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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은 Mar 11. 2022

T의 단어

구속





T: 아침에 일어나면 노트에 한 줄을 쓰면서 시작해요. 오늘의 문장은 ‘나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 였어요.

나: 너무 비장한데요?

T: 이 정도 마음은 갖고 시작해야 하루를 버텨요.

나: 어제는 뭐였는데요?

T: ‘세계는 넓고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널렸다.’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 아무래도 회사에서의 일상을 남들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답답하고 꽉 막힌 조직 생활을 마치고 그는 새 삶을 시작했다. T가 처음 뛰어든 일은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디자인 툴을 꾸준히 배우려는 이들이 의외로 많았다. 작은 차 하나에 몸을 싣고 수도권이라면 여기저기를 다 누볐다. 그렇게 많은 사람과 만나고 나니, 자연스럽게 프로젝트를 함께 하자는 솔깃한 제안도 받게 되었다. 굵직한 작업이 이어졌다. 그 무렵 T는 ‘프리 워커’나 ‘N잡러’라는 말이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단어 같았다고 했다. 공유 오피스로 출근하며 주어진 스케줄을 완벽하게 소화했고, 한 고개를 무사히 넘고 나면 오래 여행을 다녀올 수도 있었다. T는 본격적으로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자유인의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는 곧장 느긋한 마음을 잃었다. 불안의 전조등이 환하게 켜졌고 액셀을 밟을 차례였다. 언제까지 프리랜서의 삶을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니 일단 일을 최대한 벌이기로 했다. 그리고 벌인 일을 훌륭하게 해내야 했다. 그래야 재계약의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일을 단 하나도 허투루 할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다’, ‘잘’해야 하는 것이다. 결과물의 퀄리티를 고려하면 잠을 극도로 줄여야 했다. ‘잠 좀 자면 안 돼?’라는 반항기 가득한 생각부터 잠재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회사 생활 못지않은 굴레를 스스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워졌다.





전문 읽기 : https://a-round.kr/t의-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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