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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망 Dec 11. 2022

프랑스에서 이방인으로 살기

서로가 궁금한 우리

트램을 타고 가는 도중에 문득 내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타고 있는 트램에 동양인이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새삼스럽지도 않다. 이제 오히려 동양인이 보이면 신기하게 서로 쳐다보는 지경이니. 


내가 있는 공간 최소 전방 100미터 안에는 동양인이 보이지 않는 삶, 이 삶이 이젠 익숙해진 거 같다. 오히려 3년 만에 갔던 한국에서 주위에 너무도 같은 인종들로만 빽빽하게 채워져 있는 서울의 모습을 보는 것이 답답해졌으니까. 평생을 살아왔던 한국의 땅이 낯설어지다니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러한 낯섦은 유학을 하다가 한국을 갔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었다. 


서울의 신혼집보다 프랑스 집에서 살아온 기간이 더 길어지고, 주위에 만나는 사람들이 한국 사람보다 프랑스 사람의 비율이 훨씬 많아지고, 프랑스에서 프랑스 사람들과 일하고 세금 신고하면서 사는 삶은 유학생의 영혼과는 또 달랐다. 


나는 원래 낯선 것을 좋아한다. 낯선 공기, 낯선 사람들, 낯선 풍경들이 나를 숨 쉬게 한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이러한 삶을 꿈꿔왔는지도 모르겠다. 평생 생각해보지도 못한 이 프랑스의 작은 도시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직업으로 하게 된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물론 새로운 것들이 주는 스트레스와 낯선 환경에서 낯선 언어로 삶의 고단하고 지루하게 많은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것들은 정말 피곤하다. 하지만 ‘이방인’이기에 느낄 수 있는 자유, 새로운 사회에 대한 호기심, 여기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우정들이 그 피곤함을 이길 수 있게 도와준다. 


그 ‘낯섦’을, 사람들은 갈구하기에 여행을 떠나고, 새로운 곳에서 삶을 정착하기로 결정하는 것이 아닐까.  


내 프랑스 친구들은 경복궁이 베르사유보다 훨씬 아름답다고 했다. 베르사유는 너무 인위적인데 비해 경복궁은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있는 풍경이 너무도 아름답다고 했다. 솔직히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라 신기했으나, 프랑스의 화려한 궁전들을 많이 보고 나니 왜 이들이 그들의 궁전에 또 질려했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오히려 '이방인들'의 눈으로 볼 때 '나'의 문화에 대해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도대체 왜 ‘프랑스'에 오냐고 너무도 궁금해하는 눈빛으로 내게 물어봤던 프랑스인들. 우리는 서로가 궁금하다. ‘나’의 지겹도록 익숙한 문화를 신기해하며 동경하는 ‘이방인들’. 나에겐 애증의 도시인 ‘서울’을 동경하는 여기 프랑스인들을 만나면 그래서 재밌고 신기하다.  


파리에서 한참 어학연수 중이었을 때, 같은 반에 캐나다에서 온 친구가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같이 샌드위치를 먹으며 수다를 떨다가 그날 배운 ‘이국적(exotique)’라는 불어 단어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 친구에게 ‘이국적이다’라는 표현은 바로 ‘나'의 동양적인 모습 그 자체라고 했다. 나는 우리에게 ‘이국적이다’라는 단어는 바로 너, ‘금발머리에 파란 눈의 백인’의 모습이라고 하며 재미나게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나중에 프랑스인에게 물어보니 그 단어는 프랑스인들에게는 ‘태평양 섬에 사는 어떤 원주민’ 정도의 이미지란다.  


이국적, 이방인, 낯섦, 이 모든 단어들은 결국 자신이 살아온 문화 속에서 바라보는 시각일 수밖에 없다. 한국땅에서 살아온 한국인으로서 이 프랑스 땅에서 또 내가 가질 수 있는 시각이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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