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급한 술과 상류사회>>, 루스 볼 지음
인간은 무언가를 마셔야 했다
'수천 년간 인간은 무언가를 마셔야 했다.'
5년 전, 책을 고르다가 우연히 이 한 문장에 이끌려서, 화려하고 특이한 일러스트가 많고, 술에 관한 이야기라서 호기심에 샀던 책이다. <<저급한 술과 상류사회>>라는 이 책에서 난 뭘 기대했던 걸까? 조금 읽다가 지루한 것 같아서 책꽂이에 고이 모셔두었다. 몇 번의 책 정리 과정을 거쳤는데도 버리지 않고 남겨둔 걸 보면 분명 한 번은 읽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 짬 내서 읽었다.
*책 뒤표지 내용이다.
<음주 장소를 둘러싼 흥미로운 음주이야기!>
가난한 여행자들의 쉼터였던 여관,
상류층의 사교장이었던 와인바,
서민 공동체의 주춧돌이었던 선술집,
예술가, 학자, 후원자들의 아지트였던 커피하우스,
하층민의 애환을 달래준 한잔집,
소외받는 여성들의 해방구였던 티하우스...
생존을 위해, 즐거움을 위해,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수천 년간 인간은 무언가를 마셔야 했다. 그리고 마시는 일은 언제부터인가 하나의 문화가 되어 우리 삶 깊숙이 자리 잡았다.
주류 전문가 루스 볼은 지난 500여 년간 영국의 음료 문화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영국국립도서관이 제공한 화려한 일러스트와 함께 조명한다.
-<<저급한 술과 상류사회-음료의 문화>>, 루스 볼 지음, 김승욱 옮김,
*들어가는 말 (12쪽~20쪽) 내용 요약하기
법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널리 허용되는 중독성 약물은 딱 세 가지뿐이다. 알코올, 카페인, 담배. 이 셋은 인간사회에서 완전히 사라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그중 알코올은 세 가지 약물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작가는 음주 장소에 따른 알코올(이하 술)의 문화사를 다루고 있다.
인류 최초로 술을 생산한 고고학적 증거는 중국 지아후 지역의 한 무덤이다. 기원전 7000~6600년경, 차( 茶)가 이 지역을 지배하기 수천 년 전이다. 이집트 왕조시대에는 벌써 상류계급과 하층계급이 마시는 술이 분화되어 있었다, 노예들은 5도쯤 되는 '흐크트'라는 맥주를 마셨는데, 하루 허용된 양은 지금 단위로 대략 5~6리터 정도 된다. 지배층은 '이르프'라는 수입산 포도주를 마시다가 나중에는 국내 생산을 했다. 파라오의 무덤에 함께 묻힌 수많은 포도주 단지를 통해 당시 생산시스템이 얼마나 정교했는지 알 수 있다. 게다가 포도주 상품 등급도 표시되어 있었다. (평범한 포도주-좋은 포도주-아주아주 좋은 포도주)
아즈텍의 음주문화도 흥미롭다. 그들이 마시던 술은 '풀케'라는 것인데, 누가 언제 얼마나 마실 수 있는지가 복잡하고 엄격했다.
-사제, 귀족, 전사, 양조업자, 풀케의 원료인 용설란 재배 농민, 임산부(왜 포함되는지 알 수 없다.)는 각자 다양한 양의 술을 일상적으로 마실 수 있었다.
-전사, 양조업자는 허용된 양이 가장 많았다.
-쉰두 살이 넘은 사람에게는 노인을 공경하는 차원에서 언제든 마실 수 있게 허락했지만, 실제로 그들의 음주 가 존경받지는 못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상류계급의 포도주 음주에 관한 규정에는 포도주를 마시기 전에 항상 물을 섞어야 한다는 것이 있었다. 희석하지 않은 포도주는 사람을 미치게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 규칙만 지키면 음주는 남자들에게 널리 허용되었다. 또한 사회생활에서 필수적이라 가령 연설할 때 술 대신 물만 마시는 사람들은 연설이 형편없는 사람들이라고 모욕당했고, 천성이 냉혹하고 열정이 없다고 생각했다. 여자들은 사회생활을 할 수 없으니 술 마시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문학작품을 통해 여성들도 비밀리에 술에 심취했음을 알 수 있었다.
술에 관한 플라톤의 생각도 흥미롭다.
-마흔 살이 넘은 사람은 마음대로 술을 마시고, 다른 사람들은 절제된 음주를 하며, 열여덟 살이 되지 않은 사람은 절대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술은 마음의 진실과 열정을 알려주는 열쇠였다.
나이 먹은 남자에게는 이런 것이 유용할 수 있지만, 젊은이는 술이 없어도 이미 지나치게 흥분하기 쉬운 나이였다. 그런데 술로 그 흥을 더 부추긴다면 '불에 불을 붓는 격'이 될 터였다. 그러나 사회생활에서 음주가 워낙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으므로 플라톤은
'체육관에서 몸을 더 강하게 단련하듯이 음주 실력도 연습을 통해 더 강하게 단련해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이런 훈련에 적합한 장소가 바로 심포지엄(향연 또는 주연)이라는 공식적인 자리였다. 심포지엄은 개인의 집에서 남성들끼리 술과 함께 철학적인 사색을 비롯한 교양 있는 행사로 여겨졌지만, 난장판으로 이어지는 음주클럽들도 있었다.
로마인들은 심포지엄 행사 정신의 일부를 '콘비비엄(라틴어로 '잔치') 만찬으로 이어받았다. 심포지엄은 식사를 마친 뒤에 술자리를 가졌지만, 로마인들은 그런 제약을 없앴다. 여성의 참여도 자주 허용되었다. 이런 파티는 부자들만의 관습이라 공공장소보다 개인의 집에서 열렸다.
로마가 멸망하고 음주의 계층 구분이 완화되었다. 로마 문화에 물들었던 영국은 흩어져 있던 여러 왕국들이 하나의 왕국으로 통일되는 동안, 대부분의 여행자는 지역 영주의 집에서 머물며 마을 사람들이 먹고 남는 에일을 사서 마시곤 했다. 이후 마을의 중심은 성당으로 바뀌었고, 신분이 낮은 여행자들은 수도원에서 머물며 잠자리도 제공받고 질 좋은 맥주도 마실 수 있었다.
여행자가 점점 늘어나고, 교회가 음주와 잔치에 점점 보수적으로 변해가면서 서서히 변화가 일었다.
13세기와 14세기 내내 여행자와 주민이 따로 오락을
즐길 수 있는 장소들이 하나둘 씩 생겨났고, 15세기 말경에는 이런 장소들이 여관, 와인바, 선술집으로 뚜렷이 구분되었다.
책 본문으로 들어가면 말 그대로 장소에 따른(여관-와인바-선술집-커피하우스-한잔집-티하우스) 음주 문화와 그 장소에서 술을 마시며 사람들이 어떤 대화를 주고받고 어떤 일을 도모했는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술을 마시던 그 공간들이 어떤 기능으로 변하는지도 알 수 있다.
어쨌거나 정해진 장소에 사람들이 모이고 술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생각이 모여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오래전 사람들이나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같은 모습이다. 술을 마시든, 커피를 마시든, 차를 마시든, 뭐라도 마신다.
생존을 위해, 즐거움을 위해,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진정 마시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