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슬픈 날, 이상한 날 - 전편. 좋은 아빠

by 지구인




“아빠가 당분간 ㅇㅇ동 할아버지랑 있을 거야.”


엄마가 아침 식탁을 차리면서 말했다.


“할아버지 곧 수술하시는 거 알지. 좀 미리 가 있기로 했어요.”


나는 화장실 문을 열다 말고 두리번거렸다. 엄마 말처럼 아빠는 보이지 않았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까 좀 안 좋으셨거든. 지금은 안정되셨지만.”


“아빠 언제 오는데?”


“글쎄…. 할아버지 상태를 봐야겠지. 나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겠다, 라는 말에 짜증이 느껴졌다. 그릇을 내려놓는 소리도 평소보다 크게 났다.


ㅇㅇ동 할아버지는 당뇨도 있고 혈관 문제도 있고, 다른 데도 탈이 잘 나신다고 한다. 그래서 병원에 자주 입원하신다.


아빠는 그럴 때마다 병원에 있는다. 엄마를 따라 병문안을 갈 때마다, 사람들은 아빠가 ‘요새 보기 드문 효자’라고 칭찬하기 바쁘다. 나한테 효자 아빠 둬서 효녀 되겠다, 는 말도 꼭 한다. 그럴 때 보통 엄마는 그러게요, 라며 보일 듯 말 듯 웃었다. 그러면서 내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 엄마는 짜증을 낸다. 처음이었다. 엄마의 말에서 할아버지 걱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도 처음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평소 같으면 꼬치꼬치 캐물었을 나였지만, 이상하게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예빈아!”


오늘도 학교 가는 길에 지우를 만났다. 평소처럼 지우의 한 손에는 동생 시우 손이 잡혀 있고, 다른 한 손에는 실내화가방 두 개가 덜렁거리고 있다. 시우의 손가락 하나가 시우의 콧구멍 하나에 들어가 있는 것도 다른 때와 똑같았다.


오늘은 나도 지우 손을 잡고 가고 싶다. 아침이 잘 넘어가지 않아 대충 먹어서 그런지 기운이 없다. 지우 손을 잡고 가면 힘이 날 것 같다. 그런데 그러려면 나는 한 손에 지우 동생 시우 것까지 실내화가방 세 개를 모두 들고 가야 한다. 지우의 두 손은 나와 동생의 손을 각각 잡고 가야 하니까.


몇 번인가 해보았는데, 생각보다 귀찮고 힘이 드는 일이었다. 지금은 가뜩이나 기운도 없으니 학교에 도착하기 전에 손을 놓게 될 것 같다.


오늘만 시우 것은 시우가 들고 가면 어떨까, 잠깐 생각했지만 1학년 한참 동생이니까 좀 더 봐주기로 했다. 가만, 나는 1학년 2학기부터는 내 건 내가 다 들고 다녔던 거 같은데? 지우한테 말할까 하다가 역시 그만두었다.


지우는 동생이 귀찮아 죽겠다고 하면서도 시우를 엄청 챙긴다. 넌 동생이 없어 좋겠다, 라고 잊을 만하면 내게 말하지만 말 뿐인 것 같다. 나하고는 화장실에도 같이 갈 수 있어서 더 좋다고 했지만, 동생과는 집에서도 함께 놀 수 있어서 좋다고도 했다. 아직도 코딱지 파서 먹기까지 하는 1학년 꼬마 남자아이와 뭘 하고 놀면 재미있을까? 으, 별로 알고 싶지 않다.


“동건이 형아다!”


시우가 지우 손을 뿌리치고 달려갔다.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걸어오는 동건이가 보였다. 오늘도 동건이는 아빠와 함께였다.


