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인생이란 레이스를 뛰고 있는 레이스 선수이다. 천천히 걸어가던, 열심히 뛰던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도 멈출 수 없는 레이스 선수이다.
하지만 이 레이스의 결승점에 도착하면 열심히 달려왔던 그렇지 않았던 우리는 죽음이라는 보상으로 이 레이스를 끝내게 된다.
그럼 여기서 생각해보아야 하는 게 마지막이 정해져 있는 인생을 우리는 왜 살아야 할까? 아니, 살아내야 하는 것일까? 그게 지금 레이스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와중에 떠오르는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고민거리이다.
이 글은 인생이란 레이스를 달리며 내가 왜 레이스를 끝내지 않았는지, 나는 왜 계속 이어가고 있는지 생각을 공유하고 싶어 작성을 하게 되었다.
1.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으려 했다.
먼저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게 나는 사는 게 괴롭거나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역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부딪히며 잘 달려왔으니 이제 그만 뛰어도 좋아 또는 스스로의 레이스를 끊어버리라고 종용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고 비슷한 사람들과 고민을 함께 해보고 싶다. 가끔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나의 하루는 대학시절에 마냥 바랬던 회사원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감정이란 존재하지 않는 기계처럼 덜거덕 덜거덕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걷는 방법을 굳이 머릿속에서 생각하지 않아도 스스로 걷고 있는 다리를 인지하게 되는 것처럼 정해져 있는 길을 끝없이 걸어가는 느낌이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비가 오면 축축하게 젖어들어가는데, 그렇다고 해서 피할 수도 없기에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는 나무 같다고나 할까. 나무가 의지를 가지고 원하는 곳으로 걸어가는 것을 본 적이 있나? 그냥 나무처럼 그 자리에 이유 없이 가만히 서있는 기분으로 살아간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하나씩 정해볼까?
회사에 입사한 2년 차까지의 나는 열정이 많았던 사람이었다. 친구들이 술자리에 초대해도 거절하며 공부를 할 정도로 욕심이 있던 나는 전문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곧장 취업에 성공했다. 뒤늦게 공부에 재미가 생겼던 터라 전문대학만으로는 만족이 되지 않아 회사에 들어간 후에도 야간대학교 편입에 도전을 하기도 했다. 회사에서도 이해를 해주고 학비도 절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주중에는 회사에서 모든 걸 쏟아내고 주말이면 책을 보며 희열을 느꼈다. 주변 사람들은 열심히 사는 나를 좋은 사람으로 봐주었고 누군가는 나를 대단한 사람처럼 취급해주었다. 하지만 이 정도가 나의 달리기의 한계였을까 숨이 찬 상태로 달린 후 숨을 헐떡대며 쉬고 있는 사람처럼 야간대학을 졸업한 후 3년이라는 시간을 '회사를 다니는 사람' 딱 그 정도로만 시간을 보내왔다. 더는 열정도 욕심도 없어져 마치 썰물 때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뻘위에 숨이 살짝 붙은 채 누워있는 물고기처럼 정해진 날 출근하고 정해진 날에 별일 없이 쉬어가며 살았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회사원이 었을까? 누군가는 꿈은 동사여야 한다고 했다. 예를들면, 그냥 회사원이 아닌 아픈사람을 치료해주기 위해 의약품을 제조하는 사람 처럼 말이다. 때로는 스위치가 꺼져 생각하는 기능을 잃은 뇌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이제는 탈피하려고 한다. 다시 열정있게 살아보고 싶다. 마치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처럼 지금 나의 상태의 보며 영감을 얻어 다시 예전처럼 주변에서 나를 괜찮은 사람, 노력하는 사람처럼 취급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려 한다. 예를 들면 조금씩 높여가다 3년째 정체 중인 나의 외국어회화 등급을 올리는 일이라던가 말이다. 초라한 목표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 나를 움직일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결론을 말하면 왜 살아야 할까라는 물음에 첫 발자국은 나를 다시 바라보며 나에게 퀘스트를 하나씩 부여해 보는 것이다. 작아도 괜찮다. 탄산을 사러 집앞 편의점을 향해 움직이는 것처럼 궁극적인 이유는 될 수 없지만 지루한 나를 다시 뛸 수 있게 하는, 초록불을 보며 지금 당장 뛰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처럼 살아보려 한다. 그렇게 조금씩 나를 뛰게 만들면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