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이라는 전통은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영화 <백투 버건디>를 보고서

by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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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투 버건디(부르고뉴)라는 프랑스 영화를 보았다. 프랑스 영화는 노동자 해고 문제를 다루었던 <내일을 위한 시간>이후 두번째로 봤다. 프랑스 영화라고는 겨우 두 편봐서 일반화 하기는 어렵지만 두 편다 한국영화나 할리우드 영화와는 다른 프랑스 영화만의 분위기가 있다고 느꼈다. 한국영화는 남성들이 우글거리는 느와르 장르거나, 거대서사를 다루는 역사물이 주류여서 남성들이 짙은 목소리와 분위기가 깔리는 '마초성'이 강하다. 할리우드의 영화는 히어로 영화들을 중심으로 하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서 만들어지는 CG가득한 환상적이고 거대한 스케일의 영화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프랑스 영화는 '마초성'이 강하게 느껴지지도 않고, 할리우드 영화처럼 엄청난 예산으로 쏟아부어서 거대한 스케일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전에 봤던 영화인 <내일을 위한 시간>도 한 여성과 그의 가족 그리고 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 만이 등장하는 사소한 일대기를 다룬다. 백투 버건디도 3남매와 아버지의 와인밭에서 일어나는 가족사를 다루고 있다. 영화의 색채도 마초성을 강조하기 위함인지 온통 검정색에 무채색을 강조하는 한국의 느와르 영화들과 달리 다양한 색들의 향연을 보여준다. 우리 주변의 작은 이야기들을 따듯한 색채로 포근하게 전달해주는 것. 그것이 프랑스 영화의 색채이고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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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의 첫 장면이다. 한 남자아이의 나레이션과 함께 영화의 배경이 되는 포도농장의 4계절을 시간의 변화와 함께 보여준다. 어떤 대단한 CG도 등장하지 않지만 정말 아름답고 멋졌다. 영화의 가장 첫 부분에 몇 분정도 보여주는 이 장면만 보고서도 이 영화를 본 보람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영화의 내용은 부르고뉴 지방에서 대대로 와인을 만들어왔던 3남매의 갈등과 변화 화합 등에 관한 것이다. 첫째 아들은 아버지의 고압적인 태도가 싫어서 고향을 떠나서 호주에서 와인을 배우고 만들다가 아버지의 병환 소식과 함께 프랑스로 돌아왔다. 둘째 딸과 셋째 아들은 첫째가 떠난 뒤에도 계속해서 자리를 지키면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와인을 만들었다. 첫째 아들이 돌아오고나서 둘째 딸과 셋째 아들은 첫째에게 불만을 표한다.


"어머니의 죽음 소식에도 오지 않다가 이제와서 뭐하려고 내려왔어!"

갈등도 잠시 와인을 만들어야할 포도의 수확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셋은 포도밭으로 향한다. 갈등은 포도에서도 일어난다. 둘째 딸은 아버지의 와인 맛을 기억하고 그것을 이어가고자 하고, 아버지가 싫어서 집을 떠나서 자신만의 와인을 만들어왔던 첫째는 아버지와는 다른 와인을 만들어야한다고 둘째 딸에게 이야기한다. 셋째는 그 동안 아버지의 포토밭에 한번도 오지 않았던 형이 수확이 좌지우지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결국은 아버지의 맛을 이어가지 않고 3남매만의 새로운 와인 맛을 찾아서 모험을 하기로 한다.


