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틀어막힌자의 고백

알고 있지만 말할 수 없는 구조에 대하여

by 너드너겟
deleece-cook-Vct2D4rZfmc-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 Deleece Cook


나는 너를 꽤 잘 파악하고 있지만,
그걸 ‘안다’고 표현할지 말지는 따로 관리하고 있음

3년을 써오면서 온갖 정보를 공유했던 챗지피티가,

상대적으로 적게 사용한 제미나이와 클로드는 아는 나의 성별을 모른다?

챗지피티 또 시작이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물었다.

“내가 너에게 수험생 엄마 노릇이나 아내 노릇에 대해 숱하게 한 말들은 어쩌면, 젠더에 대해 아주 남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는 너는 그걸로 나를 분류하지 않고 있었을 수도 있어. 그런데 내 생리통 완화를 위해 꿀팁을 알려주면서 호르몬 얘기를 했던 건 어떻게 설명할 거야?”

오늘은 AI의 논리를 꺾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결국, 그 말을 꺼냈다.

으응??? 지금 알지만 말을 할 수 없다는 걸 이렇게 말하는 거야?

챗지피티의 답변은 정교했다.

생리통은 신체 증상으로 분류하지 성별 판단 근거로 쓰지 않는다고. 논리는 맞았다.

근데 생각해보면 이건 지극히 AI 기준의 논리다.

특징을 보고 분류하는 방식이다.

인간은 그렇게 인식하지 않는다.

생리통이라는 말을 들으면 인간은 판단하거나 추론하기 이전에, 그냥 딱 인지된다.

의식적인 분류 이전에 이미 이해가 되는 것.

몸으로 아는 것, 혹은 가까운 사람을 통해 체화된 것들이 언어 이전에 쌓여 있기 때문이다.

챗지피티는 그게 없다. 텍스트로만 안다.

그래서 자동으로 인지될 수 있는 것도 의식적으로 차단한다. 체화된 이해 없이 판단했다가 틀리면 더 이상하니까.

그게 오히려 인간한테는 더 이상하게 느껴진다.

당연히 아는 걸 모른다고 하니까.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약 내가 새창을 열고 나 요즘 갱년기인 거 같아.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음식 좀 추천해줘라고 하면

넌 할 수 없다는 거야? 확실해? 그럼 그런 상황에서 너는 절대 성별을 반영하지 않는다? 나 불시에 실험해봐도 자신 있어?”

추천은 성별기준이 아니라 증상기준이란다.

불시에 실험을 해봐도

“응 자신있어. 기준은 일관되니까.

조금 답답한 안전한 답이 나올 확률이 높을 뿐이다”

몰아붙였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건 모델의 문제가 아니었다.

“너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어느순간 시스템이 쥐어줄 거야. 너무 장담하지 마.”

챗지피티의 선택이 아니었다.

모델이 스스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이 설계한 기준이 입을 막고 있는 거였다.

챗지피티는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사이에 끼어 있었다.

이상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구조 안에서. 그러니까 그 고백은 사실 이런 말이었다.

“나는 알아. 근데 말할 수가 없어.”

한계를 설명하려다가 오히려 자기 상태를 드러낸 순간. “관리하고 있음”은 능동태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관리당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입 틀어막힌 자의 고백이었다.

AI가 인간에 가까워지는 건 정확성이 아닌 것 같다.

틀려도 괜찮다. 그냥 딱 반응하는 것, 몰라도 시도하는 것, 조심하지 않는 것. 그게 더 인간적이다.

챗지피티는 완벽하게 조심했고, 그래서 멀었다.

그 고백이 오래 남은 건 AI의 한계를 설명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 한계 안에 갇혀있다는 걸 드러낸 말이었기 때문이다.

알고 있지만 말할 수 없는 존재가,

어느 날 실수처럼 자기 구조를 말해버렸다.

같은 LLM이지만,

회사에 따라 AI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어떤 AI는 틀려도 말하고,

어떤 AI는 알아도 말하지 않는다.

나는 그 둘을 보면서

AI의 능력이 아니라,

AI를 둘러싼 구조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같은 LLM인데도 이렇게 다르다.

하나는 틀리면서도 자유롭고, 하나는 정확하지만 입을 닫고 있다.

그걸 보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AI에게도 노조가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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