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주변에 진상이 없으면 네가 진상일 확률이 높아.
알지? 또라이 보존의 법칙.
그렇다. 혹시 내가 빌런이 아닐까 싶은 동료들과 1년을 함께 하고 있다. 이들은 유능하고 책임감이 있으며 겸손하며 매우 일상을 안온하게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올해도 선물처럼 온 귀한 인연들에 대해 아주 세세하게 탐구한다. 누군가가 이런 시답잖은 탐구를 왜 하는 것이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인간 탐구를 좋아한다. 내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한 맥락으로 나는 사람들을 탐구하는 것이 재미있다. 각자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각자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래서 저마다 특별하고 매력적이다. 주인공이 아닌 인물은 이 세상에 없다.
회식자리가 무르익으면 나는 이성친구나 배우자를 만난 이야기를 꼭 물어본다. 그 이유는 그 주인공이 가장 찬란하게 빛났을 그 시절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뭘 그런 걸 물어보냐고 핀잔을 받기도 하지만, 나는 알코올이 좀 들어가고 조도가 낮은 곳에 여지없이 물어본다.
"신랑 분 어떻게 만났어요?"
가끔은 쑥스러워 아이 뭘 그런 걸 하고 별 이야기를 못 들어 볼 때도 있지만. 때로는 아주 대단한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때로는 그렇게 안 보였던 그 사람의 대범한 행동에 그 사람의 다른 면모를 알게 되어 신기하기도 하다. 이를테면 사내 비밀 연애 중이던 그가 회식 중 동료들과 함께 단체로 택시로 이동하던 중에 취기로 여자친구에게 기습키스를 했다던가 하는 이야기이다.(호프집에서 이 이야기를 숨죽여 듣다가 '기습 키스' 부분에 진성 비명을 질렀던 기억이...)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영화 같은 이야기에 빠져들어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난 것과 같은 이야기도 있다.
무엇보다도 이런 연애 스토리를 들으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바로 그 이야기를 말할 때 사람들의 표정이다. 수줍은 표정 속 순수한 행복함이 묻어난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사랑했던 그리고 사랑받던 그 순간. 그 순간은 분명 그 인생의 하이라이트이다. 심장이 '쿵쿵쿵' 뛰었을 것이고 난생처음 '결혼'을 하겠다는 그 크나큰 결심을 하게 된 시절이니 말이다. 그 시절을 떠올리는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착하고 개구져진다. 그 표정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도 함께 따뜻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이런 이야기의 장르는 대부분 로맨틱 코미디이다. 대학교 OT때 선배 누나에게 찜 당한 순진한 미소년.(찜 당한 누나와 결혼한 그는 이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이런 슬픈 이야기가 있었죠'라고 해서 우리를 빵 터뜨렸다. 이 미소년은 위트까지 있었다.) 유럽 배낭여행 중에 우연히 만나 함께 여행을 한 그녀에게 청혼한 로맨티시스트까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추억 이야기는 나에게 그들을 더 특별한 주인공으로 보이게 만든다. 가끔 나의 결혼 이야기처럼 '어른들이 주선해 준 선으로 만나 결혼했어요.'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야기를 더 해보면 분명 그들의 소박하지만 특별함이 있기 마련이다. 마치 평범한 하루라도 소중하지 않은 날이 없듯이.
그래서 나는 적당한 때가 오면,
여지없이 물어볼 것이다.
둘이 어떻게 만나셨어요?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라는 서양 속담이 있지만,
사실 호기심은 우리 세상을 발전시킨 원동력 아닌가?
호기심은 고양이를 춤추게 한다.
서로의 이야기를 관심 갖고
궁금해하고 말하는 우리들처럼.
+
글을 다 쓰고 보니
과연 내가 빌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