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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de brunch Apr 13. 2020

[제주일기 7] 제주이주 D-30: 제주에 내려갈 몸과

Ⅰ. 입도 전, 입도에 도전


사재기 짐 싸기

 제주 강제이주(?)를 한 달 앞둔 시점.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제주에 내려갈 짐을 보낼 날짜를 정하고, 제주에 가는 편도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뒤숭숭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서울이나 수도권 이사처럼 당일에 트럭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짐을 배로 보내고 2~3일 지나야 제주에 닿는다. 태풍이라도 만나면 사람은 빈집에서 짐을 기다려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었고, 이사 일정이 예고 없이 틀어질 터였다. 실제로 직원들의 이사철에 태풍 예보 때문에 짐 도착이 예정일과 어긋난 사람들이 있었다.


 살림살이 도구와 필요한 물품들 목록을 만들고 부지런히 사기 시작했다. 해외이주와 동네 이사 중간쯤 되는 강도의 준비가 필요했다. 짐을 보내는 날짜와 2~3일 뒤 짐을 받는 날짜를 신중히 고르고, 비행기 표도 사야 했다. 특히 제주의 여름은 습해서 1 방 1 제습기가 필요하다는 말을 수시로 들은 탓에 제습기 비교 검색하고, 아무도 살아본 적 없는 동네에 대해 동료들과 시시콜콜한 정보와 걱정을 나누면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자잘한 살림도구를 사면 하루가 갔다. 인터넷으로 서랍장이나 스툴, 조명을 검색하고 구입하면 또 하루가 갔다.


번갯불에 콩 볶듯이 운전연수

 나는 무사고 운전경력 10년의 위용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데 비결은 장롱면허다. 막상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하고 나니 탐내던 아빠 차도 너무 커 보이고, 새 차는 행여 긁힐까 봐 무섭고, 겁내다가 운전대를 잡지 않은지 약 10년이 되었다. 제주에서 운전은 워낙 필수 능력이라고 누누이 들었다. 대중교통이 서울처럼 다양하지 않고, 버스 간격도 띄엄띄엄 있고, 막차도 일찍 끊겨서 운전을 해야 살기 편하다는 말을 귀에 딱지 안도록 들었다. 정말 무섭지만 생존을 위해서 퇴근하자마자 학원으로 달려가 운전연수를 다시 시작했다.


 강남대로와 코엑스 앞을 12차선 도로 위로 (엉금 엉금이지만) 지나가노라면 제주에서 운전은 훨씬 쉬울 것 같았다. 저녁 7시 무렵이 지나면 일몰이 시작되고, 하늘이 붉게 물들며 강남 대로변 빌딩 숲과 핑크빛 하늘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걸 보고 있으면, 운전은 도심에서 하는 게 제 맛이라는 생각에 또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ㄴr는 ㄱㅏ끔 눈물을 흘려 ☆ 그렇게 다섯 번의 무서운 도로연수를 마치고 나는 차가 없어서 당장 제주에 내려가서 운전할 애마를 한 달간 렌트했다.


 정확히는 한 달간 차를 렌트해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돈을 내겠다는 데도. 여름 성수기라 최대 일주일간만 렌트를 할 수 있었다. 나는 함께 운전 연수를 받은 회사 선배와 공동으로 차를 빌려 출퇴근 때 운전연습을 하며 실전 감각을 키우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대신 일주일마다 제주 공항 근처 렌터카 업체로 가서 갱신 계약을 해야 했다.


번개같이 여름휴가  

 제주에 내려가야 하는 7월은 여름휴가가 시작되는 시기였다. 하지만 제주에 내려가고 나면, 인천공항까지 비행기를 타러 오는 반나절의 시간이 추가로 필요하고 김포-제주 왕복 국내선 항공료를 더 내야 했다. 그래서 제주에 갈 준비도 벅차지만 일본으로 짧게라도 휴가를 다녀왔다. 삿포로로 가는 비행기는 아침 7시였는데, 전날 제주에 내려갈 회사 짐도 싸야 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새벽 1시까지 상자에 꾸역꾸역 책상 위에 있는 물건을 모조리 쓸어 담았다. 2시간 자고 새벽 5시에 인천공항에 가는 버스를 타러 나오는 길에 생각했다. 제주에 가면, 해외로 여름휴가를 가는 것 자체가 조금 더 어려워지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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