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진보 사상가 20인의 삶과 사유에서 답을 찾다!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범인인 나에게 범접할 수 없는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이력서의 공란을 하나라도 더 채우기 위해 아등바등할 때, 개인보다 시대 문제를 고민하고 가치 있는 삶을 지향하는 그분들이 질문을 던지다.
‘당신의 이력서 한 줄과 당신의 묘비명의 한 줄 중 어떤 것이 더 가치가 있는가?’
(부끄럽지만... 사실 통장에 찍히는 한 줄이 더 중요합니다...)
이 책 <21세기를 살았던 20세기 사상가들>은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던 20세기의 진보, 사회주의 사상가들의 행적과 사유를 쫓는다.
(재)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장석준과 환경철학 연구자 우석영이 2016~2017년 《한겨레 21》에 〈20세기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원고를 기반으로 엮은 책이다.
21세기 현재 혹은 다가올 미래의 고민들 - 불평등으로 인한 사회적 약자, 기본소득과 복지정책, 정보 민주화, 동물들의 권리, 재생에너지와 환경 등이 이미 20세기 사상가들의 의해 이슈가 되고, 해결을 위한 다양한 제안들이 주장되었다.
이 책을 읽는 누군가에게 묘미 혹은 누군가에게 생경함은 소개된 20인의 사상가들 대부분이 알려지지 않은 분들이라는 것 (개인 차가 있겠으나, 나 같은 경우는 정말 모르겠더이다…) 혹은 알려진 바와는 다른 면을 조명하는 데 있다.
한 명의 사상가를 접할 때마다 구글이나 유튜브에서 찾아보고, 그의 사상이 현대의 고민과 어떤 싱크로율이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은 이 책을 읽는 행복한 귀찮음이다.
(사상가들의 흑백 사진 속 의외의 힙한 모습은 또 하나의 재미다. 이 글의 표지는 실비아 팽크허스트이다.)
물론, 책을 덮으면 기억나는 양반이 몇 없긴 하다. 정말 고속도로 톨게이트 같은 기억력이다.
이 책의 첫 번째 주인공으로 소개되는 실비아 팽크허스트는 여성뿐만 아니라, 노동자들과 연대하여 만인의 완전한 정치적 권리 실현을 위해 투쟁한 사회주의 운동가이다.
그녀는 당시, 여성뿐만 아니라 재산세 납부액이 일정 기준을 넘지 못하는 남성도 참정권이 없었기 때문에 노동계급과 연대를 통해 진정한 참정권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연대가 빛을 발한 곳은 여성 억압과 노동 착취가 교차하는 여성 노동자의 일상이다.
최근 대두되고 있는 이론인 상호 교차 성(intersectionality)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그녀의 연대 정신은 누구나 자기가 남보다 더 고통받는다고 강변하는데 익숙한 신자유주의 시대 생존 정글을 비추는 한줄기 빛이 될 수 있을까?
(그녀의 생애는 영화 '서프러제트'- 예고편에서 좀 더 깊이,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실비아 팽크허스트를 시작으로
1900년 중반에 이미 ‘기본소득’을 시민적 권리로 제시하고 노동과 삶이 일치하는 ‘분열 없는 인간’을 역설한 앙드레 고르.
컴퓨터 연결망을 통한 정보 공유와 평등한 통치, 첨단과학에 힘입은 해방 세상을 꿈꿨던 사이버네틱스의 선구자였던 스태퍼드 비어.
시민 참여와 대의민주주의가 시너지를 일으키는 ‘이중권력’을 주창한 랠프 밀리밴드.
1894년에 <동물의 권리>를 주창한 헨리 솔트. 그 반세기 뒤 “토양과 물과 동·식물도 존속할 권리가 있음”을 천명한 ‘대지 윤리’를 설파한 알도 레오폴드 등
급진적 사상가들의 생애와 사상이 급진적으로 지나가며, 민족해방→계급혁명→국가도 전쟁도 없는 아나키즘 세상’이라는 3단계 혁명을 추구했던 임시정부 국무위원 조소앙을 끝으로 책이 마무리된다.
평범한 삶보다는 사회의 진보를 위해 일생 바쳤던 이들은 당대 즉, 20세기에는 크게 조명받지 못했을 지라도 새로운 미래를 구상하는데 밑거름이 되는 사유의 발자취를 남긴 것만은 틀림없다.
그들의 삶과 사상을 21세기 범인인 내가 접한다는 것은 분명 이력서의 한 줄 보다 묘비명의 한 줄이 좀 더 가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