거리는 목소리를 생각만 해도 바늘로 입을 꿰매버리고 싶었다. 상상이지만… 가끔 나는 입을 테이프로 붙여놓기 전에 조용히 하라는 경고를 하는데, 말은 테이프라고 하지만, 속마음은 바늘로 한 땀 한 땀 꿰매주고 싶다. 바늘에 낚시줄을 묶고 입술에 바늘을 쑤셔 꽂는다. 따끔하면 피 한 방울 실을 쭉 뽑아낸다. 그리고 또 한 땀 바늘에 꿰어 실을 쭉 뽑아낸다. 라는 상상을 하며 테이프 얘기를 하는데. 그럼 웃는다. 진짜 테이프라고 생각하나 보다. 나는 바늘을 꿈꾸는데,, 그 바늘은 한 번 들어가면 뒤집어 나올 수 없는 낚싯바늘처럼 갈고리가 있아 앞으로 잡아당겨 나오지 못하는 이상 뒤로 무를 수가 없는 바늘이다.


지하철 내 머리통 앞에서 토할 거 같은 남자나 토 같은 말을 매 번 녹음기처럼 내뱉는 남편이 똑같이 미친놈으로 보였다. 내 머리에 토를 해라 그럼 오늘 얘부터 경찰서에 끌고 가서 얘부터 조진다. 어디 한번 토해봐, 오늘 걸리는 연놈 누구 하나는 죽었어!!!!


여름, 한 여름에 9호선 에어컨은 아침 지하철이 지옥철이라는 이름을 만회하려는 듯 지옥철이라는 오명을 지우고 싶은지 에어컨만으로 아주 시원하다 못해 시체보관실에서나 느낄법한 한기가 느껴졌다. 그 공기에는 죽은 영혼들도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목이 꺾인 여자들, 한쪽 머리가 없는 투명한 인간형태의 그것들도 한 자리씩 차지하느라 자리는 꽉 차있으나 서리는 시원함은 집에 가겠다는 의지가 드러나도록 서슬 퍼렜다.. 그들도 퇴근을 하는 모습으로 비틀거리고 있었다. 투명한 인간들도 집으로 퇴근중이었다.


색깔은 파랗고 투명한 인간도 불투명한 인간들 사이에서 지친 기색이 역력하였다. 멀쩡하게 단정한 투명한 인간들도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늙은 투명한 인간보다 젊은 투명한 인간들이 더 많다. 책을 읽는 투명한 여자, 어둠과 밝음 딱 두 가지의 깜빡임만 보이는 창밖을 보는 투명한 인간도 가만히 그 자리를 지켰다. 공기청정기 기능이 있는 건지 이내 그 냄새들이 신경 쓰이지 않을 때 쯤, 지하철에는 여의도에 도착하니 투명한 인간들과 불투명한 인간들이 차례로 내려 지하철은 제법 한산해졌다.


그리고 내가 내릴 지점에 도착했을 때, 나를 지켜줄 투명한 인간 하나만 따라붙었으면 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왠지 오늘은 집에 가면 죽을지도 모르겠디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아무도 없네, 혼자 싸워야겠구먼, 그래, 오늘도 혼자 싸워보자.  택시를 타고 20분 만에 집으로 달려갔다.

아이는 이 한 여름에 오리털이불을 뒤집어쓰고 안방에 있었다. 내가 아이이름을 불렀을 때 어 움직이지 않고 불룩한 이불속에 웅크리고 있는 게 느껴질 만큼 동그란 모양을 하고 울고 있었다. 성격 급한 나는 이불을 뒤집어 재꼈다 그 울음의 깊이를 누가 설명할 수 있을까. 아이는 발가락 끝부터 눈물이 흐르는 머리끝까지 공포와 안도의 얼굴 그 어딘가의 무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나는 속삭였다. 괜찮아, 엄마 왔다! 그렇게 품에서 한 참을 울었다. 씻으러 간다 했더니 못 가게 했다. 그래서 내일 학교 가야 하니 누워있으라 했지만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엄마 씻는데 앞에 앉아 있으라 했더니 그런다고 했다. 일단, 이 사단을 만든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아이 앞에서 더 큰소리로 네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듯이 뭐 하는 짓이냐고 소리를 질렀다, 돌아오는 소리는 예상치 못했지만, 병신 같은 말을 씨 부리는 건 매 한 가지였다. 내가 하는 사업이 얼마나 큰 건데 재수 없게 지랄한다고 했다. 난 전화를 끊어버렸다. 지금 내가 할 일은 빨리 씻고 아이를 데리고 누워 자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술에 취해 소리 지르는 남편이 무섭기도 했다. 난 오늘도 맞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화장실 앞에 앉아있으리 하고 빨리 씻기 시작했다. 머리에 거품을 부글부글 했다는 음식에 냄새가 빨리 없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거품을 많이 만들었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보여줬다 엄마가 아이스크림 만들었다고.


아이는 기운이 하나도 없는 채로 마른 웃음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엔 웃지 않았다. 그냥 바라만 볼 뿐이었다. 너무 많이 울어서 인지 공포에 질려서 인지 가만히 있었다.


