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뭐든 다 배달합니다

쿠팡 배민 카카오 플랫폼 노동 200일의 기록

by 말로

"어? 이상하네요. 제가 분명히 문 앞에 뒀는데요..."


한 달 전쯤인가. 토요일 저녁 시간에 피자 한판과 몇 가지 사이드 메뉴를 '쿠팡이츠'에서 주문을 했다. 때가 때이니 만큼 라이더분께 "문 앞에 두고 가주세요"라고 요청사항을 남겼다. 실시간 배달 현황을 보면서 피자 한 조각을 들어 올릴 때 한껏 늘어지는 치즈의 매혹적인 몸짓을 상상하며 군침을 삼켰다. 드디어 앱에서 푸시로 "00분 만에 배달이 완료되었습니다"라는 문자를 받았다. 라이더 분과 마주치는 겸연쩍은 상황을 피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실 시간만큼 잠시 대기했다가 현관문을 열었다. 짜잔~ 그러나, 있어야 할 피자 상자가 보이지 않았다. 문 뒤에 두셨나? 엘리베이터와 방화문 사이에 숨기셨나? 주변을 이리저리 살펴봤지만 오븐에서 구워졌을 피자 도우의 구수하고 담백한 향 대신 아파트 계단의 썰렁한 냉기만 감돌았다. 순간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엉뚱한 곳에서 온기가 식어가는 나의 피자를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바로 매장에 전화해서 여차저차 설명하고 라이더분께 연락을 부탁했다. 잠시 후 라이더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라이더분께 피자 실종을 말씀드리자, "어? 제가 계단으로 뛰어가서 문 앞에 두고 나왔는데요..." 억울함을 토로하셨다. '계단'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내 피자의 행방이 바로 추리되었다. 우리 집은 20층 2008호다. 라이더분께서 무쇠팔 무쇠다리를 갖고 계신 '배달의 신'이라 할지라도 20층을 계단으로 오신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한 이야기다. 2층 208호로 헷갈리신 게 분명했다. 내 합리적인 추리를 말씀드리자 라이더분은 '아...' 하고 난간함이 배어있는 탄식을 내뱉으시면서 "어쩌죠? 제가 다시 갖다 드려야 하나요?"

이미 다음 배달 장소로 이동하시는 라이더분을 다시 산꼭대기 아파트로 오시라고 하기엔 너무 무리한 요구이고, 서로에게도 시간 낭비였다. 더구나 토요일 저녁 배달이 한창 몰릴 시간에 1분 1초가 라이더분께는 '돈'이라는 정도의 상식은 있었다. 어차피 피자의 생사와 위치는 파악되었으니 제가 가져오겠다고 말씀드렸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정말..." 몇 번의 사과의 말씀이 이어졌다. 이제 남은 건 아파트 주민들에게 남의 집 현관 앞에 피자를 훔치는 중년 남자가 출몰했다는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고, 무사히 208호에서 나의 피자를 구출하는 일이다.


비대면을 원칙으로 하는 요즈음. 내가 겪은 배달 사고가 더러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단 비대면 배달의 경우 '착오배달'을 하지 않도록 항상 신경 써야 한다. 고객에게 직접 전달하는 자체가 '컨펌'이다. 그런데 비대면 배달은 한동안 내가 엉뚱한데 배달했다는 걸 모르고 지나갈 위험이 있다. 그래서 비대면 배달의 경우 아파트 동호수를 두세번 체크하고 단독주택이나 빌라인 경우에는 도로명 주소 현판을 꼼꼼하게 확인한다.
- 17. 사람들은 어떻게 배민을 쓰는가
21080-49284-sampleM.jpg 출처: 비즈한국 http://www.bizhankook.com/bk/article/21080

이 책 <뭐든 다 배달합니다> (김하영 / 메디치미디어 / 2020.11)는 "쿠팡 배민 카카오 플랫폼 노동 200일 기록"이라는 부제에 나와 있듯이 저자 김하영 씨가 쿠팡 물류센터와 배민 커넥터 그리고 카카오 대리기사를 직접 체험하고 그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저자 김하영 씨는 2002년부터 2014년까지 <프레시안>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2003년 노조에 대한 손배가압류, 화물연대 파업, 비정규직 갈등, 새만금 간척사업, 평택 미군기지 이전 등 사회갈등 현장을 취재했다. 평소 연암 박지원의 삶을 동경해오다 “21세기 ‘열하일기’를 쓰겠다”는 각오로 2014년 회사를 그만둔 뒤 아내와 함께 1년 2개월 동안 세계일주를 했다. 2015년 여행에서 돌아온 뒤 <이야기경영연구소> 편집장을 맡아 우리나라 구석구석 숨어 있는 보물 같은 이야기를 발굴하고 알리는 일을 했다. 2019년에는 <피렌체의 식탁> 편집장을 지내며 정책 대안을 추구하는 사회비평 업무를 수행했다. 2020년에는 다시 뜻하는 바가 있어 회사를 그만두고 배달과 물류센터, 대리운전 등 이른바 ‘플랫폼 노동’이라 불리는 현장에 뛰어들었다. 직접 노동을 하면서 기자로서는 알 수 없었던 삶의 현장을 기록하고 있다. (책의 '지은이 김하영' 내용 발췌)


