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는다는 것
『오이디푸스 왕 외』 <김기영 옮김, 을유문화사, 2015년>
“인생의 마지막 날을 보기까지는 어느 누구도 행복하다 기리지 말라.”
테베에 역병이 창궐하여 온 백성이 신음하고 있었다.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에게 과제가 주어졌다. 선왕 라이오스를 살해한 자를 찾아서 처형하거나 추방하면 테베를 구원할 수 있다는 신탁이었다. 아주 오래된 미제 사건이었다. 왕은 자신의 어떤 고통보다도 백성들의 고통에 더 가슴 아파했다. 또한 선왕 살해범은 자신의 목숨까지 노릴 것으로 보았다. 그는 살인자를 찾기 위해 어떤 수고도 아끼지 않겠다고 선포했다.
그가 살인자를 찾기 위한 심문을 시작하자, 신탁의 예언은 바로 당신을 범인으로 지목한다며 조사를 중단하라고 청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는 예언을 믿지 않았고, 그들에게 모멸감을 주고 협박을 하며 한 단계씩 수사를 진척시켰다. 백성과의 약속, 그들의 구원이 그에게는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자신의 지혜를 믿었다. 괴물 스핑크스가 테베의 백성을 괴롭히며 제물을 강탈할 때, 수수께끼를 풀어 테베를 구한 것은 예언자도,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었다. 그는 그 공로로 테베의 새로운 왕으로 추대되었다.
빈틈없이 심문했고, 그를 자식으로 키운 폴뤼보스 왕의 때맞춘 죽음도 수사를 도왔다. 하지만 수사 결과는 참혹했다. 선왕의 살해자는 그 자신으로 밝혀졌다. 그는 선왕을 죽였고, 현재 왕비인 선왕의 아내와 결혼했다. 그와 왕비는 자식들을 낳았다. 잔인한 사실은, 그가 선왕과 왕비의 자식이었던 것이다. 두 아들과 두 딸은 그의 자식이자 형제였고, 왕비는 그의 아내이자 어머니였다. 진실이 드러나자 왕비는 목을 매 자살했다. 그는 왕비의 브로치를 뜯어 그 끝으로 자신의 두 눈을 찔렀다. 맹인이 된 그는 스스로를 테베에서 추방하고자 했다.
오이디푸스 왕을 파멸로 이끈 것은 그의 성격과 우연성이었다. 한 점의 의혹도 놓치지 않는 철저함,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분노,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뛰어난 지성, 강한 실천력이 그의 성품이었다. 같은 덕목이라도 때에 따라 미덕으로, 때에 따라 악덕으로 작용한다. 성격은 그때그때 다르게 발현되기 어렵다. 어떤 인물이 어떤 상황에 직면하느냐의 문제다. 성격이 그를 파멸로 이끌었지만, 또한 그 성격 때문에 그는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오이디푸스 왕과 비슷한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다면, 누군가는 진실을 밝혀낼 것이고, 누군가는 밝혀내지 못할 것이다. 성격의 차이, 조사 과정에서 부딪히는 우연적 요소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결과의 차이만큼이나 우리가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도 달라진다.
우리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여 판단한다. 그 시점에서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정말로 알고 있는 것은 차이가 없을까.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을 판단 근거에서 빠뜨리지는 않았나. 우연성까지 고려해야 하는 그 결과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때로는 그저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인간의 한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