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과 회개 사이 그 어딘가에서

묵상

by 코람데오 Coramdeo
누가복음 15:17-23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둘째 아들 '스스로' 돌이키면서 여전히 먹을 것을 찾고 있다.

굶어죽기 직전이라 아버지가 생각났는데, 그 이유가 아버지에게 양식이 풍족해서인 것이다(눅15:17).


아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서 뉘우친 걸로 보이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둘째 아들의 모습은 '스스로의 반성'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이 말하는 '회개'보다는 조금 더 좁은 의미의 깨달음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한편, 스스로 돌이킨 둘째 아들은 아버지 집에 가서 품꾼이 되려 하고 있다(눅15:19).

먹을 거라도 얻어 먹으려 말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아들의 반성을 단순하게 받아주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품꾼이 아닌 원래의 아들의 자리로 회복시킨다(눅15:22-23).


아들은 반성했지만, 아버지가 원하는 것은 회개였다.


우리는 이 땅에서 계속 집나갈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나의 반성과 결심으로 집을 찾아가려 하는 게 아니다.

물론 인생의 걸친 회개(믿음을 가져오는 참된 회개 말고)에는 스스로 돌이키는 속성이 포함되어 있지만,

회개란 '나의 행위나 결심, 반성만으로는 성취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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