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또 저인가요..?
"그런데 스님께선 어쩌다 이렇게
힘든 길을 가게 되셨어요..? "
내가 물었다.
그런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리에겐 부처님을 모시는 '스님'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영험하신 신명님을
모시는 몸으로 '법사' 그러니까
신명님의 '제자' 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스님길만 해도 고행인데 신명님을 모시는
일 또한 만만치 않다. 그 두 가지 역할을
다 해야 하는 스님을 볼 때마다
정말 힘드시겠구나... 란 생각이 절로 든다.
"인생이란 게 누구에게나 다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지요. 소승도 한때는 꿈이 컸지만
지금은 부처님 말씀대로 신도들 위해 기도하고
중생 구제를 위해 살고, 또 신명님 말씀대로
베풀 수 있는 것은 베풀어가며 자비실천을
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 또한 저의 길이 되었고,
보람도 있습니다."
공양 대신 탁자에 놓인 미숫가루를 한 모금 드신다.
이제, 스님도 어느덧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셨지만 여전히 뱃살 하나 없이 마른 몸에
길고 가느다랗고 섬세한, 마른 손가락을
갖고 계신다. 착하고 또 착한 스님의 성정처럼
섬세하고 여린 손.
" 출가하신 지는 거의 30년이 넘었죠..?"
나의 물음에 고개를 끄떡이시더니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아래로 숙인 채 가만히 계신다.
지금부터 대략 30년 전이니까 1993년 즈음
충남 공주 계룡산 자락의 한 절이다.
공양간 옆 창고 앞에 지게를 내려놓는다.
지게 위엔 솔가지와 마른 곁가지 나무들이
쌓여있고, 그 나무들이 지고 걸어오는 동안에
하나라도 떨어질세라 짚새기로 야무지게
매어놓았다.
아직은 완전히 가을이라 하기엔 한 낮엔 더운
9월이다. 가쁜 숨을 돌리며 토방 돌 위에 앉아
지게를 지고 오느라고 등에 흥건한 땀을
식히며 숨을 고르는데 그 모습이 놀랍다.
몸은 너무나 말랐고, 긴 목 위의 작은 얼굴은
완연한 병색에 혈색은 온 간 곳 없이 그저 새까맣다.
그 몸으로 산길을 지게를 지고 온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누가 봐도 병약한 정도가 심하다.
주지 스님께서 다가온다.
" 나가 보거라 "
오른손을 들어 일주문을 가리킨다.
뜻을 알 수 없어 뚱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니
" 또 오셨구나. 오죽하면 오셨겠나
이제는 생각해 보거라."
간단한 말을 전하고 대웅전으로
발길을 돌리는 주지 스님을 바라보다가 엉덩이를
들어 손으로 흙을 털어낸다. 일주문을 향해 걸어가 보니 저 멀리 속가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이제 인연을 끊고자 하는 속가인데
어찌 자꾸 찾아오시나...
날더러 대체 어쩌라는 것인지...'
복잡한 생각에 걸음은 자꾸 느려진다.
오늘은 무엇이 되었던 결판을 내보리라.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이 판은 또 나와는 상관없이 벌어졌음을
실감하게 될 뿐이다.
주저하듯 걸었고
시간이 뭐냐는듯 천천히 걸었지만 그새 일주문이다.
문밖에 나와 가까이 와 바라보니 속가 아버지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으셨는지 엊그제 보다
더 수척해지셨음을 알겠다. 하긴 자식이 신병에
다 죽어가는데 그 어떤 아비가 괜찮을지...
서로 합장을 한 채로
서로 말이 없다.
하지만 말이 없어도 서로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미 알고 있다.
신내림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마음에 세운 뜻을 지키고자 출가하여
일 년 넘게 수행의 길을 걷고 있던 스님은
난데없는 이 상황이 참으로 곤란하고도
믿기지 않는다.
하나 속가의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빌어서
아픈 동네 사람들을 구했을 만큼 신통하셨고
영검하셨던 내력이 있는지라, 그 뜻을 이어
나간다는 것 또한, 조상님께선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기에
원망스럽지만, 쉽사리 어떤 말을 할 수 도 없다.
피해 보고자 했지만 몸의 병을 이길 수가 없다.
먹을 수도 없고, 잠을 잘 수도 없고
그야말로 피 말리는 고통의 나날이다.
산속으로 들어와 소나무의 정기와
산 기운에라도, 산바람에라도 자신을 아프게 하는
기운이 날아가길, 혹여 바래도 보았지만 이젠 안다.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정작 본인도 쉽게 택한 출가의 길이
아니었기에, 자신의 뜻이나 의사와 상관없이
신 내림굿을 강요받는 이 상황이 못내 서운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조건 서운해만 할 수는
없음을 안다. 자식이 죽게 생겼으니 부모로서는
어찌할 수도 없을터.
그러나 내내 목구멍 밖으로 뱉어내진 못했으나
치밀어 오르는 것이 있었으니 살면서 내내 겪어온
장남과의 차별이었다.
대개의 집들에서처럼 마찬가지였다.
형은 장남이라서 평소에도 극진한 보살핌을
받는 것은 물론 모든 힘든 일에서 당연하듯
예외였고 , 스님에겐 반대였다.
누나와 여동생, 그리고 바로밑에 남동생도
하나 있었지만 집안의 대 소사를 챙기고
식구들을 챙겨야 했고. 계절마다 때가 되면
들녘의 일까지도 모두 스님의 차지였다.
아직 어린 중학교에 다닐 때조차 농번기엔
학교보다 일이 우선이었고, 부모님의 고생을
아는지라 자신도 다른 형제들처럼 공부시켜
달라고 나서지도 못했다. 태어나길 착한
심성이었다.
죽어라 일해서 여동생, 남동생은 대학공부까지
다 시키고 자취하는 곳에 쌀과, 반찬까지 부모대신
수시로 날라주며 긴 세월 희생하고, 또 헌신했지만
그에게는 모든 게 당연하다는 듯.
부모님도 속상해하거나, 동생들도 고맙다거나
하는 말은 없다.
언제나 그랬듯, 그의 희생은 당연했다.
모든 뒷바라지가 끝나고 이제
내 인생을 살아보겠다고 찾은 산사에서
마음의 안식과 평안을 얻어 부처님을 모시는
시종으로 평생을 살아가겠다 다짐하고
계까지 받고 안정을 찾아가던 스님의 삶이
이제 또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늘 그래왔듯 이것 또한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왜..? 또 저인가요..?
(스님 입장에선 피 토하며 소리칠 일이다.)
배꼽아래 자신의 두 손을 마주 잡은 채 말없이
아들을 오래 바라보던 아버지가 이윽고
손을 다시 이마 위로 들어 합장하며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추더니 드디어 손을 풀고 등을 돌려
산을 내려가신다. 한 걸음 두 걸음.... 굽은 듯
굽지 않은, 그러나 당당하지 않은 등을 보이며
점점 멀어진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울컥해진
스님은 그 자리에 오래 서있다.
마침내 절로 돌아와 주지 스님 앞에 앉았다.
그러나 입을 떼지 못하는 스님.
그 앞에서 주지 스님도 그저 가만히 계신다.
"내려가거라. "
한 시간이나 그렇게 앉아 있었을까.
주지 스님의 말씀에
앉아 있던 스님은 일어나 삼배를 올린다.
" 법체 강녕하십시오."
"그렇게 그 절을 떠나오신 거예요..? "
나의 물음에 스님께선 나직이 고개를 끄덕인다.
" 그리고 다시 시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