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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de brunch Apr 13. 2020

[제주일기 9] 마음에는 바다를, 머리에는 숲을


 

Ⅰ. 입도 전, 입도에 도전

[9] 마음에는 바다를, 머리에는 숲을 품고 살자


 살러 가는 제주는 엄두가 안 나지만, 그럼에도 마음에 위로가 되는 게 하나 있다면 숲이었다.


 예전엔 제주도에 놀러 오면 으레 해변으로, 바다가 보이는 곳을 찾아다녔다. 게다가 나는 바다와 물을 사랑하는 바다형 인간인지라 숙소도 ‘어느’ 바다가 보이는 오션뷰를 택할 것인지 고민했다. 제주 살기를 4개월 즈음 앞둔 3월에는 처음으로 쌀쌀한 바닷바람을 피해 힐링을 찾아 숲을 찾았다.


 제주도가 바다로 둘러싸인 섬인지라 바다만 생각했거늘, 크고 넓은 제주의 안쪽에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허파가 되고 동물들의 터전이 되는 숲이 있었다. 딱히 누군가 숲으로 조성하려고 만들었다기보다 누구도 관심을 크게 갖지 않아서 무럭무럭 잘 자란 나무들이 모여 있는 곳 같았다. 숲 안에 들어가니, 입구에는 이미 웨딩 촬영을 하는 커플이 많았고 (나만 빼고 다들 알았던 모양) 들숨 날숨을 빼곡하게 쉬며 숲길을 따라 걸었다.  


 단순한 이야기지만, 높게 뻗은 편백나무들이 만든 그늘 아래는 도심보다 미세먼지도 적고 온도도 낮아 청량감이 샘솟았다. 일반 도심 공원에서 나오는 피톤치드가 그냥 커피라면, 사려니 숲의 피톤치드는 케냐 커피농장에서 일하는 농부 알레한드로가 있는 힘껏 맨손으로 짠 커피를 먹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기계로 수치를 잰 것은 아니지만 피톤치드라는 것이 폭발하는 느낌. 숲 속에서 숲 비타민을 섭취하고, 공기가 시원하니 머리도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뇌혈관에 끼어있는 찌꺼기가 깊게 들이마시고 내쉰 숨에 씻겨나간 듯 한 기분이랄까.


 사려니 숲에 오고 나니, 제주 생활을 하게 되면 주말에 슬쩍 이곳으로 피신을 올 수 있겠다는 기대가 나무 한 그루만큼 생겼다. 회사일이 거지 같고 짜증 날 때, 간단히 샌드위치를 싸서 일요일 아침에는 차를 몰고 사려니 숲으로 간다. 홀로 조용하게 새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나무를 안아보고 머리를 비우면 문제가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기운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제주에 사는 동안만이라도, 머릿속에는 숲을 마음속에는 바다를 품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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