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톡의 피로감에 관하여

더 정확히는 교회 단체톡에 관하여

by Naomi

어느 순간부터 단체톡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로를 알아가고, 은혜를 나누고, 공동체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더 많이 반응했고, 더 많이 나누려 했고,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들고 싶었다.

돌아보면, 나는 꽤 오랜 시간 그런 방식으로 관계를 이어왔다.
단체톡에서 대화를 끊기지 않게 이어가고, 적절한 반응을 하고, 때로는 분위기를 살리는 역할까지 자연스럽게 맡고 있었다. 그게 당연한 줄 알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관계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생각보다 나를 많이 소모시키고 있었다.

단체톡은 단순한 메시지 창이 아니라, 여러 관계가 동시에 존재하는 공간이다. 친한 사람, 어색한 사람, 때로는 불편한 사람까지 함께 섞여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말하기보다는, 적절한 톤을 고민하고, 괜찮은 반응을 찾고,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지 않기를 조심하게 된다.

특히 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그 부담이 더 커진다.

교회 단체톡은 단순한 소통의 공간이 아니라, 신앙과 관계가 동시에 작동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더 좋은 반응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낀다. 사랑으로 반응해야 할 것 같고, 따뜻하게 답해야 할 것 같고, 때로는 침묵조차도 조심스러워진다.

또한 교회라는 특성상, 단체톡 안의 관계는 그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예배에서 다시 만나고, 모임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일상에서도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거리두기가 쉽지 않다. 하나의 말과 반응이 실제 관계로 이어질 수 있기에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기도 요청이나 은혜 나눔, 말씀 공유와 같은 신앙적인 표현들은 본래 귀한 것이지만, 내 상태와 맞지 않을 때는 그것조차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참여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참여하자니 진심이 아닌 것 같아 또 다른 피로가 쌓인다.

그리고 공동체라는 이름은 때로 보이지 않는 기준을 만든다.
‘이 정도는 반응해야 하지 않을까’, ‘이건 함께 나눠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쌓이면서, 단체톡은 점점 자유로운 공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기대가 존재하는 공간’이 된다.

그 피로감의 시작은 한 사람으로부터였다.
불편한 말과 행동,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들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지나며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사람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몇 년 동안 단체톡에서 적극적으로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던 시간들, 반응하지 않았던 순간들. 그때의 나는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무심한 사람, 혹은 거리감 있는 사람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들자, 누군가를 단순히 ‘이상하다’고만 판단하기 어려워졌다.

그 깨달음은 자책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이어졌다.

“그래서 이제는, 다르게 하고 싶다.”

모든 말에 반응할 필요도 없고, 모든 관계를 같은 밀도로 유지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공동체를 사랑하는 것과,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은 동시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도.

그래서 나는 선택하기로 했다.
꼭 필요한 말만 하기로.
내가 진심으로 공감되는 순간에만 반응하기로.
그리고 나를 소모시키는 방식의 연결은 내려놓기로.

이건 관계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더 건강하게 이어가기 위한 선택이다.

어쩌면 단체톡에서의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또 다른 형태의 지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조금 가벼워졌다.
늦은 것이 아니라,
이제서야 알게 된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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