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 갈 수 있을까? 11
어젯밤 평생 처음 에펠탑을 보고 난 후의 감동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아침을 맞았다.
시간이 많지 않다.
파리에서의 여행 일정은 2박 3일.
그중 하루는 영국에서 파리로 오는 4시간 기차 안에서, 그리고 도착해서 호텔 체크인, 유람선과 에펠탑을
보는 일정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오늘은 파리에서의 둘째 날, 우리의 여행 가이드이자 든든한 조력자인 아들에게 오늘의 일정을 묻는다.
갈 곳의 이름을 대봐!
파리는 역사뿐 아니라 문화적으로 유서가 깊은 곳이다.
유명한 곳이 워낙 많은 곳이라 오늘의 일정은 빡빡하게, 그리고 선택과 집중으로 빠르게 파리를 훑는 것이 목표다.
사람들이 여행지를 정할 때 왜 파리, 파리 하는지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더럽고 냄새날 거라는 무성한 소문과 이야기와는 다르게 우리는 운 좋게(?) 올림픽을 치른 이후라 그런지 거리도 깨끗했고, 냄새도 나지 않았다.
프랑스인들의 자존심으로 영어로 물어보면 프랑스어로만 대답한다고 했는데, 우린 소통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길에서 보안을 맡고 있는 경찰이나 무장 군인들조차도 길을 묻는 우리에게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파티세리(pâtisserie)가 유명하다는 프랑스에 왔으니, 검색해서 집에서 가까운 파태세리 (pâtisserie) 집을 찾았다. 크로와상(Croaissant)으로 2018년도에 1위를 했다는 곳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맛에 대한 평가를 하기에는 미각이 발달하지 않고 음식은 가리지 않고 먹는 나의 입맛에는 그냥 맛있는 크로와상(Croaissant)이다.
파리다! 무엇을 먹어도 맛있을 것 같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출근하는 사람들로 바삐 움직이는 도시가 생동감이 느껴지고, 다행히 보행자들은 적어 거리는 아직 한산한 편이다. 여유롭게 한 손엔 커피를 한 손엔 크로와상을 들고 센 강 강둑길을 따라 걸으니 참 낭만이다 싶으면서도 '좀 더 젊은 날 이곳에 왔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강둑길을 걷다 보니 건너편에 커다란 기중기들이 보이면서 그 기중기들 사이에 노트르담 성당이 보였다.
노트르담은 파리 여행의 중심지이다. 시떼 섬(Île de la Cité)에 위치한 노트르담 성당은 (1345년~ ) 모두에게 유명하다.
프랑스어로 Notre는 '우리'라는 뜻이다. 'Dame'은 마담, 곧 여인이다. 가톨릭에서 우리의 여인(마담)은 성모 마리아를 지칭하는 것이다. 구글에 노트르담 성당을 검색할 경우 굉장히 많은 성당들이 지도에 뜰 것이다.
몬트리올에도 올드포드 쪽에 아주 큰 노트르담 성당이 있어 퀘벡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에게는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파리에 있는 이 노트르담 성당은 다른 성당과 구분되기 위해 정식 명칭은 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이라고 부른다. 아쉽게도 코비드 기간에 화재가 났고, 2024년에 복구를 완성하기로 했는데, 우리가 방문한 시기에도 복구공사 시기가 미루어져서 인지 여전히 공사 중이었다.
중세고딕양식의 결정체로 지어진 대성당이 화재로 손실되어 원래의 모습을 보지 못하지만, 이것도 역사의 한 순간에 볼 수 있는 성당의 모습이라 그것에 의미를 두기로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대성당 근처에는 유명한 소설작가인 헤밍웨이가 영문 서적을 구해서 읽었다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Shakespeare and Company이라는 서점이 있어 둘러보기로 했다. 얼마나 유명한지 입구에는 서점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고, 가드(Guard)가 서서 들어가는 사람들의 가방을 일일이 검사하고 있었다. 서점내부는 옛날에 문학을 즐기던 사람들의 사진들과 그들이 사용했던 물건들이 엔티크로 전시되어 있었고, 벽에 기대어 있는 책꽂이에는 중고 영문서적들과 새 서적들이 빼곡히 차 있었다.
헤밍웨이가 이 서점을 찾을 당시, 파리에 영어 전문 서적이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관광객들에게 더 유명한 이 서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것은 영문 서적들이 아니라 에코백이라고 한다.
