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고요, 평화.
직장인 모드로 스타트업 출퇴근 1년 차. 요새 들어 짜증이 늘고 분노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출근 지하철에서 사람들은 왜그렇게 막무가내로 미는지. 회사 엘리베이터는 왜이렇게 느려 터졌는지. 업무는 넘겨주는 게 아니라 왜 냅다 던지는지. 야근은 늘어만 가는데 일은 왜 안 줄어드는지. 왜인지????
특히 요즘엔, 소음에 무진장 예민해졌다. 작은 진동에도 짜증이 솟구치고 차량 경적 소리에도 마음이 헝클어지는 일이 잦았다. 그러던 어느 날, 확실히 느꼈다. 만두를 데우는데 전자레인지 돌아가는 소리가 칠판 긁는 소리처럼 들렸다. 아, 이건 적신호다. 만두고 뭐고 당장 떠나야 한다.
도시와 최대한 단절된 곳을 원했다. 당일치기로는 불가능했다. 그렇게 떠오른 곳이 바로 해발 800m, 고지대에 위치한 사찰 '망경산사'였다. 예전에 지인이 다녀온 후 극찬에 극찬을 거듭했던 기억이 나서 바로 찾아봤다.
나는 템플스테이가 처음이지만 여기라면 더 볼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설명할 수 없는 강력한 이끌림이 느껴질 때. 경험상 그런 감은 대부분 맞았다.
혼자 가도 상관은 없었지만, 이왕 가는 거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용기를 내 사내 메신저로 참가자를 모집했다. 템플스테이로 해방되실 분 구함.
넘쳐나는 일로 고생 중인 MD님과, 곧 3년을 채우는 최고참 디자이너님께서 합류했다. 그들의 요청은 심플했다. 일정은 아무래도 좋다, 최대한 빨리 가자는 것. 회사 생활이 이렇게나 무섭습니다.
사전에 합의된 룰은 딱 두 가지였다.
1. 슬랙 확인 금지.
2. 회사와 관계된 그 무엇도 휴대 불가.
일정도 단순했다. 템플스테이 말고 다른 계획은 없었다. (3명 중 2명이 파워 J였는데도 그랬다)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우리가 떠나온 건 여행이 아니라 피난이었으니. 피난민들에게 일정과 계획이 있을 리 없다. 오직 목적지만 있을 뿐.
드디어 도착한 망경산사. 굽이굽이 서른 굽이를 돌고 돌아 올라오는데, 정말 이세계에 진입하는 느낌이 났다.
도착하자마자 옷부터 갈아입었다. 홑겹의 법복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그제서야 속세의 옷가지가 무겁기도 했구나 실감했다. 무거웠던게 비단 옷가지 뿐이겠느냐마는.
이어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한 뒤, 스님께서 사찰 투어를 시켜주셨다.
망경산사는 스님들이 자급자족을 모토로 가꿔온 사찰이라고 한다. 그래서 각종 산나물이며 약초류며 야생화와 나무들이 지천이다. 특히 이 곳은 800m 고산지대라 독특한 생태계가 갖춰져 있다. 아직 매스컴에 알려지지 않았는데도 전국 각지에서 사진 작가들이 찾아올 정도라고. (제발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20년 역사를 품고 있는 사찰이자 텃밭(이라고 하기엔 너무 넓지만)을 둘러보면서 그 어느 때보다 알찬 생태 수업을 들었다. 눈개승마, 삼나물, 명이나물 등 각종 산야초부터 동강할미꽃, 붓꽃, 토종진달래, 철쭉 묘목 등 야생화들에 대해 배웠다. 나무 종류도 엄청 많았다. 이제 막 심은 흰 자작나무, 배경이 되는 초록빛 구상나무, 웅장한 느티나무, 잔디 마당 앞의 헛개나무, 산세를 이루고 있는 낙엽송과 산벚나무까지. 이들이 어떻게 겨울을 버티고 움을 틔우고 있는지 살펴보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보이는 풍경이 이전 같지 않았다. 돌연 앞이 환해진 기분이었다.
스님들께서는 스스로를 호미를 든 작가, 호미로 수행하는 수행자라고 말씀해주셨는데 그 말이 이해가 갔다. 얼마나 많은 노고가 이 공간에 깃들어 있을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스님은 이런 말씀도 하셨다.
내가 호미를 들고 온 바닥에 사경해놓은 것이 보이지 않는가요?
(*사경 : 불경을 따라 쓰는 것으로, 수행의 하나)
그러시면서도 높은 곳에서 보면 더 잘 보인다며, 다음 번에는 드론을 가지고 오라는 당부를 빼놓지 않으셨다. (아 예.. 스님.. 속세에서 열심히 벌어보겠습니다)
산사에 밤은 빠르게 찾아왔다. 저녁 공양(식사)을 하고, 가볍게 산행을 다녀왔다가 스님과 차담을 나눴다. 머쓱해서 다들 질문이 없자 스님께서는 본인이 산사를 가꾸셨던 에피소드들을 하나 둘씩 꺼내주셨다.
