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진원의 인생에서는 매우 중요한 날들이 흘러갔다.
양가 상견례를 하고 마침내 날을 받았던 것이다. 내년 봄을 선호하는 진원의 어머니와, 올해 가을을 선호하는 진원과 내 엄마 진영 간의 갈등이 약간 있었지만 결국에는 진원 측이 승리했다.
양가 모두에서 개혼만 아니었다면 가까운 친지만 모아 간단히 식을 치르고 싶어한 진원은 양가 부모님의 뜻을 따르는 것은 초대인원까지만이라고 정중히 선을 그었다. 집안형편상 스몰웨딩이 곤란한 것은 우리집 쪽이었기 때문에 그마저도 본가보다는 처가를 좀 더 배려한 것이었다.
혼수와 예단이 약간 문제였다.
그러나 마치 이날을 위해 그동안 허리를 졸라매 온 것처럼, 짠순이인 내 엄마는 예상외로 큰손의 면모를 보였다. 미친 듯이 부동산이 폭등한 후로는 집값을 신랑신부 측이 반반씩 부담하는 새로운 사회풍조를 따르지 않아도 되는 기쁨과 자랑거리가 엄마를 그렇게 만든 것 같았다.
혼수랑 예단은 맞춰줘야지. 네 시엄마 그렇게 겉으로는 웃어 보여도 눈매가 사나운 게 보통 성격 아닐 거다. 옛날부터도 혼수 제대로 안 해가면 평생 눈총받는다 그랬어. 시대도 변했고 느이 할머니처럼이야 하진 않겠지만.
엄마는 내가 따로 모아온 돈은 그대로 갖고 있으라며, 정히 마음쓰이면 동생 결혼할 때나 보태달라고 했다. 아무리 청약금을 붓고 적금을 들어도 요새 집값에 가당키나 하겠느냐며 한숨 쉬는 것이 내 엄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의 방식이었다. 엄마의 자식에 대한 애정은 따뜻하고 자상한 말이나 행동보다는 통장에 찍힌 동그라미가 여러 개 달린 숫자에서 비롯하는 듯했다.
성실한 아버지는 많지 않은 월급이라도 꼬박꼬박 엄마에게 모두 넘겨주었고, 억척스러운 엄마는 천 원짜리 한 장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동네 아줌마들을 상대로 출장 미용을 꾸준히 하며 세금을 내지 않는 현금까지 야금야금 모았다. 엄마가 얼마를 갖고 있는지는 아버지도 몰랐다. 정확히는 별 관심 없는 것이겠지만.
진원이 신혼집으로 먼저 이사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결혼식장을 알아보는 동시에 가전과 가구들도 알아보아야 했다. 진원이 살던 오피스텔은 거의 빌트인이었고 어차피 몇 달 뒤에는 내가 들어갈 집이었기 때문에 안주인이 될 예비 신부에게 선택권이 있었다. 그러나 고르기가 영 쉽지 않았다.
어차피 아이들이 어릴 때는 값비싼 것들을 들여놔봐야 금방 망가진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해댔고, 그를 모를 리 없는 엄마였다. 그럼에도 엄마는 까탈스러운 사부인의 뜻에 웬만해선 따를 것을 내게 지시했다. 어차피 나는 별다른 로망도 취향도 없었으므로 예비 시어머니가 선호하는 특정 브랜드 안에서 되도록 저렴한 것을 고를 계획이었다.
다행히도 진원의 어머니는 당신을 위한 예단에 대해서조차 과한 요구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진원의 고집과 그의 부친의 지원 때문임을 나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몇 번의 유산 끝에 삼대독자로 태어난 진원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의대에 진학하지 않은 것 외에는 부모의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는 ‘엄친아’였다.
누구에게 주어도 아까울 아들이 선택한 며느리감이 마음에 차지 않더라도 겉으로는 환영할 만한 교양을 내 미래의 시어머니는 갖추고 있었다. 물론 불쑥 나오는 말들이나 표정이 마음을 완전히 숨기지는 못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녀가 완벽한 위선자나 이중인격자인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나를 낳고 키운 내 엄마마저 내가 누굴 닮아 남편 복이 넘치냐고 하는 판국에, 내 예비 시모의 태도 정도면 귀여운 수준이라 함이 공정할 것이다.
진원은 나의 이러한 태도가 대범하다며 감탄했지만, 그가 전적으로 내 편이라는 믿음이 없었다면 과연 내가 그의 말대로 대범할 수 있었을까. 아니 대범한 척할 수 있었을까.
결혼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진원과 나는 한 달 사이 요한네 가게에 두 번이나 들렀다.
진원의 충고대로 친구나 지인들을 데리고 가지 못한 대신이었고 요한이 만들어주는 칵테일이 맛있어서였다. 그리고 갈 때마다 연주를 보았다.
