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 뿌리내리고 살기 위해서는 친구가 필요하다. 제주 이주 십 년이 지났지만, 일하고 가족 돌보고 사느라 딱히 제주 친구가 없었다. 간혹 아는 이들이 생겼지만 친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5월에 제주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하는 강의를 들으러 한 달 동안 매일 제주시에 다녔다. 나 빼고는 20~50대의 여자 18명이 종일 강의를 들으며, 점심도 같이 먹고 친해졌다. 우리는 강의를 마치고도 단톡방을 만들어 친분을 이어갔다. 그들은 집에 있기를 편안해하는 사람이기보다 ‘뭔가 해보려는 이들’이라 나와 죽이 잘 맞았다.
나는 친구를 나이로 가름하지 않는다. 내가 배울 게 있고, 마음이 맞으면 이십 대라도 친구로 여긴다. 그리고 대체로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지내는 편이다. 아마 오랫동안 어린 학생들과 지내서 그런 모양이다.
제주시까지 강의 들으러 다니다 보니 버거워서 7, 8월에는 서귀포 평생학습관에서 ‘전통 떡 만들기’ 강습을 듣는다. 일주일에 한 번. 삼 주 수업에서 ‘개성주악, 단호박 구름떡, 유자단자’와 ‘소고기와 돼지고기 육포’ 만들기와 보자기 싸는 법을 배웠다. 세 시간 이상 서서 일해서 녹초가 되지만, 알찬 배움이라 남은 5회 수업이 기대된다. 육포는 내 메뉴에서 제했지만, 나머지 세 가지 떡은 차례차례 더 실습해서 즐겨하는 음식으로 만들려 한다.
제주시 친구들이 떡 만들기 수업받는 걸 알고, 먹어보고 싶다며 집에 놀러 오겠다고 했다. 나는 오가는 데 두 시간 이상 걸리는 곳에서 오는 친구들을 맞기 위해 수업을 조절해서 시간을 내었다.
점심은 바깥에서 밀면을 사 먹기로 하고, 나는 내가 만든 떡과 시스터필드의 빵, 과일과 커피를 준비했다. 빵에 발라먹을 바질 페스토와 과카몰리를 지난 주말 다시 만들었다.
어제 서귀포는 최고의 기온을 기록했다. 7명의 친구들이 그 더위를 뚫고, 아침 10시에 집에 모였다. 모두 토박이는 아니지만, 적극적이고 활달한 그들의 모습에서 강인한 제주 여자 모습을 보고, 나는 속으로 적이 놀랐다. 그리고 우리는 서너 시간 동안 먹고, 마시고, 수다 떨며 일 이야기, 삶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신에겐 이런 모임이 필요해.
남편도 적극 후원해 준다.
친구들이 돌아가고 나서 오후 수업하려니 체력이 부족했지만, 나는 앞으로도 이 친구들이 부르는 자리엔 달려 나가 함께 공부도 하고, 웃고 떠들 생각이다.
육십 대가 된 후로는 늘 머리 위에 죽음을 얹어놓고 산다. 어느 날, 어디에서든 내가 가도, 세상도 나도 아쉬울 게 없다. 그래서 매일 매 순간을 아끼면서 산다.
그러니 내 사는 곳에 함께 웃음과 얘기를 나눌 친구들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내가 떠나고 나면, 나를 그리면서 모여줄 사람들이 좀 있어야 가족들에게 좀 체면이 서지 않을까. 그런 꿍꿍이셈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