제가 자연을 20년 가꿨는데 매일 매일 새로운 걸 배워요. (...) 언젠가는 바로 옆 텃밭에서는 자라는 풀꽃이 내 텃밭에서는 안 자라는 거에요. 처음에는 내가 부족한가, 뭐가 문젠가 하고 오래 고심했지요. 공부도 해보고, 누구한테 물어보기도 하고, 유튜브도 찾아보고. 그런데 결국 이유가 무엇이었는고 하니, 남의 텃밭과 내 텃밭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내 텃밭을 내가 모르고 있었다는 것. 그뿐이었어요. 바로 옆 텃밭이지만 흙의 구성이 다르고 땅의 높낮이가 다르고 햇빛을 받는 각도가 미묘하게 다르더랍니다. 내 텃밭이 어떤지 들여다볼지도 모르고 무작정 심고 가꿨으니 똑같이 자랄리가요. 저도 그걸 깨닫는 데에 10년 걸렸습니다. 내 텃밭이 어떻게 생겨먹었는가를 아는 게 중요합니다.
어찌 보면 늘 듣는 말인데, 저절로 두 손이 모아졌다.
저녁 아홉 시에 잠자리에 들고, 새벽 다섯 시부터 일어나는 일정. 많은 분들은 그게 가능하냐며 반문하지만, 가능하다. 어쩌면 그게 인간 바이오리듬에 맞을지도 모른다. 와 보면 안다.
다섯 시에 일어나 대웅전으로 가는 길. 별이 빼곡했다. 카메라를 들려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하염없이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자니 마음이 단정해졌다. 거북목 치유는 덤. 별멍을 때리다가 108배 하는 시간에 5분 늦었다.
108배는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무릎 굽힐 때마다 뚝뚝 도가니 소리가 법당에 울려 몹시 민망했을 뿐. (108번 중에 98번 정도는 소리가 났던 것 같다) 비명을 지르는 92년식 도가니를 뒤로 하고, 다음 코스는 마음챙김 명상 시간. 스님의 가이드에 따라 호흡을 가지런히 하는 연습을 했다. 생각을 비우는 것―잡생각을 치우는 것―이 이렇게나 어렵구나. 머나먼 이곳 영월의 외딴 산사에 와서도 생각이 가장 어렵다. 결국 모든게 다 생각 때문인 것을.
법당에서 마음챙김 명상을 끝내고 나서는 잔디를 걸으며 걷기 명상을 했다. 말 없이 다 같이 파삭파삭 마른 잔디를 밟으며 동트는 아침을 맞았다.
마당에서 가만히 시간을 보내다 보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 바람 소리 새 소리도 없는, 비현실적인 적막 말이다. 그 속에서는 오히려 귀가 먹먹해지곤 했다.(귀도 이 상황이 낯선 것이겠다) 정말이지 너무 귀중한 고요였다. 도시에서는 어떤 값을 치러도 얻을 수가 없는.
아침 공양을 한 뒤에는 스님과 함께 비질(운력)을 하고, 산사를 자유롭게 거닐었다. 운이 좋게도 간장과 막장이 익어가는 장독대를 엿볼 수 있었다. (참고로 망경산사는 사찰음식이 맛있기로 매우 유명한 절이다) 스님께서는 내가 질문을 쏟아내자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셨다. 메주를 쑤는 10월 마지막 주에 또 오기로 했다.
망경산사의 음식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오신채 없이 어떻게 이런 맛을 내지, 젓갈 없이 어떻게 이런 감칠맛이 나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래서 사진도 못 찍음) 이런 음식 없이 어떻게 앞으로 또 버티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선릉에다가 사찰음식점을 내야 하나? 눌러 앉아서 주방 일을 배울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정말 진지하게.
서울로 돌아가는 날에는 봄비가 내렸는데, 밖에서 빗소리를 듣는 것이 퍽 좋았다. 절간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배경 삼아 책을 읽었다. 그 중 마음에 와닿은 구절이 있어서 공유. 아마 산사에서 읽어서 더 울림이 컸던 것이리라.
삶은 행위가 아닌 존재에 관한 질문이다. 삶은 우리에게 무엇을 할 것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를 묻는다. 그 질문에 대한 우리의 답이 행위로 나타날 뿐이다. 그러니 겉으로 드러난 것을 둘러싼 세상의 평가보다 더 마음을 써야 하는 것은 부끄러운 삶을 살게 하는 자기 내면의 무지일지도 모른다. 그것만큼 자신에게 미안한 일은 없다.
<평화의 산책>, 김성란
참고로, 이 글을 쓰면서 '마음'과 '생각'이라는 단어를 열 번 넘게 썼다. 같은 단어를 반복하는 건 싫지만 이번엔 도무지 어쩔 수 없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 두 가지라는 생각을, 마음에 새긴 시간이었으니.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내 생각이 내 생각처럼 되지 못하는 모순을 극복하는 것이 또 내 앞에 주어진 큰 과제이자, 긴 여정이자, 삶의 정수라는 교훈도 얻었고. 앞으로도 일상에서 명상은 꼭 하기로 다짐.
그나저나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순도 100% 도시 남자인데, 왜 자꾸만 망경산사의 자연으로 마음이 쏠리는 걸까. 어쩌면 나도 출가의 운명일지? 어쨌든 야생화가 만발하고 나무가 파릇해지는 5월에 또 갈 예정. 사실 계절마다 한 번은 꼭 갈 예정. 템플스테이는 올해 했던 일들 중 가장 잘한 선택이 아닐까 한다. 다시 가는 그날까지 속세에서 화이팅.
(2023.03.14)
p.s. 먼 길을 함께 동행해준 동료들에게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같이 가실 해방클럽 파티원이 있다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혹시나 이 글을 보고 가시는 분이 있을까봐 남겨놓습니다. 지도법사님은 소개자를 꼭 여쭤보시더라구요. 그럴 땐, 회사 다니는 한의사 청년 소개로 왔다고 하시면 아실 거에요. 그럼 평화를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