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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수 Nov 14. 2019

2006년 소록도

나눔의 참맛을 알게 해준 고마운 시간

나는 대학생활 대부분의 시간을 봉사에 쏟았다. 가끔 어쩌다 그렇게 봉사를 많이 하게 됐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2006년에 소록도에서 겪은 시간을 끄집어 내곤 한다.


독일 월드컵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았던 그 해 여름. 나는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매년 여름 소록도로 지원자를 추려 봉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보통은 학교 내에 있던 기독교 동아리들이 주축이 되어 팀원이 구성됐었다. 나는 당시 축구동아리인 이름도 도전적인 '챌린저'에 있었지만 막연히 소록도에 가보고 싶고, 봉사시간도 채울 겸 봉사활동을 해보고 싶어 지원했다. 이제 와 돌아보면 대부분의 갈림길이 그렇듯, 그 시간이 나의 삶을 얼마만큼 바꿀지 가늠조차 못했다.

당시엔 연륙교가 없어 배를 타고 가야 했다. - 옛날 사람...*

일정은 학기 중에 조금씩 준비를 하고 방학 때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우리는 7월의 뜨거운 열기를 가르고 소록도로 향했다. 형형색색의 짐을 보면 알겠지만 정말 그냥 고등학생들이었다. 정작 봉사지에 도착한 이후론 현지 특성상 봉사활동을 하는 사진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그 시간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다니던 학교가 기독교 학교인 만큼 소록도의 한 교회에서 묵으며 같이 예배도 드리던 것도 기억난다. 보통은 미리 준비해 간 팥빙수, 팝콘 등의 주전부리를 어르신들께 나눠드리며 노래도 불러드리고 말벗도 해드리며 조별로 소록도를 돌았다. 


이때 처음으로 봉사의 '맛'을 봤던 거 같다. 나는 정말 해드린 게 하나도 없는데 너무 많이 배우고 받아 가는 기분... 고맙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송구스러웠지만 내심 싫지 않았던 거 같다. 내가 더 감사한 기분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르신들에게 약속했다. 내년에 나는 2학년이니 다시 꼭 오겠다고...!


막연했던 한센병에 대한 두려움은 어르신들과 얘기를 나눌수록 사라져갔다. 오히려 그동안 그분들이 느끼셨던 사회로부터 냉대, 가족으로부터 상처 등이 나로 하여금 고개를 숙이게 했다. 덕분에 그들의 삶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꽤나 오래전 일이라 막상 쓰려니 일일이 기억이 나진 않는다. 그럼에도 이렇게 기억에 남고, 기억을 하려고 붙드는 걸 보면 그 시간이 정말 좋았던 거 같다. 지금 생각해도 17살 그 여름에 소록도에 갔던 건 정말 행운이었고, 그야말로 운명이었다.

다같이 단체 사진
당시 유행하던 스타리그 컨셉으로 찍었던 설정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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