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과 반발
『비둘기』 <유혜자 옮김, 열린책들, 2020년>
“그는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참아 내는 사람이었다.”
53세의 조나단은 파리에서 30년째 혼자 살고 있다. 일터와 식료품 가게와 아파트를 오가며 친분 관계 없이, 평화롭고 만족스럽게 지냈다. 30년의 시간을 은행 앞에서 두려움도, 좌절도, 불만도 없이 경비원으로 일했다. 그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이 생기는 것을 혐오했다. 내적인 균형이나 외적인 질서가 깨지는 일은 청년기 시절 이전에나 있었고, 그런 일들은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리려 애썼다. 평생토록 착실하게 생활했고, 금욕주의자에 가까웠다. 상사에게 복종했고, 누구에게나 예의를 잘 지키며 살아왔다. 한 푼이라도 일해서 벌었고, 빚을 진 적도, 남에게 폐를 끼친 일도, 병에 걸렸던 적도 없었다. 파리에 오면서부터 이 아파트에 세 들어 살았다. 아주 작고 오래돼서 침대와 세면대를 구분하는 벽도 없고, 각 층에 하나씩 있는 공동 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 그는 이 집에 익숙해져서 다른 집으로 이사하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다. 올해 말에 잔금만 지불하면 자신의 소유가 된다. 그는 이것 말고는 더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았다.
오늘 아침, 그의 일상이 흔들렸다. 현관문을 열자, 문 앞에 비둘기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뱀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뱀을 본 듯, 그는 공포에 휩싸였다. 우산을 방패 삼아, 두려움을 뚫고 가까스로 집에서 나왔지만,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았다. 확고부동한 일상이 틀어지면서 인생이 30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았고, 지난 세월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 느낌이었다. 마음의 평화가 깨지자 몸의 균형도 깨졌다. 경비를 서는 내내 발바닥이 묵직했고, 온몸이 가려웠고, 눈이 침침했다. 은행장이 들어오는 승용차 소리조차 듣지 못한 건, 30년 동안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이제 더 이상 경비원을 할 수 없는 몸 상태가 되어 버렸다고 생각했다. 직장을 잃고 알코올 의존자가 되어 폐인이 될 것 같아 두려웠다. 집에 가지 못하고, 공원에서 점심을 먹었다. 벤치의 못에 걸려 바지의 허벅지 부분이 찢어진 사건은, 단정하고 청결한 그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유발했다. 자신을 향한 분노는 곧 세상을 향한 증오심으로 전이됐다. 오후 경비를 서면서 그의 눈에 들어온 식당 손님과 종업원은, 그의 가치관으로 평가할 때, 매우 불성실한 자들이었다. 그들을 향해 마구 총을 쏘고 싶어졌다.
이제는 심신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어제까지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라는 판단이 서자, 그는 내일 자살하기로 결심했다. 호텔방에서 마지막 저녁을 먹었다. 새벽녘, 천둥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어리둥절했다. 어렸을 때 전쟁을 겪었던 지하실에서, 어린 시절의 자신이 되어 있는 착각에 빠졌다. 이때 그는, 지하실 밖으로 나가기 두려워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억압되어 잊혔던 기억과 마주하면서 그의 트라우마는 치유되었다.
그는 호텔방을 홀가분한 기분으로 나섰고, 도로에 파인 빗물 웅덩이를 지그재그로 밟으며 바짓가랑이가 젖도록 철벅거렸다. 그는 비둘기의 공포에서 벗어나 집으로 들어갔다.
조나단은 일상의 안정을 위해 30년 동안 몸과 마음을 철저하게 억눌렀지만, 단 한 번의 일탈로 인해 일상이 연쇄적으로 크게 흔들리며 자살 위기까지 겪었다. 각자의 이유는 다르겠지만, 자율적이든 타율적이든 억압된 상태를 지속하는 것은 자신의 몸 안에 강한 파괴력을 저장하게 된다. 더 세게 수축된 용수철이 더 세게 반발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