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마가복음
마태복음 15장 22절에는 '가나안 여인'이 등장한다(마가복음 7장 26절의 "수로보니게 여인")
마태복음이 굳이 마가복음의 '수로보니게(시리아-페니키아)'라는 당시의 현대적 지명 대신, 구약의 옛 명칭인 '가나안'을 끄집어낸 것은 매우 의도적인 신학적 장치인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과 역사적이고 적대적인 배경을 가진 '가나안 여인'이 도대체 어떻게 유대인의 왕인 '다윗의 자손'을 알아보았을까? 하나님의 '조명하심'과 '섭리'라는 조직신학적 해석을 뒤로 하고, 성서신학적 시각에서 이야기해보겠다.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다'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그녀는 단순히 정치적 메시아를 찾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소문을 통해 예수님이 행하신 축귀 사역을 들었고, "다윗의 자손이 오면 내 딸에 들린 귀신을 쫒아낼 수 있다"는 기대와 연결했을 가능성이 있다.
사실 마태복음은 이 사건 이전에 이미 예수님의 명성이 국경을 넘었음을 명시한다.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마 4:24)
가나안 여인이 살던 두로와 시돈 지역은 로마 행정구역상 '수리아' 지방에 속해 있었다. 단순히 "누가 병을 고친다더라"가 아니라, "귀신 들린 자를 고친다"는 구체적인 뉴스가 이미 수리아 전역에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여인은 이 소문을 듣고 예수님의 동선을 파악하고 있었으며, 유대인들이 그를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며 따르고 있음을 목격하거나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긴 그 가나안 여인의 ‘메시아 인식’은,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두로 지방으로 걸음을 옮기심으로 인해 ‘혈통적 이스라엘’의 경계를 넘어 이방인에게까지 구원의 빛을 비추시려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의 표징임을 알 수 있다.
마태가 굳이 '가나안 여인'이라고 기록한 것은, 그녀가 이스라엘의 오래된 대적(고대 가나안 족속)의 후예임을 강조하기 위함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놀라운 역설이 존재한다.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있었고(이스라엘 내부자), 오히려 이스라엘의 역사적 원수라 할 수 있는 가나안 족속의 여인(이스라엘 외부자)이 예수님의 정체성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마태는 이 장면을 통해 "언약의 자손이라 자부하는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거부하는데, 가나안의 후예는 그를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며 경배한다"는 대조를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