사실 나도 에코백 하나를 사려고 들어갔는데 너무 비싸서 만지작 거리다 다시 놓고, 대신 동화책 한 권을 사서 나왔다.
바로 옆 카페에는 사람들이 모여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하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아 나도 커피 한 잔 하고 싶었으나, 우리에게는 그런 시간이 없다. 그리서 패스 Pass!
노트르담 성당을 등지고 조금 걸어가니 프랑스 최초의 궁전이었다는 시 떼의 궁전 Palais de la Cité 을 만나게 되었다. 6세기 메로빙거 왕조 (The Merovingian dynasty)가 지었다는 이 궁전은 14세기 샤를 4세가 궁을 루브르로 옮기기 전까지 프랑스의 왕국으로 사용되었고, 그 후에 사법기관으로, 현재에는 법원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조선에는 장희빈이 있었다면, 프랑스에는 마리 아뚜아네트(Marie Antoinette)가 있다. 이곳은 그녀의 재판과 사형을 집행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곳 왼편에는 마리 아뚜아네트(Marie Antoinette)가 복역 중이었던 감옥을 재현해 놓은 역사관이 있으니 청소년 자녀를 두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들러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체험보고서 쓰기에는 딱 좋은 곳이다.
시떼의 궁전 Palais de la Cité을 나와서 조금 걸어가니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고, 무장한 군인들이 지키고 있어 뭔가 유명한 관광지인가 싶어 우리도 무작정 줄을 섰다. 1248년에 지어진 노트르담 대성당에 반에 반에 반도 안 되는 아주 작은 예배당인 세인트 샤펠 Sainte-Chapelle 파리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하지만, 조급한 마음에서인지, 줄을 서 있는 것이 지루하고 더디 움직이는 것 같아서 구경하기를 포기했다. 돌아서려는 순간 화장실이 급하게 가고 싶어 졌다.
무장한 경찰들에게 화장실을 갈 수 있는지 물어보았더니 친절하게 건물까지 안내를 해 준다.
관광객들이 길게 줄을 선 곳을 지나쳐 바로 옆 입구로 들어가라고 해서 들어갔더니 바로 세인트 샤펠 Sainte-Chapelle 마당으로 연결이 되어있었다. 물론 예배당 내부의 성서 속 1300여 장면을 넣어놓은 그 아름답다는 스테인글라스는 보지 못했지만, 외부로 나와 있는 스테인글라스와 건물을 보고 나올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속도 비웠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걷는다. 그러다 맞닥뜨린 퐁네프 (Pont -Neuf) 이름만으로도 낭만이 넘친다. 아무것도 안 해도 그냥 걷기만 해도 영화 속의 한 장면이 연출되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그냥 걷는다.
걷다 보니 다리 건너편 좌판을 벌여놓고 그림을 파는 아티스트들의 무리들을 만났다. 담배를 입에 물고 그림을 디스플레이하는 한 여인의 모습이 내 눈에 띄어서 사진 한 장 찍었다. 이들을 '부키니스트(Les bouquinistes de Paris)'라 부르며, 그 뜻은 작은 책을 판매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다.이들은 초록색 좌판에 중고책과 엽서, 기념품이나 헌책들을 파는 서적상이지만, 그들은 프랑스 대중들에게 독서문화를 일으키며 국민을 지식인으로 만든이들이기도 하다. 여기저기 고개만 돌리면 다 예술이 되고 낭만이 이라 느껴지고 낯선 시간, 낯선 공간에서 만나는 이런 이질감들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혼자 낭만에 취해 센 강( Seine River)을 따라 걷다 보니 그 유명하다는 루브르 박물관( Louvre Museum)이 왼쪽으로 보인다. 벌써 관광객들로 꽉 차여있다.
안에 들어가 누구나 본다는 모나리자 그림도 보고 싶고, 고호의 그림도 감상하고 싶었지만, 그건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거니 하고 외부에서 다녀갔다는 흔적으로 사진 몇 장을 찍었다. 딸내미의 요청대로 삼각형 루브르 유리관을 손가락으로 집는 모양, 피라미드를 미는 포즈, 모나리자 대신 '모녀리자' 사진을 찍으며, 혼자라면 해 보지도 않았을 사진 포즈를 취하고 사진 몇 장 건진 걸로 만족하고 루브르를 떠났다.