이번 달부터 동건이는 한 달에 일주일씩은 아빠네 집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그 일주일 동안, 동건이는 모범생에 우등생으로 변신했다. 아빠가 도와주셨기 때문인지 평소와 달리 준비물도 다 챙겨 오고, 숙제도 다 하고, 손을 들어 발표까지 했다. 모두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담임 선생님은 이번 주만 같으면 동건이가 우리 반의 ‘이 달의 최우수 학생 상’을 받고도 남겠다고 하셨다. 동건이와 같은 학원 다니는 아이들이 말하길, 이번 주에는 학원도 하나도 빼먹지 않고 열심히 다녔다고 했다.


그런데 동건이 얼굴이 어두웠다.


시우가 동건이 얼굴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형 울어?”


“아니거든!”


동건이는 소리를 꿱 지르고는 교문 쪽으로 달려가버렸다. 동건이 아빠는 먼저 가버린 동건이 대신 우리 셋을 교문 앞까지 데려다주셨다. 아저씨가 들고 있던 동건이의 실내화가방은 내가 받았다.


“보다시피 동건이가 기분이 영 안 좋구나. 어젯밤부터 그랬단다. 예빈이랑 지우가 동건이 좀 달래줄 수 있을까?”


“동건이 왜 그러는데요?”


“…다 아저씨 잘못이지. 아저씨 때문에 화가 많이 났어.”


아저씨 얼굴도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지우가 침을 꼴깍 삼켰다. 궁금한 것을 못 참고 아저씨한테 캐묻거나 이러저러한 일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니냐며 참견을 할 것 같았다. 나는 냉큼 지우 팔을 이끌었다.


“들어가자.”


“누나, 빨리 가자. 나 화장실.”


마침 시우가 발을 동동거렸다. 지우는 한숨을 쉬며 동생의 손을 잡았다.


“안녕히 가세요.”


“그래, 수업 잘 듣고 동건이도 부탁한다.”


우리들 인사에 동건이 아빠는 웃었지만, 억지로 웃는 것 같았다.






동건이는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나와 지우 말고도 남자아이들이 말을 걸었지만 동건이는 대꾸하지 않았다. 선생님 꾸중을 듣고 바로 앉기는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동건이는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하루 종일 멍했다. 쉬는 시간만 되면 다시 책상에 엎드렸고,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건이는 점심도 먹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동건이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야, 너 배고프잖아.”


지우가 엎드린 동건이에게 말했다.


“너 아침도 안 먹었지? 아빠 속 그렇게 썩힐래?”


아아, 지우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지우의 별명 중 하나는 ‘지우엄마’이다. 꼭 우리들 엄마처럼 잔소리해서 반 아이들이 붙여준 것이다. 지우의 잔소리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말을 안 들으면 지우는 철썩 등을 때린다.


지우는 손이 맵다. 게임하다 걸려서 지우에게 인디언밥을 맞았을 때 나는 배꼽으로 내장이 다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내가 단짝이라 특별히 살살 때렸다고 하는데도 너무 아팠다.


지우한테 맞은 아이들이 담임 선생님께 일렀지만, 선생님은 때린 것은 잘못이지만 지우 말이 다 맞는 말이라며 웃으셨다. 대신 때리는 것에 대해서는 지우는 벌점을 받게 되었다. 어쨌든 지우의 잔소리는 선생님도 인정해주셨기 때문에 지우는 우리 반의 ‘지우엄마’로 선생님 다음 가는 권력을 갖게 되었다.


짓궂은 남자아이들이 ‘지우엄마’가 아니라 ‘지우아줌마’라고 부르는 바람에 한바탕 난리가 나기도 했지만, 지우는 ‘지우엄마’라는 별명을 꽤 마음에 들어 한다. 내 베프이지만 지우는 참… 특이한 아이다.


“공부는 안 해도 밥은 꼭 챙겨 먹어야 해. 우리는 성장기 어린이니까. 삐져도 밥은 먹고 삐져 있어.”


지우의 말에 동건이가 천천히 윗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바로 일어서지는 않았다. 동건이는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었다.


“왜 안 일어나? 밥 먹으러 가자니까.”