아이를 안심시키려고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거품으로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있는데 남편이 들어왔다. 남편은 아이에게 인사를 했다. 우리 딸 아빠가 늦어서 미안해. 그리고 화장실도 들어왔다.


벾에 꽂혀서 따뜻한 물이 나오는 화장실샤워기를 벽에서 뺐다. 그리고 물이 나오는 주둥이를 손으로 잡아 내 머리에 가격 하기 시작했다. 한 대, 두대, 세대, 네대, 때리면서 맗했다.

한 대, 내가 이 미친년아 일한 다고 했지,

두 대, 근데 이 썅년아 왜 자꾸 전화질이야,

세 대, 개같은년아 넌 맞아야 돼,

네 대, 씨발년이 너때문에 되는 일도 안 돼……


처음엔 이 무슨 일인가 했다. 그러더니 이번엔 샤워기에 은색 끈을 본인 팔에 묶어 단단히 고정한 다음 샤워기에 손잡이를 잡고 내 머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거품이 가득한 얼굴에서 앞이 안 보이고 속수무책으로 맞았다. 남편은 오른손으로는 샤워기를 잡고 왼손으로는 나의 긴 머리를 돌려 잡아 머리를 때렸다 아이가 보고 있었다. 세면대에 머리를 부딪히고 바닥에 꼬구라졌다.


나는 내가 맞는 것도 아팠지만 아이가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이 상황을 자체가 더욱더 공포스러웠다. 나만 겪어도 무시무시한 일을 아이의 눈으로도 보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보이는 것보다 아이 눈으로 보이는 게 훨씬 더 정확하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이에게 방으로 들어가라고 소리쳤다. 그랬더니 아이는 더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의 소리는 공포로 바뀌어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나는 일단 화장실 문을 닫았다. 밖에서는 아이가 우는소리 밖에 안 들렸다. 난 이렇게 맞다가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을 얼마나 마시면 이렇게 사람이 돌지 생각하며…… 일단, 112에 신고할 계획을 세웠다. 이렇게 맞다간 오늘 화장실에서 맞아죽으리…


문을 닫고 손에 잡히는 걸 잡았다. 칫솔이 잡혔다 칫솔은 무기가 되지 않는다. 치약을 잡았다. 최악에 뚜껑을 열고 뿌렸지만 발사가 되는 게 아니고 아래로 힘 없이 떨어질 뿐이었다.

주르륵주르륵 화장실은 샴푸거품과 치약냄새로 너무나 향기로 왔다. 그 아픔과 고통이 없었다면 그 향기는 엄마 어렸을 때 나를 깨끗하게 시켜줬을 때 수건으로 머리에서 물기를 닦아주던, 그리고 물기를 말리기 전 그 향기와 같다.


향기는 같지만 상황은 달랐다. 나는 피해자고 맞고 있었고 울고 있었고 엎어져 있었다. 이렇게 맞다가는 죽겠다 싶었다. 다시 손에 잡히는 거 잡았다.

이번에 잡힌 건 린스였다.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눈에 뿌렸다 다 경험해 봤겠지만 린스가 눈에 들어간다고 해서 눈이 따가워서 죽을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린스가 갑자기 눈에 들어가니 당황했는지 굉장히 고통스러워는 소리를 냈다. 그르릉 그르릉 그 그 그르렁 소리는 넌 오늘 죽었어라 소리 같이 들렸다.


일단 밖으로 나와 안 방 문을 잠갔다, 아이는 이불 속에 들어가 있었다. 밖에 핸드폰을 두고 왔다. 남편은 미친놈처럼 표호를 하면서 눈을 박박 닦고 있었다. 핸드폰만 가지고 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갔다. 들어오지 못하게 책장으로 문을 막았다 여기서 다행인 건 여자는 때려도 무엇을 깨는 건 못 하는 성격이었다. 돈이 아까워서 또 사야 하니까 거지 같이 자라면서 배운 건 엄마 때리는 거밖에 본 적이 없으므로 살림살이 때리는 건 본 적이 없나 보다.  그래서 나만 때렸다 다행이었다.  베란다 쪽 창문으로 들어오려면 창문을 깨부수 고라서 들어올 텐데 다행히 그럴 일은 없었다. 그럼 창문 값이 너무 아까운므로 그러지 않을 걸 뻔히 알고 있었다. 아마 지금도 린스를 자기 눈에 뿌린 것보다 린스를 다시 사야 된다는 아까움이 더 열받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열쇠를 찾아 들어올거라는 두려움에  핸드폰으로 112에 신고하는데 미끄러워서인지 당황해서인지 번호가 눌리지를 않았다.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12분 만에 왔다. 12분 동안 거품이 남아 있는 머리를 묶고 거품이 묻은 채로 옷을 입었다. 경찰이 왔다. 띵똥 벨소리가 나니 아이는 또 울기 시작했다. 경찰관 네 명이 들어왔다. 아이는 무서워서 또 울기 시작했다. 아이는 그렇게 우는 아이가 아니다. 엄마 아빠가 하도 많이 싸우는 거 봐서 웬만하면 우는 애가 아닌데 두려운 공포에 떨던 울음이 계속 이어지던. 그날은 울음은 멈추지 않는 것 같았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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