이 책 <뭐든 다 배달합니다>은 단순한 직업 체험 수기나 '힘들어도 버티고 살아봐요'라고 꼬시는 얄팍한 힐링 에세이가 아니다. 플랫폼 노동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빈틈과 우리 시대 노동 가치의 하락에 대해서 저자의 경험과 경력이 받쳐 주는 '딴딴한' 책이다. 그렇다고 '딱딱'하기만 한 책은 아니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유머를 살뜰히 챙기고 있어 읽는 동안 미소도 함께 할 수 있는 책이다. 사회적 문제의식과 사람에 대한 따뜻한 애정, 그리고 현실적인 정보까지 적절한 균형감을 갖고 있다.


택배, 배달음식, 대리운전... 우리 생활에서 이제는 생략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틀 전에 했던 충동구매의 후회가 가시기 전에 문 앞에 쌓여가는 택배 상자들과 앱에서 간단한 터치로 줄 서지 않고 1시간 내에 식탁에 세팅할 수 있는 맛집 음식들과 술기운에 헤롱대는 나를 집에까지 안전하게 배달해 주는 대리운전.


이것들이 없던 시절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지금을 가능케 하는 시스템은 어떻게 동작하고 있는 것일까? 그 시스템에서 일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현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왜 어떤 배달 음식은 30분 만에 도착하고 어떤 배달 음식은 1시간 이상 걸릴 때도 있을까? 내가 쿠팡 물류센터, 배민 커넥트, 카카오 대리기사로 일하려면 어떤 절차를 걸쳐서 어떻게 일하면 되고, 어느 정도의 수입을 얻을 수 있을까? 이런 호기심과 궁금증을 저자의 땀이 묻어있는 문장으로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비 오는 날 음식 배달을 주문한 미안함을 비타500 한 병으로 표현하고, 카드 결제가 지체되어 배달 시간을 까먹을 저자를 걱정하고, '감사합니다'라는 짧지만 따뜻해지는 말 한마디를 건네주는 우리들의 이웃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제로 금리, 제로 출생률, 제로 성장률로 향해 가는 시대에 인공지능과 로봇의 부상으로 추락의 가속도를 더한 노동 가치를 가만히 두고 봐야 하는 것일까? 떨어지는 노동 가치를 그나마 붙들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연대는 없는 것인가? 폭등하는 자산과 움직이지 않는 실물경제 사이에 소외되는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정책은 무엇일까? 국가는 회사를 지원하고, 회사는 가장을 지원하고, 가장은 가족을 책임지는 구조가 해체되고 있는 현실에서 국가의 복지 무게 중심은 어디에 둬야 하는 것일까?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이 마주하게 될, 아니 이미 겪고 있는 새로운 세상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은퇴자'들을 보면 생각이 더 복잡해진다. 저마다의 사정은 제각각이겠지만 이들에게 배달은 남는 시간에 무료함을 달래거나 운동을 하기 위해 나서는 소일거리라면? 이들에게 배민 커넥터 수입은 자기 생활비의 '플러스알파'이다. 집에 가만히 있으면 수입이 '0'이지만, 1시간에 한 건이라도 배달을 하면 3,000~5,000원의 기대치 않았던 수입이 생긴다. 반면 다른 일자리 대신 배민 커넥터를 택한 이에게 1시간 3,000~5,000원의 수입은 최저임금(2020년 기준 8,590원)에 턱없이 못 미치는 마이너스 수익일 뿐이다. '부업'으로 하는 이들이 계속 공급되면 배달 요금이 오를 수 없다. 시간당 3,000~5,000원, 더 쳐줘서 7,000원이라 해도 배민 입장에서는 최저임금에 인센티브, 주휴수당에 연차까지 쳐줘야 하는 직접 고용 라이더를 늘릴 필요가 없다.
- 25. 배민 예비군, 은퇴 인력의 딜레마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결국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서 내려 주위를 살펴본 뒤 208호 앞에 놓인 나의 피자를 확인하고 냉큼 피자 상자를 들었다. 그때 옆집 207호 문이 열리면서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온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으로 외치고 있었다. "이거 제 피자예요!"


나의 피자는 잘못 배달되었지만, 이 책 <뭐든 다 배달합니다>는 제대로 배달되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충분히 배달받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