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하기.

움직이지 않는 삶에 대하여.

by 바다

-

때늦은 샤워를 하다가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달력이 넘어가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진다면 어떨까. 지금이 5월의 마지막날이니 내일부터 100년동안은 계속 5월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사소한 불편들 외에는 큰 문제는 없겠지만 나의 삶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주기적으로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진다. 강도나 깊이는 그때그때마다 다르지만 보편적으로 삶의 의지를 잃는다. 그런 나에게도 한 줄기 희망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넘어가는 달력이다. 이번달은 비록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냈지만 달력이 넘어가서 새로운 달이 오고 새로운 1일이 되면 다시 힘을 가지고 삶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넘어가는 달력은 희망이다. 달력이 넘어가지 않는다면 아마 나의 우울과 무기력은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인생의 페이지가 넘겨지기 전까지는 늘 무기력한 삶을 영위할지도 모른다.

-

어떤 사람이 되고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많지 않다. 그냥 월급받으면서 평범하고 조용하게 살고싶었다. 그러다 평범하고 조용하게 살기가 어려워지기도 했고 그럴 생각도 별로 없어졌다. 그래서 다시금 어떤 사람이 되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글을 쓰고 사람들을 만나는 삶을 살고 싶다. 무엇이든 꾸준히 배워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다. 정신적으로는 죽음과 외로움 앞에 초연한 사람이 되고 싶다. 페이스북이나 글만 봐도 롤모델로 할 사람들은 적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할까. 내일, 6월 1일부터는 블로그에 [6월의 글 칸]을 만들어서 하루에 1개이상씩 꼭 글을 써야겠다. 그리고 그 밑 칸에는 [6월의건강]칸을 만들어서 다이어트와 운동 일지를 기록하자. 이외에는 알아서 하고 이거 딱 2가지만 한달만 해봐야겠다. 그럼 불안이 조금 더 나아지겠지.

-

사람과 교류를 할 일이 노동하는 것을 제외하면 극도로 줄었다. 그래서 나의 내면과 만날 일이 가장 많다. 내가 만난 나의 내면은 '혐오'로 가득했다. 원래 사람과 교류하는 일이 줄어들어서 '혐오'가 생겼다고 말하고 싶었다. 조금 더 고민해보니 그것은 거짓말이다. 나의 내면은 꽤 오랜기간동안 혐오로 가득차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하고 의미도 없다. 어느 순간 나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는 혐오, 분노, 냉소 같은 부정적이라 일컫어 지는 것들로 채워졌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뺨을 맞았던날 팔다리 덜덜 떨면서 사과하면서 나는 무서웠고 분노했다. 나보다 얼굴도 잘생기고 집에 돈도 많고 공부도 잘하던 아이를 보면서 그 존재에 치를 떨었다. 눈 앞에 서있는 부조리가 너무 싫었다. 그 뒤에 여러 선택을 하고 여러 삶을 살아오면서 다른 감정들도 가졌지만, 어느 순간 되돌아보면 내 마음속에는 혐오, 분노, 냉소가 가득했다. 3가지로 묘사하고 있지만 이들을 지배하는 하나의 감정은 혐오다. 형식적으로는 누군가를 공격하는 식으로 혐오하지만, 내용적으로는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혐오다.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항상 주눅들어 있고, 제대로 된 목표나 계획도 없는 (아니, 없다고 스스로 믿고있는) 나에 대한 혐오 또는 염증.

나는 무결점하고 청결하고 정의로운 인간이 되고 싶지만 나란 인간은 비겁하고 나태하고 이기적인 인간이다. 내 몸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인륜'이라 불리는 것들도 얼마든지 던져버릴 수 있다. 내 귀찮음과 편의 속에서 세상 모든 것들은 도구에 불과해진다. 나는 히어로의 이야기에 열광하고,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동경하지만 나는 히어로도 아니고 투철한 신념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나의 삶은 무엇아나 뚜렷하지 않으며 미세먼지 가득한 서울의 하늘처럼 흐릿하다. 어떤 느낌과 어렴풋한 상만이 존재할 뿐 구체적으로 삶을 설계할 수 있는 목표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목표를 세우는 것은 두려워한다. 그 목표를 세웠다가 실패하면 어쩌지 하는 공포에 떨고 있다. 그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흐릿한 안개 속의 나를 위로한다. 그래서 때로는 나보다 약하고 볼품없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나의 공포를 전이시킨다. 그들을 혐오하고 비난한다. 그들의 불행이 가중되기를 바라며, 그들이 행복이 최소화 되기를 꿈꾼다. 나보다 강한 의지로 삶을 살아내거나, 뚜렷한 목표로 삶을 영위해 나가는 사람들에게 질투를 느끼며 그들이 실패하기를 바란다. 정확히는 그들이 나처럼 되기를 바란다. 나처럼 무기력해지고, 나처럼 흐릿해지기를 원한다.

-

이런 순간이 되면 나는 누군가를 이해하기를 포기한다. 그의 아픔에 공감하기를 멈춘다. 나는 철저히 외면하며 비겁하게 공격한다. 가능성이라는 방패에 숨어서 되지도 않을 일이라며 누군가의 삶과 노력을 비하하기에 바쁘다. 그들은 실패할 수라도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는 실패할 수 조차 없는 사람이다. 그들을 사람을 잃을 수도 얻을 수도 있지만, 나는 사람을 만날 수 조차 없다.

이런 감정의 풍경 속에서 누군가를 만나서 나의 이야기를 하소연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듣는 이에게는 그 나름대로의 충격일 것이고, 나는 나 나름대로 상처를 받는다. 결국 만나야할 것은 나와 나일뿐이다. 나는 나에게 더 집중해야하고, 나는 나를 더 이해해야한다. 나는 나에게 더 공감하고, 나는 나를 더 믿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강박적일지라도 무엇이든 해야한다. 나는 실패해야한다. 무엇을 해서. 나는 사람을 잃고, 상처받아야 한다. 사람을 만나서. 나는 움직여야한다.

사고는 사고의 그늘을 만들뿐 실천의 태양을 만나지 못한다.

매거진의 이전글살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