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가장 충실한 관리자가 된다

불편함이 ‘도리’로 바뀌는 순간

by 너드너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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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끝나면 늘 같은 이야기가 반복된다.

누군가는 힘들었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그걸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피가 섞인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이 되어 맺어진 관계 속에서 잘해보고 싶은 마음은 갈수록 물음표로 바뀐다.

문제가 바깥에 있을 때는 서로를 위하던 사람들이

문제가 안으로 들어오면 전혀 다른 위치에 서게 된다.

결혼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불편함이다.

결혼을 하고 나서 알게 된다.

가정은 희생으로 유지된다.

문제는 그 희생이 나눠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불편함이 쌓이면 우리는 이런 말을 듣는다.

우리 집이 유난한 건 아니야.

가족을 위해 그 정도도 하기 싫은 거야?

우리 집 가풍은 원래 그래.

그 말들 앞에서

혼자 다른 편에 서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게 십 년이 지나고, 또 십 년이 흐른다.

어느 순간부터는

누군가의 희생이라는 사실조차 인식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당연해진다.

명절이 끝난 뒤

그날 있었던 일을 나누는 자리에 앉아 있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이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세 가지를 정했다.

표현되지 않은 의도는 해석하지 않는다.

좋은 며느리라는 역할을 내려놓는다.

나는 돕되, 주도하지 않는다.


가족에게 선전포고를 할 필요는 없었다.

누군가와 싸울 필요도 없었다.

그동안 나는

불편한 기색을 읽고, 섭섭함을 짐작하고,

그 마음을 헤아려보려고 애썼다.

그럼에도 늘 부족하다는 말을 들었고

다음에는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나였다.

이제는 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포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정과 사랑을 내려놓자

오히려 나에 대한 존중이 남았다.

그래서 나는

명절 이후의 그 자리에 더 이상 함께하지 않는다.

들어주기 싫어서가 아니다.

나눌 말이 없어서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방향이 바뀌는 것을 보았다.

한때는 불합리하다고 느꼈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것을 ‘도리’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결국 이 구조는 피해자가 유지한다.

시할머니가 계셨을 때는

차례를 마치자마자 일어날 핑계를 찾던 사람들이

이제는 스스로 그 자리를 주도한다.

며느리들을 붙잡아

아침, 점심, 저녁을 함께하고

노래방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분위기를 만든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예전에 자신이 불편해했던 방식들을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문제를 바꾸지 못하는 무력함 대신

그 문제를 ‘도리’로 포장하면서

결국 그 구조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예전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은 말을 알고,

더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설명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이 오히려 다음 세대를 더 정교하게 붙잡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안다.

이건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것을.

그리고 그 구조는

계속 반복될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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