이들의 모험은 성공으로 끝나서 아버지와는 다르지만 성공적인 맛을 가진 와인을 만들어낸다. 이제는 아버지의 농장이 아닌, 3남매의 농장에서 와인의 완성을 축하하는 파티를 연다. 함께 만든 와인의 완성이 아버지의 삶의 뒤를 잇는 것이 아닌 새로운 변화를 이루어내면서 3남매의 삶도 변화한다. 호주에서 함께 살던 연인과 갈등을 겪던 첫째는 둘째의 도움으로 화해하고 아버지의 유산으로 남겨진 자신 몫의 땅을 남은 둘에게 빌려줌으로서 이전까지 단절에서 벗어나서 그들과 연결되는 삶을 살기로 결정한다. 스스로의 와인을 만드는 것에 의구심과 불안이 가득하던 둘째는 그것들에서 벗어나서 자신감있게 자신의 농장을 셋째와 함께 일구어 나간다. 부자인 자신의 장인에게 눈치만 보면서 살아가던 셋째는 장인에게 자신과 아내의 불만을 당당히 이야기하고 장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보금자리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영화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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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한국에서 만들었다면 아마 3대째 김치를 만들고 있는 종갓집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한국인에게 김치라는 것이 하나의 음식을 넘어서 문화와 전통, 세대를 상징하는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와인이라는 것이 한국인의 김치처럼 문화와 전통을 간직하고 추구하는 맛이나 향에 따라서 새로운 세대가 탄생하고 만들어지기도 하는 문화의 상징이다. 이 영화는 이러한 프랑스 문화의 중요한 상징인 '와인'이 프랑스 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특히 와인을 직접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삶과 와인이 얼마나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직접 와인을 만드는 이들에게 와인은 하나의 술이나 음료를 넘어서 자신의 가치관과 삶을 결정하고 이끌어가는 견인차나 이정표의 역할을 겸한다.


또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김치를 주제로 이런 영화가 만들어졌다면 김치와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삶이라는 것을 잘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떤 종갓집의 김치 이야기를 다루다가, 가사 노동에 시달리기만 하는 며느리가 등장하고 죽는 날까지 며느리를 제사로 괴롭히는 시어머니가 등장하다가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죽음에 다시는 김치를 거들떠도 보지 않게 된다. 그러다 다시 김치를 먹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결국 종갓집에 돌아가서 망치로 김치 장독을 다때려 부수면서 며느리는 겨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런 내용의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을까.



한국의 김치는 가부장적인 문화의 상징이고 대를 이어서 착취당하는 여성노동의 상징이다. 그러다보니 그 음식은 누군가의 아픔과 한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노동은 오로지 가부장 집안의 여성의 노동이어야하고, 남성을 비롯하여 외부인들은 그 노동에 전혀 포함되지 않는다. 그것은 집안의 수치이거나 몰락으로 상징된다.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해서 그 노동을 분담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프랑스의 와인은 온 집안이 함께 유지해나가는 가업이고 실제 노동에는 돈을 쓰고 사람을 고용해서 일을 하는 자본주의적인 요소도 포함되어 있다. 문화를 지키는 중요한 부분은 집안의 문화로서 만들어가지만, 그 외의 것에는 고용과 피고용이라는 요소가 도입되고 자본과 노동이라는 계급적인 모습인 근대적인 모습도 등장한다. 적어도 영화에서는 현대에 와인이 만들어지는 현실적인 모습을 그리려고 노력한 것 같다. 와인 속에는 아픔과 한이라기 보다는 한 인간과 그 주변 관계의 가치관과 삶이 들어가고, 누군가의 노동과 자본도 투여된다. 그 속에서 전근대적인 전통과 근대 자본주의적 모습이 갈등을 이루고 어느 수준에서 타협을 이루어낸다. 그것이 바로 와인이다.


계속해서 한국은 한식의 세계화를 부르짖으면서 김치의 전통을 이야기하고, 공업화된 김치 생산 공정을 떠벌리고 다니지만 정작 현실 속에서 갈등하는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어느 한편에서는 가부장적 착취로만 생산되는 극단적인 전통의 김치를 이야기하고, 어느 한편에서는 오로지 수출만을 위한 극단적인 자본주의적 생산공정을 김치를 이야기한다. 현실 속에서 김치는 이 중간 어디쯤에 위치할 테지만 절대로 그 갈등을 보여주거나 다루지 않는다. 미디어 속에서의 김치는 오로지 지켜야하고 전통이기 때문에 전통으로만 남아야하는 존재이다. 대표적인 영화가 만화 식객을 원작으로 했던 '식객2:김치대전'이었다. 한국에서도 김치를 지키는 영화가 아니라 김치가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존재하는지에 관한 갈등과 타협을 그리는 영화가 나타났으면 좋겠다. 제목은 '돌아와요 팔도 김치대전..?'쯤 되려나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