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복숭아

名詞集

by 초하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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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이가 나를 안는다

모르는 이의 잠을 나는 잔다

나는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는 수십 년 전부터 불렀는데도

부를 때마다 아프다

아파서 그만두고 싶은데

모르는 이가 자꾸 시킨다

불러, 그 노래를


잠의 가장 시끄러운 곳 속에서

떨어진 노래를 줍는다

그 너머에는 네가 있다

나보다 더 오래된 지구의 생물 하나인 너는

날개를 받고 있었지


이제 서로 안으며 세월을 먹어치우자

잠이 든 환한 네 웃음을 쓴 약밥처럼 삼킨다

겨울뜰에는 이곳에 아직 도착하지 않은 꽃이 피었고

나는 말 잃은 채 꿈의 얼음 이불이 된다



언제나 그러했듯 잠 속에서
허수경 詩集『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문학과지성 , 2016)






1.

프로이트는 책상에서 일어서 창문은 열고 잔뜩 흐린 하늘과 먹구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제 돌아오기로 했던 마르타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걸 다시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집사를 불러 다시 보낼 전보 문구를 알려주고 오늘 중으로 보내도록 부탁을 했다. 집사가 나가고 다시 바라본 하늘의 검은 구름이 보낸 전보의 글자들로 빛나는 것 같았다. 언어의 구름, 구름의 꿈, 꿈의 언어. 프로이트는 천천히 단어를 연결하며 마르타가 보여주었던 詩를 기억했다. 그녀는 가끔 그렇게 詩를 만들어 보여주기도 했다. 詩, 문자의 조합, 구조의 조합, 그리고 그 언어의 구조가 어디에서 왔을까 곰곰히 생각했다. 의식 너머 그 아득한 심연에 있을 영혼의 언어, 무의식의 언어, 그것이 꿈이라고 그는 다시 확신했다. 얼마전에 출간한 책에 대한 과학계의 냉담한 반응은 무시하자. 그들이 비난하는 비가시적이고 주관적이라고 폄하하는 것은 새로운 과학적 접근을 위한 새로운 방법일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동료들의 비난은 오래 우려낸 홍차처럼 씁쓸했다. 새로운 것은 새로운 방법이 필요한 것이야. 꿈은 의식의 말이자 詩인 것이다. 그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외투를 걸치고 모자를 집어들었다. 문을 열고 집을 나서니 흐린 하늘이 조금 개어있었다.


2.

꿈을 꿈꾸다 문득 고개를 들면 꿈속의 나는 꿈을 찾고 있었다. 잃어버렸던 것일까. 깊고 깊은 낭하의 길, 언어를 잃어버린 시간을 지나는 동안 사라진 것일까. 노래를 해, 어차피 슬퍼질테니까. 길을 걷다가 지나친 사람이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불면의 밤은 슬픔보다 더 짙어 잊혀진 날들의 뼈처럼 날카롭고, 침묵은 어둠보다 더 어두웠으니, 나는 밤의 길마다 등불을 켜고 꽃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애썼다. 이 적막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꿈 너머 꿈의 꿈을 찾게 되면 나의 말은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피어오르는 새순처럼 그렇게 다시 돋아날 것임을 안다. 그러면 슬픔보다 더 짙은 어둠을 뒤로 하고 나는 그대를 향해 날아가게 되겠지, 잠들지 못한 밤, 지친 꿈으로 뒤척이고 있을 구휼의 그대에게.







복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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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통영에 가서야 뱃사람들은 바닷길을 외울 때 앞이 아니라

배가 지나온 뒤의 광경을 기억한다는 사실, 그리고 당신의 무릎

이 아주 차갑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


비린 것을 먹지 못하는 당신 손을 잡고 시장을 세 바퀴나 돌다보

면 살 만해지는 삶을 견디지 못하는 내 습관이나 황도를 백도라

고 말하는 당신의 착각도 조금 누그러들었다


우리는 매번 끝을 보고서야 서로의 편을 들어주었고 끝물 과일

들은 가난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입술부터 팔꿈치까지

과즙을 뚝뚝 흘리며 물복숭아를 먹는 당신, 나는 그 축농(蓄膿)

같은 장면을 넘기면서 우리가 같이 보낸 절기들을 줄줄 외워보

았다



「환절기」
박준 詩集『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 2012)






내 손가락 붉은 동백 향기가 없어 아름다운 아침. 믿음의 문제. 복숭아, 숭아. 숭아야 놀자. 몰려다니며 깔깔거리며 아침햇살처럼 빛나던 시절, 즐거우면 복숭아. 달고 시큼하고 새살거리는 복숭아. 분홍빛 노란 과즙이 손을 타고 팔로 흘러내려, 아 살아있는 생물을 먹고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살아있는거겠죠. 복사꽃같은 웃음을 흘리던 당신, 복숭아꽃 살구꽃, 굴뚝새 소리처럼 항상 나는 손을 꼭 붙잡고 노래를 하고 있었어요, 복숭 복숭 솜털 엷은 햇살 위로 씨앗이 자라 세상이 될 거라고 믿던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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