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詞集
바다
새벽빛을 오래 바라보다가
볶은 콩 네 알을 씹으며 속쓰림을 달랬다
우리는 아침을 함께 본 적이 없다
데려오지 못하는 아침에게
질문하는 대신 나는 답을 줄여나간다
내가 원하는 날짜가 이 생엔 없을 것
새벽빛은 보라와 실어와 분홍의 순서였고
마음은 적요와 파랑과 고립의 순이었다
배들이 떠 있을 뿐 나아가지 않는 평면을
종일 바라보았다
그런 것
적막이야
나의 말도
두 개의 흔들림과 두 번의 수평
흔들리지 않는 배들은 고통이 아래에 있을까
마음은 무엇입니까
어린 사람이 큰 사람에게 물었다는데
갈 때는 보이는 쪽, 올 때는 어두운 쪽
모르긴 해도 누구나 흔들리고 있었을 것
잘하려던 아침은 올곤 하여
잘하지 않는 편을 택하는 마음이 나을 것이다
내가 점점 사소한 일이 되었다는 걸 잊었다 해도
「바다」
이규리 詩集『당신은 첫눈입니까』(문학동네 , 2020)
당신은 지금 바다 앞에 서있다. 거제도에서 바라보는 남해라고 하자. 바다가 저기에 있고 당신은 여기에 있다. 피안(彼安)과 차안(此安). 고요하나 살아 있고 거대하나 침묵하는 바다는 말보다 오래된 언어로 당신의 존재를 어루만진다. 그런 바다는 개체화된 '대상'이 아니라 당신의 지각이 깃든 세계이며, 당신이 세계에 노출된 채로 있는 방식이다. 당신이 열린 채로 세상을 마주하고 있을 때 저 멀리 보이는 지평선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경계가 아니라, 당신이 끊임없이 몸을 통해 세계와 접속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푸른 수평선은 당신이 던지는 질문을 듣지 않지만, 대답 없이도 당신의 내면을 변화시킨다. 의미는 말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태어난다. 바다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말한다. 당신의 언어는 그 앞에서 점차 작아지고, 일상의 사소한 움직임들은 파도처럼 반복되며 의식의 배후에서 흘러간다. 당신은 더 이상 분리된 자아가 아니라, 세계 속에서 구성되고 흔들리는 존재가 된다. 수면 아래에는 불안과 희망이 이분법 없이 얽혀 있다. 감정은 내면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떠오르며 사라지는 현상이다. 삶은 바다와 같다. 깊고 넓고, 스스로에게 닿을 수 없는 심연이며, 그러나 동시에 당신을 감싸 안는 세계의 심연이다. 바다는 당신이 당신의 역사 속에서 몸으로 살아낸 존재의 리듬이다. 그것이 삶이다.
편지
그대의 편지를 읽기 위해 다가간 창은 지복至福이 세상에
잠깐 새어들어오는 틈새; 영혼의 인화지 같은 것이 저 혼자
환하게 빛난다. 컴퓨터, 담뱃갑, 안경, 접어둔 畵集 등이
공중에 둥둥 떠다니고, 천장에서, 방금 읽은 편지가 내려왔다.
이데올로기가 사라지니까 열광은 앳된 사랑 하나; 그 흔해빠진
짜증스런 어떤 운명이 미리서 기다리고 있던 다리를
그대가 절뚝거리면서 걸어올 게 뭔가.
이번 生에는 속하고 싶지 않다는 듯, 모든 도로의 길들
맨 끝으로 뒷걸음질치면서 천천히 나에게 오고 있는,
그러나 설렘이 없는 그 어떤 삶도
나는 수락할 수 없었으므로 매일, 베란다 앞에 멀어져가는
다도해가 있다. 따가운 喉頭音을 남겨두고 나가는 배; 그대를
더 오래 사랑하기 위하여 그대를 지나쳐왔다. 격정 시대를
뚫고 나온 나에게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지루한 것이었다.
맞은편 여관 네온에 비추인 그대 속눈썹 그늘에 맺힌 것은
수은의 회한이었던가? “괴롭고 달콤한 에로스”*;
신열은 이 나이에도 있다. 혼자 걸린 독감처럼,
목 부은 사랑이 다시 오려 할 때 나는 몸서리쳤지만,
이미 山城을 덮으면서 넓어져가는 저 범람이 그러하듯
지금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그대는,
이삿짐 트럭 뒤에 떨궈진 생을 두려워하지는 않는지.
신화와 뽕짝 사이 사랑은 영원한 동어 반복일지라도
트럭짐 거울에 스치는 세계를 볼 일이다.
황혼의 물 속에서 삐걱거리는 베키오 石橋를
그대가 울면서 건너갔을지라도
대성당 앞에서, 돌의 거대한 음악 앞에서
나는 온갖 대의와 죄를 후련하게 잊어버렸다.
나는 그대 앞의 시계를 보면서 불침번을 선다.