정원이 예쁘다는 말과, 쏟아지는 햇빛을 맞으며 사진처럼 호수 근처에 앉아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피크닉을 즐겨야겠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들어섰지만 그건 그냥 나의 꿈이었다. 이제 막 올림픽 경기를 마친 튈르리 정원은 올림픽 경기장으로 사용했던 구조물을 치우느라 난장판이 되어있었고, 공원이 가지고 있던 원래의 모습보다는 그냥 예쁜 공사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조물로 입구와 공원을 가로질러가는 길을 막아 놓아서 공원 외곽을 따라 둘러가야 해서 시간은 몇 배가 들었고, 우리도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더군다나 공원의 먼지들로 인해 피크닉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린 대충 점심을 때우고 콩코디아 광장과 상제리제 거리를 빠르게 통과해서 개선문으로 향했다.
개선문을 향해 가던 우리는 오르세 미술관이 6시에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파리에는 수천 년의 유럽 미술사를 마스터할 수 있는 미술관 덕후들에게 천국과도 같은 도시이다. 우리는 미술관 덕후는 아니어도 적어도 파리의 3대 미술관인 루브르, 오르세, 조르주 퐁피두센터는 둘러봐야 하지 않을까 했었는데, 그마저도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루브르를 외관만 돌아보고 오르세를 가기로 계획했는데, 아뿔싸 길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나 보다. 젊은 아이들 걸음이 아닌 중년의 몸을 이끌고 다니니 걸음이 더디었던 탓이다. 결국 우린 엔진 달린 교통수단을 사용하기로 했다. 1900년에 지어진 옛 기차역을 개조하여 19세기부터 20세기 초의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오르세 미술관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대표적이며, 크로드 모네의 작품들과 교과서에만 보았던 장 프랑수아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 폴 고갱의 '타이티 여인들'등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구글평을 보니 어떤 이들은 오르세미술관이 루브르 보다 더 좋았다는 평을 보니 여길 선택하길 잘했다는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또 하나 유명한 것은 오르세 미술관 시계이다.
실내에서 시계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이 너무 멋있었다. 그리고 그 미술관 맨 꼭대기층의 발코니에서는 시간이 없어 이번 여행지에서 빠진 몽마르트르언덕을 멀리서나마 작게 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수박 겉핡기식으로 오르세 미술관의 작품들을 둘러보고는 급한 마음만큼 빠른 걸음으로 정문을 나왔다. 정문에 나오니 가는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개선문을 가는 것 중 하나는 그곳에서 석양을 감상하기로 했는데 비가 오니 아무래도 석양을 보는 것은 어려울 듯싶다. 잠시 내적 갈등이 시작되었다. 하루종일 돌아다닌 것이 피곤하기도 하고... 임시가족회의를 하기로 했다. 특히 남편은 파리에 오기 전부터 개선문을 보고 싶어 했다. 석양을 보지는 못하지만, 서두른다면 매일 저녁 6시에 있는 무명의 용사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식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파리에 와서 처음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밖으로 나오니 가늘게 내리던 비는 더 세차게 내리고 퇴근시간에 가까워 오니 사람들과 차들이 더 많아졌다. 개선문 아래에는 1차 세계대전에서 목숨을 잃은 전사자들을 기리는 횃불이 있고, 그곳에서는 추모식이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이 추모식을 매일 진행한다니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추모식은 30분간 진행되었고, 점심도 간단하게 먹은 탓에 허기가 느껴지는 찰나에 어디선가 달콤하고 고소한 버터 냄새가 난다. 냄새를 따라가 보니 빗 속에서 프랑스식 팬케이크를 길거리에서 팔고 있는 아줌마를 보게 되었다. 우린 큰 거 한 개를 시켜서 나누어먹었다. 맛은 캐나다의 비버테일과 비슷한 맛이다. 한국으로 치면 꽈배기 도넛 같은 맛?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은 얼큰한 너구리 라면에 김치를 얹어 먹으면 딱 좋을 것 같다. 아쉽지만 시장기만 속이고 숙소로 향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오늘 하루 참 많이도 걸었다. 숙소로 돌아오니 물먹은 담요만큼이나 몸이 무겁다. 그래도 구경 한번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