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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수 Mar 04. 2023

백남준부터 모던 데자인까지 다다익선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보고 느낀 것들

새해를 앞두고 한 번 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을 찾았다. 가는 길이 막히더라니 두 번의 사중 추돌과 한 번의 이중 추돌을 지나치고서야 도착했다. 아마도 빙판길 때문에 사고가 났던 것 같다. 이번에 온 이유는 새로 열린 기획전이었지만 온 김에 이건희컬렉션 특별전을 다시 볼까 했는데 이미 현장 예약까지 마감됐다.

일부러 다다익선 상영 시간에 맞춰 왔다. 내가 갔을 땐 목, 금, 토, 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만 상영했는데 드디어 영접했다. 진짜 그야말로 다다익선이다.

이어 기획전 '백남준 효과'로 향했다. 1984년 30여 년 만의 귀국 후 백남준 선생의 지난 전시 주요 주제와 작품을 통하여 1990년대 한국 미술의 상황을 새롭게 살펴보는 전시라고 한다. 

들어서자마자 어두운 조명과 밝은 작품들이 반겨준다.

첫 번째 주제는 '국가와 국민(의 정체성), 국제적인 행사들과 세계화의 꿈'이었다. 참다운 민족주의는 드러내지 않는데 있고 참다운 민족주의가 생명을 갖기 위해서는 더욱더 활발한 해외교류가 이루어져야 하며 국수주의가 횡행하는 곳에는 문화와 삶의 다양성이 없고 진취적인 지식인들을 살인하게 된다는 1993년의 목소리가 지금도 울림이 있다.

두 번째 주제는 '근대화의 길, 과학과 기술의 발전, 미래를 향한 낙관'이다. 비디오 아트는 텔레비전을 단순히 오락적 기능에 국한시키지 않고 형이상학 수준으로 끌어올린 예술이며 20세기를 인류가 자연을 정복하는 시대라고 한다면 21세기는 자연과 인류가 전자매체를 매개로 공생하는 세기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예언보다는 예술가의 희망으로 느껴진다.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된 백남준 선생의 작품 외에도 다른 작가들의 예술 세계를 함께 만나볼 수 있어 다채로웠다.

세 번째 주제는 '믹스드미디어와 설치, 혼성성, 제3의 공간과 대안적인 공간'이다. 기관 아카이브, 백남준 아카이브, 1990년대 역사 자료, 1990년대 미술 자료 등이 모여 있는 아카이브 섹션도 별도로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주한 네 번째 주제는 '4. 개인의 탐색, 소수(정체성), 다원성'이다.

전시를 다 보고 나오니 뭔가 시대를 앞서간 지성인의 예술세계를 탐방한 느낌이었다. 

우연히 다다익선 꺼지는 시간에 나와 구경했는데, 하나 둘 꺼지는 TV가 묘하게 또 다른 작품처럼 느껴졌다.

시간의 정원도 구경했다. 올 때마다 괜히 궁금해지는 마성의 작품이다. 정원에 흐른 시간을 가늠하고 오니 어느새 다다익선이 다 꺼졌다. 나에겐 익숙한 모습이 오늘은 왠지 색다르게 느껴진다.

이어 «모던 데자인: 생활, 산업, 외교하는 미술로» 전을 봤다. 디자인 아카이브로 기증된 한홍택 선생의 작품과 자료를 중심으로 한국 디자인의 역사적 단면을 되짚는 전시다. 나는 '디자인'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 크다. 협의가 아닌 광의로서 스스로 일종의 디자이너를 지향하기도 하기에 한국의 디자이너 선배들의 발자취가 궁금했다.

광복을 맞이한 뒤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디자인 단체인 '조선산업미술가협회' 창립 회원 사진이 근본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해방 후 시대상을 반영한 여러 포스터와 우리나라 디자인 분야의 개척자 중 한 명이었던 한홍택 선생의 자화상 등 다양한 전시품이 그 시대를 담고 있다.

1960년대 본격적인 산업화와 함께 산업미술가들의 다양한 디자인이 이어졌다. 전시에서도 그 시절의 역동성을 느낄 수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아주 요긴하게 활용하는 듯한 한영수 작가의 서울 풍경 사진은 반가웠다.국립현대미술관에서 아주 요긴하게 활용하는 듯한 한영수 작가의 서울 풍경 사진은 반가웠다.

소비의 주체이자 대상으로 떠오른 당대 여성에 대한 여러 상품과 광고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은 개인을 성별에 제한해 대상화하는 광고나 메시지를 지양하는 시대라 결은 다르지만 그 시절의 멋을 엿볼 수 있었다.

거장의 문장에서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태도와 철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한 번 더 배울 수 있었다. 

1950년대와 60년대의 기업 로고 아카이브와 한글 레터링 컬렉션에서는 세련됨과 왠지 모를 요즘의 힙함이 발견됐다.

디자이너인 동시에 지속적으로 회화가로 활동했던 한홍택 작가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얼마나 뜨겁게 한생을 살다 가셨는지 참 대단하다.

마지막으로 각 지역을 주제로 한 관광포스터가 준비되어 있다. 각박한 현실에서 여행의 일탈을 꿈꾸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인가 보다.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여러 지역의 대표 관광 자원에 공감하며 재밌게 봤다.

한홍택, 문우식 작가와 여러 디자이너들의 시각적인 주장과 기록에 눈과 귀를 기울이며 산업 디자인 거장들의 예술혼을 느낄 수 있었다. 백남준 작가부터 모던 데자인까지 알차게 채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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