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관계의 속도

이성(T)을 잘 쓰는 감성러(NF) 의 고찰

by Naomi

나는 이제 관계의 속도를 안다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시간이나 말의 양이 아니라,
그 사람의 태도와 속도를 보는 일이라는 것을.


그동안 나는 누군가가 마음을 열면 그것을 신뢰라고 생각했다.
특히 종교의 울타리 안에서, 나는 크리스천이라는 이유로
더 많이 들어주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무방비 상태로 들어준 적이 많다. 같은 행동은 회사와 조직에서도 똑같이 작용했다.


준비되지 않은 순간에도, 원하지 않았던 이야기들까지도.
깊어지기에는 아직 이른 관계 속에서도 나는 먼저 다가온 감정들을 받아주었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점점 지쳐갔다.

관계가 쌓이기도 전에 너무 빠르게 깊어지는 대화,
아직 서로를 알기도 전에 쏟아지는 감정들.

그건 편안함이 아니라 감정의 부채와도 같았다.


돌이켜보면 느낌적으로 결이 맞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상대방의 진심에 그저 받아주었다.
이젠 누군가 나에게만 하는 이야기란 말이 정말 부담스럽다.


특히 알지 얼마 안된 상대로부터 듣는 그런 말은

경계해야한다.


그말을 듣게 되면, 상대의 감정을 다 받아줘야할 거 같은

관계의 부채감을 지게 되고,

내가 그 속도를 따라가야 한다고 착각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나는 그 속도를 맞출 필요가 없다는 것을. 오히려, 속도를 맞춰주는 것이 진짜 배려이고 사랑이라는 것을.


나는 늘 빠른 사람이었다. 그래서 느린 사람의 반응을
답답하게 여겼고, 왜 저렇게 늦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관계의 속도는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누군가에게는 빠른 것이 부담이고, 누군가에게는 느린 것이 편안함일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 나는 선택한다.

빠른 사람에게는 내 속도를 늦출 줄 아는 사람이 되고,

느린 사람에게는 그 속도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기로.

하지만 동시에, 나를 소모시키는 속도에는 맞추지 않기로.


나는 이제 급하게 가까워지는 관계보다 자연스럽게 쌓이는 관계를 선택한다.

나는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도 되고, 모든 감정을 받아주지 않아도 된다.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듣고, 내가 편안한 만큼만 나눈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지키는 방식이라는 것을 안다.

이건 차가움이 아니라 균형이다.

이건 거절이 아니라 존중이다.


나는 이제 관계의 속도를 내가 선택한다.

그리고 그 선택이 나를 더 자유롭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