원래도 매일같이 왔다고 했다. 그러나 전과는 달리 요한에게 관심을 보이는 여자들에게 시비를 걸지도 않고 조용히 앉아서 무알콜이나 도수가 약한 것으로만 두어 잔 마시고 요한이나 자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꼬박꼬박 값까지 치르고 간다며, 사장님은 다른 손님들이 연주 같기만 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연주의 시선은 줄곧 요한을 좇고 있었으므로, 그에게서 마음을 접었다는 연주의 말을 믿기는 어려웠다.
야, 연주 너 포기한 거 확실해?
진원 역시 그렇게 느꼈는지 연주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요한에게 물었다.
왜.
포기한 남자 보러 매일같이 오냐? 그리고 계속 너 보고 있잖아.
노력하고 있잖아. 그것까지 뭐라고 하면 또 어떻게 나올지 알고. 얌전히 구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요한은 담담히 말했다.
하기야 연주 같은 여자애가 한둘이었을까. 나름의 노하우가 있을 법했다. 적어도 일할 때의 그는 당당하고 두려운 게 없었다. 가게 밖에서는 그렇지 못하니 지난번과 같은 소동이 있었겠지만. 그나마 그렇게 난리 피운 연주조차 어르고 달래어 온순하게 만든 요한이었다.
다만 연주는 요한의 말대로 노력하고 있을 뿐인 것 같았다.
야한 옷차림이라거나 다소 과하게 치근대는 여자를 보면, 그리고 요한이 여자들과의 이야기가 길어지는 듯하면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본인도 힘들었던지 연주는 결국에는 술잔을 챙겨들고 진원과 내가 앉은 안쪽자리로 왔다. 진원과 나는 어린 동생의 어리광을 받아주듯 연주를 받아주었다.
그런데 연주는 이제는 친해졌다고 생각했는지 진원과 나에게 질문공세와 충고(?)를 해대어 우리를 곤란하게 했다.
요한 오빠만큼은 아니지만 오빠도 꽤 잘생겼네요. 인기 많죠? 아직 젊은데 왜 벌써 결혼해요? 좀 더 즐기지.
라든가,
언니는 좀 꾸미고 다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최소한 우리 첨에 봤을 때처럼은 하고 다녀요. 그때는 그나마 봐줄 만하던데.
라든지.
주로 겉모습 관련 진원을 칭찬하고 나는 지적하는 내용들이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듣기 좋은 소리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말들을 할 때에야 비로소 요한을 벗어나 있는 것 같았으므로, 아니 그러기 위해서 일부러 마구 지껄여대는 것 같았으므로 나는 그저 웃어 넘겼다.
아직은 어린 연주는 나름의 방식으로 요한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고자 노력중이었다. 어려서 죽다 살아났다니 몸이 크게 아팠을 테고, 지금은 마음이 크게 아픈 중인 것이다. 인생에서 최고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로서는 그 정도 아량은 베풀어야 할 것 같았다.
다만 실연에 대처하는 방식이 나와 다른 것은 약간 마음에 걸렸다.
내가 연주였다면 포기해야 하는 남자를 보기 위해 하루가 멀다하고 그의 일터에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마주치지 않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했을 것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법이니까. 나는 그랬다. 그리고 그에 대한 생각을 덜기 위해, 그에 대한 생각이 차지하는 뇌의 용량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나는 더욱 OTT에 많은 시간을 썼을 것이다.
내가 연주라면 검정고시와, 나아가 수능준비에 집중할 좋은 기회로 삼았을 텐데. 그러나 사람마다 각자의 방식이 있으니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었다. 더구나 그런 참견이나 충고를 할 정도로 연주와의 관계는, 관계라고 할 만한 것도 없이 얼굴이나 튼 사이였다.
그렇게 눈에라도 담아야 할 정도로, 그렇게라도 한 공간에 있고 싶을 정도로 요한이 아름다운 것은 나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곁에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사랑도 있다고 유행가 등에서는 말하지 않던가. 그런 바보 같은 사랑을 다룬 노래나 영화 등이 꽤 인기가 있는 것을 보면 나와는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러니까, 결혼을 하려면 언니 같아야 한단 거죠?
진원이 자리를 비웠을 때 연주는 여전히 열심히 일하고 있는 요한에게 눈길을 거두지 않은 채로 내게 따지듯 물었다.
언니처럼 얌전해 보이고, 성실하게 집이랑 직장만 왔다갔다하고, 애인하고 만나도 밤늦게까지 안 있고…?
…글쎄요.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요?
연주가 그저 몇 번 본 나를 꿰뚫어 볼 통찰력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요한이 진원에게 들은 이야기를 연주에게 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또 무언가 말할 수 없는 불길함이 느껴졌지만 나는 애써 무시했다.
언니네 오빠랑 요한 오빠랑 죽고 못살게 친하다니까, 생긴 건 달라도 그런 건 비슷하지 않을까…
연주가 중얼거렸다.
또렷하게 들리지 않기도 했고, 연주의 말이 순간적으로 잘 이해되지 않아 나는 가만히 있었다.
언니는 요한 오빠 같은 남자 별로예요? 언니보다 예뻐서?