‘지우엄마’가 재촉했다. 이젠 내가 나설 차례이다.


“너 일어날 때까지 지우 버틸 거 너도 알잖아. 어서 가자.”


“맞아. 아저씨도 너 잘 챙겨주라고 부탁하셨다고.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밥만큼은 챙겨 먹이기로 결심했으니까 알아서 해.”


이쯤 되면 동건이도 어쩔 수 없다. 마침내 동건이가 일어섰다.


동건이는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지우 말대로 아침도 안 먹은 모양이었다. 지우는 내 그럴 줄 알았다, 는 표정으로 동건이를 보았다. 혀 차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도 오늘따라 급식이 맛있었다. 갈비찜이 최고였다.


점심을 먹고 우리 셋은 평소처럼 운동장으로 나왔다. 마침 벤치 중 하나가 비어 있었다. 우리는 급식으로 나온 요구르트를 마시며 자리에 앉았다.


“자, 이제 말해봐.”


지우가 말했다.


“배부르니까 기분 좀 나아졌지? 아빠 때문에 화난 거 맞아? 뭐 땜에 화가 난 건데? 아저씨 같은 아빠가 또 어디 있다고.”


지우 말이 맞다. 물론 우리 아빠만큼은 아니지만 동건이 아빠도 훌륭한 분이다. 아니, 어쩌면 이혼한 것만 빼면 동건이네 아빠가 우리 아빠보다 좋은 아빠일지 모른다.


아저씨는 데이트 한 번을 안 하고 동건이의 생활에 맞춰 지낸다. 아침점심저녁 하루 세 번 넘게 꼭 전화하고, 주말과 공휴일은 물론이고 재량휴업일에도 휴가를 내어 동건이와 보낸다. 휴가를 못 내게 될 때면 아저씨는 그렇게나 미안해하고 아쉬워한다고 동건이는 자랑하곤 했다.


그에 비하면 우리 아빠는 워낙 일이 많고 바쁘고, 할아버지까지 챙겨드려야 해서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많지 않다. 따지고 보면, 함께 사는 나보다 따로 사는 동건이가 아빠와 보내는 시간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아빠와 따로 살기 전에도 동건이는 이미 ‘아빠바보’였지만, 엄마와 살게 된 후에는 더욱 심해진 것 같다. 그런 동건이가 오늘 아침에는 아빠한테 화를 내고 버릇없이 굴었다. 무슨 일인지 나도 궁금하다.


“내가 이번 주에,”


동건이가 입을 열었다.


“완전 열심히 산 거 너네도 알지.”


나와 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랑 있을 때 내가 잘해야 엄마한테 말할 수 있으니까. 아빠랑 지내는 게 나한테 훨씬 좋은 거라고. 나 좀 아빠한테 보내달라고.”


동건이는 진지한 얼굴이었다.


“2학년부터 엄마랑 살았으니까 이제는 아빠랑 살아도 되잖아? 어차피 엄마랑 살고 있어도 엄마 얼굴 보기도 힘든데. 지금도 아빠랑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데 그냥 아빠한테 보내버리는 게 엄마도 속 편하지, 안 그래?”


“엄마가 안 된다고 해서 화난 거야? 원래도 그렇다고 했잖아. 왜 아빠한테 화를 내.”


내가 말했다. 엄마한테 화난 것을 아빠한테 푸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더구나 아저씨처럼 좋은 아빠한테는 더욱.


“아니 그게 아니고 엄마한테 말해보기도 전에 아빠가 안 된다고 하잖아. 엄마가 속상해한다고! 내가 열 안 받게 생겼어?”


동건이가 씩씩거렸다.


“내가 더 열받는 건, 아빠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거야. 엄마 애기 가진 것 같단 말이야. 난 새아빠랑 살기 싫어!”


나와 지우가 깜짝 놀라는 사이, 동건이는 자리를 박차고 가버렸다. 지우와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며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