그대 떠나고 없는 마을의 놀이터 그네에 앉아
새벽까지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다.
동경은 나의 소명받은 병이었다. 지구 위에 저 혼자 있는 것 같아요,
라고 쓴 그대 편지를 두번째 읽는다
*사포의 시구
「몹쓸 憧憬」
황지우 詩集『어느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문학과지성, 1998)
손글씨로 편지를 쓰고 우표를 부치고 우체통(郵遞筒)에 넣고 나면 얼마가 걸릴 지 모르는 그런 기다림을 만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약속되지 않는 정처없는 시간을 건너 도착한 답장의 기쁨이란 기다림의 시간보다 더 커다란 감정적 의미를 전달해주곤 했다.
내가 편지를 쓰고 편지를 보내는 과정이 현재에서 과거로 전환되고 나면 기다림의 나날이 시간이 매 순간 현재에서 과거로 넘어가는 동일한 과정을 겪는다. 기다리는 나는 항상 현재에 머물러 있지만 동시에 현재의 기다림을 과거로 보내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기다림의 설렘과 또 그만큼 비례하는 기다림의 비애, 그 양가적 감정은 그렇게 현재에서 과거로 흘러가며 내가 보낸 글이 나의 존재적 의미를 편지를 받는 상대방이 인지되기를, 그렇게 해서 나와 상대방의 실존적 관계가 정립되고 나의 존재적 의미가 확인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편지는 스스로 편지를 보내는 행위 자체로서 언제나 내재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편지가 지연되거나 분실되거나 혹은 수신자의 부재로 인해 편지는 언제나 실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글이란 매개가 가진 한계점, 다의적이고 열린 의미들로 인한 오해로 인해 언제나 왜곡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자크 데리다는 편지를 '不在의 언어'라고 했는데 이는 편지가 언제나 지연되고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전달이 되더라도 내가 전달하고자 했던 의미가 그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완전함을 의미한다. 편지가 내 손을 떠난 순간 보내는 이는 없고 받는 이는 아직 없으며 글에 담긴 언어는 그 두 사이 어딘가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 편지는 그런 의미에 머물러 있게 된다.
그 모든 불완전한 과정과 상황을 극복하고 드디어 기다리던 답장이 도착했을 때, 내가 기다리던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는 순간이 내게 돌아온다. 그 오랜 기다림에 대한 보상으로서 내가 보낸 문장들이 어떻게 전달되고 어떻게 당신에게 받아들여졌는지 똑같은 시간 전환의 과정을 거쳐 도착한 글을 받게 된다. 그 과정은 내가 편지를 보내는 과정과 의미의 역순으로 진행되며 그리하여 거울을 바라보듯 편지 너머 당신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고, 결국 당신을 받아들이는 나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자아와 타자의 만남이자 내가 열렬히 증명하여 보낸 나의 존재를 당신은 윤리적으로 응답하고 또한 열린 마음으로 나를 받아들이는 확인의 과정이다. 나는 편지라는 행위를 통해 그런 의미들을 전달하고 그런 당신은 동일한 열림과 기다림의 과정을 통해 당신 스스로를 나에게 전달한다.
그 안에는 희망과 절망, 기대하지 않았던 즐거운 혹은 비극적인 내용이 들어있을 수도 있다. 뜨겁고 아름다운 문장들이 나를 어루만지고 내 존재의 의미를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찬란한 빛으로 만들 수도 있으며, 차갑고 날카로운 비수처럼 나의 심장을 찌르고 나를 절명하게 할 수도 있다. 결국 나의 존재가 상대방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자리잡을 수 있게 되는지, 그리하여 둘 사이의 관계를 넘어 세상을 마주한 나의 존재론적 의미를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담대한 의미들을 거느리고 당신의 고통과 목소리에 끝임없이 열려있으리라는 책임감과 당신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없음을 알면서도 열려 있으려는 환대의 태도, 그리하여 불가한 윤리적인 숙명을 담담히 응시하는 것, 그것이 편지의 의미다. 그래서 우리는 편지를 쓴다.
"… 당신은 내 영혼을 꿰뚫었습니다. 나는 절반은 고통이고, 절반은 희망입니다. 내가 너무 늦었다고, 당신의 소중한 감정이 영원히 사라졌다고 말하지 마세요. 나는 다시 한 번 당신께 나 자신을 바칩니다. 여덟 해 반 전, 당신이 거의 내 마음을 부숴버렸을 때보다도 지금 더 깊이, 당신의 사람으로서. 나는 오직 당신을 위해 생각하고, 계획해왔습니다. 그걸 눈치채지 못하셨나요? …"
“… You pierce my soul. I am half agony, half hope. Tell me not that I am too late, that such precious feelings are gone for ever. I offer myself to you again with a heart even more your own than when you almost broke it, eight years and a half ago… For you alone, I think and plan. Have you not seen this? …"
제인 오스틴『설득 』(1817) 中 웬트워스 대령이 앤에게 보낸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