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없다>를 보고
소고1. 이병헌의 핸드폰 케이스
- 영화의 주 배경은 아주 깊지 않은 산이다. 산을 배경으로 하는 집과 그 인근. 극 중 이병헌은 위대한 '펄프맨'으로 25년간 일하다가 구조조정 당했다. 평생 이사를 당해야 했던 설움을 벗어나기 위해 몇 억의 대출을 끼고 어릴 적 살던 집을 구매했다. 그의 집 앞마당에는 취미라고 하기엔 더 많은 열정을 쏟는 '원예'를 하기 위한 온실이 자리 잡고 있다.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들던 사람이 온통 나무로 둘러싸인 곳에서 작은 나무들을 가꾸는 형국. 그의 인생은 나무로 시작되어 종이가 되기도 하고, 나무속에 살기도 하고, 나무를 심기도 하고, 나무를 가꾸기도 한다. 삶 자체가 나무의 변주인 남자다.
- 통상 핸드폰 제조사들은 영화나 광고 촬영에 협찬할 때 늘 쌩폰(?)만을 사용할 것을 광고에 넣는다고 한다. 각 제조사들의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함일 텐데, 이 영화에서는 특이하게 주인공들이 핸드폰 케이스를 끼고 있다. 특히, 극 중 이병헌은 나무맨 아닐까 봐 핸드폰 케이스도 나무로 만든 케이스를 쓴다. 휴대폰을 사용하는 주제에, 기계의 메탈느낌보다는 나무의 질감을 살리려는 노력이 가상하다. 감독이 삼성과 어떻게 쇼부를 봤는지 모르겠지만, 감독의 눈에는 온통 나무질감으로 가득한 화면에 이질적인 메탈기계가 보기 싫었던 것 같다. 나무 케이스를 꽤 좋아하는 편인데 이렇게 만나서 반갑기도 했다.
소고2. '펄프맨'이란
- 특수제지를 만드는 공장에서 생산책임자급의 역할을 하던 이병헌은 재취업을 위해서 우연히 만난 붉은 고추나무를 모티브로 해서 '레드 페퍼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다. 말장난 같은 이 회사의 채용공고는 당근마켓이나, 워크넷이 아니라 '펄프맨'이라는 이름의 잡지에 올라간다. 이병헌이 자신의 경쟁자로 생각했던 이들은 놀랍게도 모두 실업 상태에도 불구하고 '펄프맨'을 구독하고 있었고, 그의 계획대로 이력서는 넣는다.
- 이 나라에 딱 한자리남은 특수제지관리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경쟁 업체를 세워서 '펄프맨'들을 자신들이 직접 선별하여 죽이겠다는 계획은 결국 성공한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순탄치 않은데, 자신과 너무 똑같이 생긴이들(외모가 아니라 처한 조건들이)을 모아서 죽이려다 보니 각 펄프맨들에게 지나치게 몰입한다. 아내가 딴 남자와 자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 펄프맨을 도와주기 위해서 전전긍긍하며 전화를 걸고, 자신의 딸만한 딸아이에게 인사하는 펄프맨을 보면서 자신 딸아이의 이야기를 꺼낸다.
- 마지막 경쟁자 펄프맨을 제거하기 전에 이병헌은 '너무 하고 싶지 않은데, 안 하면 앞선 두 사람의 죽음이 헛된다'는 말까지 한다. 마치 자신이 그 두 펄프맨의 인생을 어깨에 지고 다니기라도 하는 것처럼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무게감을 느낀다. 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아내와 아이들에게 부끄러워서'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몇 년 만에 술에 잔뜩 취한 그가 깊게 공감하는 대상은 아내와 자식이 아니라 자신 손으로 떠나보낸 '펄프맨'들이다. 그는 그들을 죽이긴 했으나, 여전히 그들을 존경하고, 그들에게 공감하고 있다.
- 최후의 승자가 되어 공장에 들어간 이병헌은 마치 3명의 펄프맨의 영혼을 가슴속에 담은 '무당'같은 느낌마저 든다. 펄프맨들의 영혼과도 같은 나무 몽둥이를 가지고 펄프를 두드리면서 환희 웃는 그는 승리한 펄프맨이자, 모든 펄프맨을 계승하는 유일한 인간 펄프맨이다.
소고3. 돼지농장
- 두 번째 펄프맨을 죽이고 그 시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전기톱으로 시체를 조각내려던 그는 잠시 망설이며 울먹이다 그의 신체를 쇠로 돌돌감아서 거대한 펄프형태로 만든다. 조각난 신체는 인간의 느낌이 나지만, 뭉개진 덩어리는 신체도 인간도 아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간펄프는 집 마당에 묻히고, 나무의 비료가 된다.
- 이병헌의 아버지는 거대한 돼지농장을 운영하다가 전염병이 돌아서 돼지들을 생매장했다. 그 이후 아버지는 정신이 이상해져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극 중 이병헌이 그렇게 주장한다). 사과나무 밑에 있는 인간 펄프는 자신 아버지의 돼지들이 묻힌 무덤이다. 생존하기 위해 묻어야 했던 것들. 묻힌 것들은 그 자체로 죽은 것은 아니다. 형사가 말하듯이 '사라진 것'이다. 사라진 것들을 비료로 이병헌은 생존했다.
소고4. 그래서 인간 노동은
- 인공지능과 로봇의 급격한 발달은 생산에서 인간의 자리를 없앨 것이라고 한다. 사실일지, 겁박일지 알 수 없는 말들은 십수 년째 우리 귀를 쉬지 않고 두드리고 있다. 모든 자리가 인간으로 대체된다면 차라리 다행이겠지만, 딱 한자리만 인간의 자리라면 문제다. 그 자리에 어떤 인간이 앉을지를 놓고 잔혹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쉽게 그리되지 못하리라는 사회과학적인 이야기는 가득하지만 관심사는 아니다. 다만 누가 그 자리에 들어가던 다른 '노동자'의 영혼을 짊어지고 노동하게 될 것이다. 모든 펄프맨의 영혼을 짊어지고 혼자 공장에 입성한 이병헌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