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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de brunch Apr 13. 2020

[제주일기 3] 각자의 무게와 어려움, 제주이전

Ⅰ. 입도 전, 입도에 도전

[3] 도시 살이라는 인생의 습관


  서울에서 출퇴근길 대중교통은 매일매일이 레슬링에 가까운 치열한 몸싸움의 경기장이다. 직장인들은 고만고만한 실력의 선수들이지만 이번 차를 놓치면 지각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몸을 우겨 넣어야만 한다는 점은 프로선수 못지않다. 아니, 우리는 이미 프로 테트리스 선수다. 길쭉한 몸뚱이를 만원 테트리스 블록 속으로 끼워 넣는 법을 매일매일 갈고 닦아왔다.


 어딜 가도 서울은 사람과 사람이 경쟁한다. 몰려든 사람들이 옹기종기 한 평 더 넓은 집을 구하려고 아등바등하고, 시내는 마천루 집합소와 같아 하늘 한 뼘 보기가 녹록지 않다. 주말에 힙플레이스라도 가려면 주차 공간 한 칸을 확보하려고 눈치싸움을 벌인다. 그야말로 사람들이 사람을 피해 몰려든다. 사람을 피하려고 바쁘고, 사람을 만나려고 바쁘다. 한적함을 찾아 부지런히 경쟁해야 한다. 도시에서는 잘 사나 못 사나 바쁘다는 말, 허투루 들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서울을 떠나려고 보니, 내게 도시는 단지 복작복작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아니라 이미 하나의 습관이었다. 나무뿌리 같이 촘촘한 지하철과 초록 파랑 버스의 정거장에 따라 동선을 계획하고, 가고 싶은 식당과 살고 싶지 않은 동네를 결정했다. 지하철은 나의 출근시간과 아침에 일어날 시간을 정했다. 마트가 근처에 있는지 여부가 인터넷으로 장을 보는 습관을 만들어줬다. 도시가 만든 인프라는 내 생활 반경을 규정하고, 습관이 되어 나를 움직였다. 게다가 중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며 쌓아둔 나름 작고 소중한 인맥, 내가 끼니를 거르지는 않는지 매일 걱정해주는 부모님과 가족, 힘든 일이 있으면 술 한 잔 할 수 있는 친구와 모임들까지 모두 두고 내려가야 했다. 아니, 그들은 그대로 있는데 쌓아온 모든 것을 두고 나만 똑 떨어져 나와 섬으로 간다.


 그래도 아이가 있는 집들의 고민에 비하면 싱글들의 고민은 비교적 단순한 편이었다. 가정이 있는 사람들은 남편 또는 아내와 자식들의 몫까지 이고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다. 자녀 학교를 강 북이냐 남이냐 결정하고 이사하는 일도 큰 결단이 필요한데, 하물며 연고도 없는 바다 건너로 옮겨야 한다니 다들 청천벽력이었다. 서울과 달리 제주에서 병원이나 어린이집, 아이 봐줄 돌보미나 조력자를 구하는 일도 막막했다. 서울에 살면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아이를 갑자기 봐줄 친정엄마든 시댁이든 손을 내밀 곳이 있다. 제주는 상황이 다를 터였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직원들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입시가 코앞인 자녀가 있는 선배 직원들은 대부분 가족들을 서울에 두고 혈혈단신 제주로 내려와 주말부부 생활을 선택했다.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사택은 방 한 칸 원룸이었고, 아이를 데리고 같이 살려면 집을 알아서 구해야 했다. 비용도 들고, 아이와 엄마만 내려온들 학교가 끝난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서울처럼 학원이 다양하지 않아서, 방과 후에 피아노 학원에 갔다가 태권도 학원 차를 타고 학원 뺑뺑이를 돌릴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고 했다.  


 남편이 다른 직장을 다니고 있는 여직원들은 가정이냐 커리어냐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 듯했다. 싱글들도 제주에 내려가면 짝을 찾아야 하는 일, 연애 중이라면 장거리 연애를 지켜내는 일, 모두 각자의 무게로 져야 하는 짐이 있었다. 참고로 우리 회사의 주소지는 공항이 가깝고 카페도 많고, 사람도 많이 사는 제주시가 아니라 제주 공항에서도 1시간 반은 차를 타고 한라산 중산간 도로를 넘어 가야 닿는 서귀포다. 정말로 난감한 유배인 것이다.


 한 달, 두 달 또는 육 개월이나 일 년도 아니고 나머지 평생을 어느 날 갑자기 제주에서 보내야 한다니, 이처럼 막막한 일도 없었다. 서울은 단순히 인프라를 갖춘 메트로폴리탄 대도시가 아니라 30년 넘게 친구와 가족, 생활 터전과 지인, 네트워크를 쌓아 올린 모든 것이 있는 곳을 뜻했다. 일과 커리어도 중요하고 물론 취업이 힘든 시기에 밥벌이는 가장 중요하지만, 그간 쌓아 둔 모든 것을 두고 갈 만큼인가 모두가 고민하고 또 저울질했다. 이직을 할 기회도 능력도 부족해서 일단은 한번 살아본다는 생각으로 제주행에 여차저차 가고 있었지만, 마음의 무게만은 유배자의 무거움에 뒤지지 않았다. 누가 꼬뚜레를 끼워 끌고 가는 것도 아니고, 먹고살겠다고 제주도 이주 행렬에 줄 서 있었지만 잘 살고 있던 도시를 떠나야 한다는 허전함은 강제이주에 비할 만큼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각자의 계산기를 두드려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조언을 해준 사람들도 있었는데, 여기에 적용되는 방정식은 아니었다. 가족과 떨어져서 살아야 하고, 주거 비용은 더 들어가는 마이너스 적자 가계부를 보고 즐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밥벌이와 월급의 힘은 위대했고, ‘일단’이라는 단서를 달고 제주행 비행기표를 편도로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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