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나무
누이야 너는 그렇게는 생각되지 않는가
오월의 저 밝은 산색이 청자를 만들고 백자를 만들고
저 나직한 능선들이 그 항아리의 부드러운 선율을 만들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누이야 너 또한 사랑하지 않을 것인가
네 사는 마을 저 떠도는 흰구름들과 앞산을 깨우는
신록들의 연한 빛과 밝은 빛 하나로 넘쳐흐르는 강물을
너 또한 사랑하지 않을 것인가
푸른 새매 한 마리가 하늘 속을 곤두박질하며 지우는
이 소리 없는 선들을, 환한 대낮의 정적 속에
물밀듯 터져오는 이 화냥기 같은 사랑을
그러한 날 누이야, 수틀 속에 헛발을 디뎌
치맛말을 풀어 흘린 춘향이의 열두 시름 간장이
우리네 산에 들에 언덕에 있음직한 그 풀꽃 같은 사랑 이야기가
절로는 신들린 가락으로 넘쳐흐르지 않겠는가
저 월매의 기와집 네 추녀 끝이 허공에 나뜨는 날.
「五月의 사랑」
송수권 詩集『꿈꾸는 섬』(문학과지성, 1983)
내가 어두운 방 한구석에서 다만 꿈꾸는 일에만 足하고 있을 때
세상은 깊은 죄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리운 것들과 버려야할 것들 사이를 흘러다녔다.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그 때를 기억하면
내가 외면했던 시간들이 거기 있었고 또 그것이 마음과 죄와 형벌의 일들이었기에
부끄러웠다.
그리고 여기 다시 서있는 시간 위에 참회의 발자국을 남기며
늦지않을 새로운 시작을 이야기한다,
어딘가에서 나를 꿈꾸고 있을 또 하나의 섬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