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곗바늘이 새벽 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눈꺼풀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맥이 풀린 채 내려앉았다. 작은딸한테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네고 돌아 나오는데, 딸의 표정이 우울해 보였다.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냐는 그 한마디에 딸이 눈시울을 붉혔다.
대학교 졸업반, 취준생의 대열에 들게 되어서 심적 부담이 커졌고, 코로나 때문에 이런저런 시험이 취소되어 모든 계획이 무산되었다는 것이다. 일상의 리듬이 깨진 지 오래, 알바라도 하면 활력이 될까 해서 구해 보지만 쉽지 않다는 것. 게다가 싸이버 강의만 듣고 좋은 성적을 얻을 자신도 없고, 취업 못하고 졸업하면 압박감이 더 커질 것 같아, 차라리 이번 학기 휴학하고 졸업도 유예시켜야 하나 고민이라고 했다.
평소 홈트레이닝도 열심히 하고 유쾌한 성격이라 별 탈 없이 잘 지내는 줄 알았다. 딸아이의 마음 깊은 곳에 잿빛 그늘이 드리워있을 줄이야. 듣고 보니 참으로 암담한 상황이구나 싶어 코끝이 시큰했다. 취업난이 심각하다는 것쯤은 다 알고 있어서 어느 정도 짐작했지만, 막상 우리 딸이 힘들어하는 것을 지켜보니 벌써부터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제 치열한 생존경쟁을 위해 첫발을 내딛을 텐데, 얼마나 더 많은 도전과 실패로 낙담할지 짐작되고도 남는다.
정답이 있는 문제도 아니고,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라서, 어떻게 위로해줘야 할지 몰랐다. 침묵을 지킬 수 없어서 궁색한 변명처럼 답했다.
"그런 상황은 네 잘못이 아니야. 대한민국 청년들 대부분의 고민이고 정부가 앞장서서 해결해야 할 이 시대의 난관이야. 취업이라는 게 실력도 중요하지만 운도 있으니 너무 걱정 마. 대기업 같은데 안 들어가면 어때! 작은 회사에 너 하나 일할 곳 없겠니? 불확실한 미래를 상상하며 스트레스받지 말고, 지금 너에게 주어진 상황에 맞는 것들에 최선을 다 해라.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하라는 말도 있잖아. "
쓸데없는 말이 자꾸 길어졌다. 온갖 좋은 말을 다 갖다 붙이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너무 뻔한 이야기를 한 것 같아 부끄러웠다. 이런 내가 엄마라고.
몇 시간 뜬눈으로 새우다시피 하고 다음 날 아침, 딸아이를 데리고 바람 쐬러 갔다. 연휴 정체가 어김없이 있었지만 오고 가는 차 안에서 듣는 음악, 시원한 바닷바람과 햇살, 딸아이가 좋아하는 광어회도 먹고, 예쁜 카페에서 건진 인생 샷 한 컷으로 기분 전환이 되는 것 같았다. 마침 카페 소품 중에 내 맘에 쏙 드는 문구가 작은 나무판에 새겨져 있었다.
"마음 가는 대로"
어젯밤 주절주절 잔소리처럼 했던 말 대신 딸아이한테 딱 들려주고 싶은 한 마디다. 네 마음이 시키는 대로 가다 보면 곧 길을 만나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