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년, 평화를 이룬 사람들

공연 <축제의 땅, 인연이 맺은 잔치> 후기

by 김PD의 잡학다식

광복 80주년을 맞는 올해 더 특별히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방송 프로그램 하던 시절, 요즘은 별로 그런 게 없는 거 같은데 그때는 ‘계기 특집’이라는 편성이 있었다.


2003년 8월 17일, 일요일 밤 8시 <KBS 일요스페셜>

하필, 그때 우리가 준비하던 아이템 방영일이 일주일 당겨졌다. 남북문제 등 여러 사연이 있었으나 하여간 ’자이니치(在日)의 축제‘(글/구성 문예원, 연출 김일중, 곽윤일)는 광복절 특집이 될 운명이었던가 보다.


KBS일요스페셜 ‘자이니치의 축제’(2003. 8. 17. KBS1TV)


미친 듯 며칠 밤을 새우고 어찌어찌 방송 당일 오후 더빙 일정을 잡아 성우 김세원 선생님과 잘 마쳤는데 믹싱을 하려다 보니 음악이 영 맘에 들지 않았다. 오후 4시 30분… 마침 그해 봄 ‘소리’ 5부작 특집 하면서 만든 OST 음반을 십분 활용해 한 땀 한 땀 음악작업까지 모두 마친 시간이 저녁 7시 20분…

KBS 신관 지하 2층 주조정실에서는 난리가 났다. 소위 말하는 ‘빠라(para) 뜰’ 시간도 없는 초치기 끝에 어쨌든 방송은 무사히 나갔다.


’축제의 땅에서‘ 한일 합동공연을 준비하는 놀이판 사람들(2003. 7.)


그때 그 아이템이 일본 나고야의 한국 전통문화 동아리 ‘놀이판’ 이야기다. 광복절 특집이라 ’민족정체성’에 포커스가 있었지만, 처음 내가 쓴 기획안은 ‘평화와 공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일본 땅 나고야에서 재일 한인, 조선족(총련 계열), 일본인이 한데 어울려 장구, 꽹과리, 북, 징을 두드리는 모임 ‘놀이판’…

이 사람들을 위해 해마다 방문해 기꺼이 지도와 합숙, 워크숍 캠프를 열어준 김운태, 진옥섭, 김주홍과 노름마치, 이윤석, 정영만, 박경랑 같은 명인, 명무들의 오랜 인연은 특별한 스토리였고, 방영 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때가 벌써 22년 전이다. HDTV 초창기, 16:9 사이즈로 촬영했으나 그때까지 KBS일요스페셜이 한 번도 16:9로 방영된 적 없으므로 4:3 사이즈로 ’잘라서‘ 편집하라는 데스크의 방침에 따라 화면이 어색한 데가 적지 않았다. 게다가 여름휴가철 특영실 사정으로 CG 처리가 잘 안 되어 싹 다시 편집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으나… 그 어색함에도 화면을 뚫고 나오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진정성이 큰 힘을 발휘한 프로그램이었다.


1985년 보육공동체로 시작한 ’놀이판‘이 올해로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그 사이 멤버가 바뀌고, 어린이였던 단원이 자라 결혼을 하고 다시 아이를 나아 꼬마 단원이 되기도 하였다.


그 ’놀이판‘이 광복 80주년, 창립 40주년을 맞아 서울에서 한 판 크게 벌였으니 안 가볼 수 있나…

8월 16일 토요일 오후 남산 한옥마을 국악당에서 아주 오랜만에 ’나고야 사람들‘과 가수 장사익 선생, 연출자 진옥섭 형을 만났다. 그 시간 남산골은 공연 제목처럼 ’축제의 땅(인연이 맺은 잔치)‘이 되었다.



세 시간 꽉 채운 공연이 끝나고 나오니 여전히 뜨거운 한낮… 광복절 태극기가 나부끼는 남산골을 내려오며 생각했다. 아, 이분들… 평화를 이루었구나.

장구와 꽹과리, 북, 징을 두드려 웃고, 울고, 떠들고, 춤추며 서로를 알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바라봐 주며 사랑했구나… 국적, 출신, 성별, 나이와 세대를 넘어 화평을 이룬 사람들이 일본 나고야에 있다. ‘놀이판’이라는 이름으로.



그 세월이 어찌 순탄하기만 했겠냐마는 오랜 시간 맺은 깊은 인연의 힘이 참으로 크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나의 광복 80주년은 이렇게…


beati pacifici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놀이판 #나고야 #축제의땅 #진옥섭 #장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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