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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퉁이극장 Oct 28. 2022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이 나오는 영화를 좋아하는 나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를 보고 작성한 에세이 입니다.

박주영

*이 글에는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나는 영화가 좋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영화 이야기를 하면 더더욱 좋다.

평소에 반칙이라고 생각하던 '여름'과 '청춘'의 조합이 있는 이 영화는, 많은 이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도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영화이다.

열정이 넘치는 청춘은 여름을 닮았다. 그리고 그 청춘들은 영화를 사랑한다. 나는 또 그런 영화를 사랑한다.

영화 속 린타로는 맨발 감독의 사라진 첫 작품을 보기 위해 타임머신을 이용해 과거로 돌아간다. 나에게 타임머신이 있다면 어떤 감독의 어느 때로 가고 싶은지 생각해 보았다. 

바로 생각나는 감독이 없어서 나에게 약간 실망했다.

그러다 왕가위감독의 <해피투게더>를 찍을 당시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해피투게더>가 왕가위 감독의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아닌데, 그 영화의 장국영과 양조위는 너무 쓸쓸해 보였다.

그 영화를 찍었을 감독은 더 쓸쓸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도 해피투게더의 영화 촬영은 무척 힘들었다는 인터뷰를 왕가위 책에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 나는 어디에서 감독을 보기 위해 알짱거려야 할까.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디그리>를 다시 보며 구체적인 계획을 한번 세워봐야겠다.

다시 이 영화로 돌아오자. 가장 좋았던 장면은 여름이 지나가고 축제를 며칠 앞둔 밤, 맨발과 카린 단둘만이 동아리실에 남아있다가 같이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항상 북적이던 동아리실이었기에 늦은 밤까지 동아리실을 지키는 두 감독들의 모습은 낮의 모습과 대조적이기도 하고, 영화를 책임지는 이 두 친구의 무게도 느낄 수 있어서 기억에 남았다. 카린의 사랑 타령인 영화를 보며 그 정도로 좋아한다는 대사가 많이 나오면 오히려 아방가르드라고 말했던 맨발이 카린과의 대화로 사무라이 영화도 로맨스 영화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대화가 나온다. 

카린과의 대화가 맨발을 바꿨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맨발의 심연에 있던 진솔한 마음을 그 대화가 일깨워준 것이라고 본다. 

카린과 맨발은 서로 다른 장르 취향을 가졌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친구들이라 본질적으로 비슷한 구석이 있는 친구들이다. 그래서 미래의 언젠가 카린은 맨발의 든든한 친구가 될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호불호가 갈린다고 하는데 둘이 대화를 나눴던 이 씬 덕분에 나는 마지막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어찌 보면 사무라이영화에 로맨스가 첨가된 아주 짬뽕스럽다 할 수 있는 장면이지만, 맨발의 색깔인 사무라이 시대극을 놓치지 않으면서 '로맨스 영화 따위 유치해!'라는 생각에서 더 나아가 이제 사라질 그대에게 좋아한다 말하는 장면도 넣을 수 있는 포용력 있는 모습을 보여준 성장영화로서의 결말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린타로가 미래로 돌아가고 일상을 살아가는 맨발, 킥보드, 블루하와이의 모습이 나오면서 끝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맨발이 처음부터 찍고자 했던 그 사무라이 영화가 완성되고,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 또한 완성되는 장면이라 무척 인상적으로 남았다. 정말 그 여름은 필름을 타고 이렇게 끝이 났다. 

청춘영화는 기본적으로 성장영화이다.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나아가는 방향성이 있다. 또 가끔은 방향을 잡지 못해 방황 하기도 한다. 무미건조한 삶을 살다 청춘영화를 보면 싱그러움 그 자체에서 힘을 얻기도 하지만 방향성이나 열정을 잃었던 나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게 해주기 때문에 가끔씩 청춘 영화를 찾는다. 영화를 좋아하고 만드는 친구들이 나오다 보니 영화 속에서도 끊임없이 영화 이야기가 나온다. 덕분에 나도 영화 속 일원이 되어 그들을 순수하게 응원하고, 영화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미래에 대해 같이 슬픔에 잠시 빠지기도 했다.

요즘 부쩍 날씨가 선선해졌다. 여름이 끝나가는 것이다.

오늘은 내 인생의 필름을 타고 정신없었던 이번 여름을 되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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