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마흔일곱의 봄 - 나의 스케일

by 개굴 프레스

혼자 갈 수 있겠어?

응. 난 이제 충분히 mature 하니까.


열 살 아들은 오늘 혼자 현관문을 나섰다.

남편이나 내 출근길에 같이 나갔었는데.

멀지 않은 거리이지만,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는 나에게 "이따 만나!"를 외쳐주고 씩씩하게 걸어갔다.


복직 5주 차. 첫 연차일이다.

직급별 사업별 여러 개의 업무 단톡방의 알람과,

업무 메일 알람이 울린다.

하지만, 오늘은 내려놓기로 한다.

'급한 건은 전화 오겠지..'


창밖으로 보이는 날씨가 이뻐

밀린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김에

휴직기간 즐겨가던 동네 카페로 산책을 간다.

주말과는 다른 평일 오전의 여유로운 분위기가 있다. 그간 바빴던 내 마음도 느려진다. 좋다.


오늘은 깔끔한 맛의 65 스케일 커피를 고른다.


오전 햇살이 잘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는다.

내가 좋아하는 자리가 비어있으니, 럭키 데이다.

이 자리에서는 창밖의 하늘, 햇살과 ⁹로스터리, 바리스타의 움직임이 잘 보인다.

커피 원두를 기계에 붓고, 고무망치로 두드리고, 박스를 나르고, 커피를 내리고, 포장을 하는 광경들을 영화처럼 지켜본다.

여러 명의 직원들이 각자의 일을 부지런히 해내는 모습에 생동감과 안정감을 느낀다.

가사가 거의 들리지 않는 음악소리와 원두 분쇄 소리, 주변 손님들의 말소리가 섞여 백색소음처럼 나를 나른하게 한다.



사무실은 조용하다.

많은 사람이 함께하지만, 파티션과 모니터 뒤에서 메일과 메신저로 소통한다.

크게 말하는 사람은 가끔 본인 방에서 나오는 보쓰와 실장님 정도인 것 같다.


가끔 으쌰으쌰 정서적 유대를 당연히 쌓았던

초년병 시절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 시절 같이 퇴근 후까지 시간을 보내며 시키지도 않은 회사의 미래를 함께 걱정했던, 친구와 동료의 중간쯤 있던 사람들도, 이제 자기 팀 입장을 우선 대변해야 하는 어른들이 되어있다.


3년 만의 대화들은 짧은 점심시간, 서로의 간단한 근황, 그리고 달라진 가치관을 확인하게 한다. 인사고과, 승진, 평판. 이런 것들의 우선순위가 한참 내려간 나는 어느 틈에 과묵하게 경청하는 걸 택한다. 인생이라는 스케일 안에서 어느 지점에서 어느 정도를 선택할지는, 모두 다르니까. 그냥 오랜만에 펼친 앨범 같은 반가움과 맛있는 점심에 집중한다.


https://youtu.be/MjQjaB-HedA?si=jFWCbTTPEoHbVjf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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