마침 내가 마시고 있던 것이 술이 아니라 물이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뿜거나 흘려도 술보다는 닦기 쉽고 그냥 마르길 기다리면 되니까.
난 오빠가 나보다 예뻐서 좋거든요. 세상 누구보다 예뻐요.
…예쁘다기보다는, 미인이죠. 말 그대로 아름답게 생긴. 그게 더 어울리지 않나…
아, 맞네! 아름다운! 와, 역시 배운 사람은 다르네.
자신의 말에 물을 뿜은 내가 냅킨으로 탁자를 닦는데도 연주는 아랑곳하지 않고 요한의 미모만 찬양하기 바빴다.
딱히 연주의 말에 반박할 생각은 없었다. 이미 내가 요한에게 농담 삼아 건넨 말이었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나에 대한 도발 과정에서 보인 그의 예측불가능한 언행이 적어도 나에게는 그의 외모경쟁력을 상당 부분 깎아먹었다는 것을 연주는 알지 못했다. 연주처럼 그의 미모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고 나는 생각했다.
요한 씨랑 낮에 만난 적도 있어요?
낮을 불편해하던 요한의 모습이 떠올라 문득 내가 물었다.
연주가 탁자 위에 놓인 칵테일 잔의 빨대를 빨다가 그대로 눈을 치켜뜨고 나를 보았다. 위로 치켜뜨니 눈이 동그랗게 커졌고 뭘 그런 걸 묻냐, 같은 반항기 가득한 눈빛이어서 나는 약간 당황했지만 말을 이었다.
전에 몇 번 만났다고 들은 거 같아서.
나야 술마시고 싶었죠.
연주가 몸을 세워 바로 앉으며 말했다.
오빠가 정히 만날 거면 술은 절대 안 된다고 해서, 오빠 출근시간 전에 카페나 겨우 갔어요. 조르고 졸라서 사진 한 번 찍고. 어둡고 좁은 데는 안 된다고 방탈출카페도 안 가고, 노래방도 안 가고. 다른 여자들하곤 일 끝나고도 잘만 만나면서…
연주가 다시금 호로록, 음료를 들이마셨다.
처음부터 요한은 연주를 여자로 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도 일부러 대낮에 몇 번을 만나준 것을 보면 요한은 정말 연주를 동생처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랑과는 외모도 성격도 닮은 곳이라고는 전혀 없는데 무엇이 요한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나로선 알 수 없었다.
나도 결혼식에 가도 되죠?
진원이 돌아왔을 때 연주가 말했다.
나도 이만하면 자격 있지 않아요? 벌써 몇 번을 봤는데.
아…
진원이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보았다. 하객이야 많으면 좋고 굳이 거부할 이유도 없어서 내가 말했다.
그래요. 와요.
내가 부케 받아도 돼요?
현재로서는 내 몇 안 되는 친구나 지인 중에는 당분간 결혼할 사람이 없긴 했다. 그러나 연주는 부케를 받기에는 아직 너무 어리고, 성급했다.
…정히 받을 만한 사람 없으면 생각해볼게요.
부케 받아야 이어서 결혼하는 거 맞죠?
보통은 결혼 예정인 사람이 받아요.
그래서 내가 두 달 뒤에 있는 사촌 언니의 부케를 받기로 되어 있었다. 마흔이 다 되어 결혼하는 언니는 주변에 결혼할 사람이 없는데 잘됐다며 나의 결혼 소식을 예상보다 더욱 기뻐했다. 부케를 받고 6개월인가 그 안에 결혼하지 않으면 오히려 노처녀가 되고 만다는 속설을 연주는 모르는 것 같았다.
아직 어린데 결혼 되게 하고 싶나 봐요.
진원이 말했다.
그래도 우선 검정고시부터 따는 게 맞지 않을까요? 사장님 말처럼 대학도 가면 더 좋고. 결혼이야 나중에 해도 되지만 연주 씨 나이 때에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으니까.
…우리 엄마아빠랑 똑같은 말이네요.
연주가 한숨을 쉬었다.
문득 연주의 부모님이 궁금해졌다. 아직은 어린 딸이 열 살이나 더 많은 바텐더를 잘생겼다는 이유로 쫓아다니고 있는 것을 알면 어떻게 반응할까. 내 부모님, 특히 엄마 같으면 진작에 머리 깎아 방에 가둬놓았을 만한 사안이었다. 내 딸이 연주 같다면 엄마처럼까지는 아니어도 나도 그냥 두지는 않을 것이다. 등짝 정도는 때리고도 남겠지.
연주는 우리와 가게에서 만난 세 번 모두 우리보다 먼저 가거나 우리가 갈 때 같이 일어섰다. 그것만큼은 기특했다. 세 번째 만났을 때는 진원과 내가 온 지 얼마 안 되어 ‘언니’가 데리러 왔다며 급히 가게를 떠났다. 얼마나 급했던지 계산도 하지 않고 그대로 나가버려서 요한과 사장님의 만류에도 진원이 계산했다.
요한처럼 연주도 알 수 없는 구석이 많은 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